‘단순투자’ -> ‘경영참가’로 변경, 뭔가 느낌이 다른데…
‘단순투자’ -> ‘경영참가’로 변경, 뭔가 느낌이 다른데…
  • 서종열 
  • 입력 2005-06-29 09:00
  • 승인 2005.06.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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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턴도 소버린처럼 경영권 노리나?” 재계가 템플턴 투신운용(Templeton Asset Management, Ltd.)으로 인해 술렁이고 있다. 국내 기업체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템플턴이 본격적인 경영참여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템플턴은 조회공시를 통해 계열 운용사와 펀드들이 보유중인 국내 기업체들의 주식지분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했다. 이와 관련, 템플턴은 “경영권 확보가 아닌 주주권 행사를 위해 변경한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재계는 상당한 불안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SK그룹의 경영권을 노렸던 소버린처럼 언제든지 경영권을 노릴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동지’에서 ‘적’으로 돌변한 템플턴. 경영참가를 발표한 템플턴의 속내는 무엇일까.

국내 2조원 투자

템플턴사의 공식명칭은 ‘프랭클린템플턴인베스트먼트’로 100% 순수 외국계회사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회사는 현재 약 2조원 정도의 자금을 국내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다른 펀드사와는 달리 ‘단순투자’만을 해와, 국내 기업체들 사이에서 ‘템플턴=우호자금’으로 정평이 날 정도다. 템플턴은 지난 4월 1일부터 강화된 ‘5%룰’이 시행됐을 때에도 ‘단순투자’ 입장을 유지했다. 2주전 아가방 등 일부 종목의 변동보유신고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난 17일 템플턴은 경영참여를 전격 선언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템플턴 투신운용은 계열 펀드와 운용사가 보유하고 있는 18개 업체의 지분보유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참가’로 변경했다. 템플턴이 경영참가를 선언한 기업종목은 17일 현재 현대산업개발(17.49%) 자화전자(8.07%) 풍산(7.70%) 영원무역(11.60%) LG화학(5.07%) LG석유화학(6.32%) 대우조선해양(5.04%) 삼성중공업(8.76%) 삼성정밀화학(17.22%) 강원랜드(5.87%) CJ(9.89%) LG생활건강(13.34%) 하이트맥주(7.08%) 등 거래소 13개사와 아이디스(12.71%) 하츠(17.73) 코다코(10.24%) 국순당(5.65%) 아가방(4.76%/관계회사 지분포함) 등 코스닥 5개사 등 총 18개사이다. 이외에 템플턴 계열 펀드와 운용사가 SK텔레콤(5.42%) 국민은행(6.89%) KT(7.78%) 하나은행(9.47%) KT&G(7.04%)등에 대해서도 경영참여를 선언했다.

그렇다면 템플턴이 갑자기 경영참여로 지분보유목적을 바꾼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에 대해 템플턴은 “경영권 확보를 위한 것은 아니다”며 “다만 투자대상기업이 최선의 기업지배구조원칙에 따라 운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소수주주권의 행사 등을 할 수 있도록 보유목적을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경영참여 항목 중 ‘이사 및 감사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의 정지’에 대해서만 ‘있다’로 표기한 점을 강조하면서 “경영권이 아닌 영향력 확대로 봐달라”고 덧붙였다.

경해당기업 ‘발등에 불’

템플턴의 경영참가 공시로 해당기업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보유량이 경영권 분쟁을 일으킬 정도로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사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며 “경영권 확보는 어렵겠지만, 영향력 행사는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해당기업들은 벌써부터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템플턴의 향후 행보를 <경영목적 변경→이사회 소집→경영권 분쟁> 순으로 내다보고 있어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소수주주권 행사나 특정 이사 선임은 사실상 경영활동에 참여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일부 기업의 경우 오너보다 템플턴의 보유지분이 더 높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경우 최악의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현대산업개발의 경우 오너인 정몽규 회장(14.30%)보다 템플턴 보유지분(17.49%)이 더 높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아직까지 별다른 대책은 없다”면서도 “향후 템플턴의 움직임을 보고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템플턴은 이에 “경영권 확보가 아닌 견제 차원의 경영참여”라며 “해당 기업들의 경영권을 흔들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금감원 관계자는 “일단 보유목적을 바꾼 경우는 언제든지 경영참여 행위를 할 수 있는 만큼 경영참여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법률상 냉각기간(5%룰에 따라 보유목적을 변경할 때에는 5일간의 거래정지 기간을 갖게 된다)이 지나면 언제든지 경영활동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가와 재계 견해 엇갈려

증권업계는 이번 템플턴의 경영참여 선언에 대해 재계와는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 증권업체 관계자는 “템플턴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의 차익실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템플턴은 지난 21일에 코다코 보유지분 1.44%(10만4,000주)를 장내매도 했다. 이와 동시에 지난 21일 조회공시를 통해 코다코 이사에서 사퇴했다. 템플턴이 언급했던 것과는 달리 되레 이사직을 사퇴하고 주식을 매각한 것이다. 한화증권 이영건 연구원은 “경영권분쟁을 통해 소버린이 얻은 차익은 9,00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며 “이를 감안하면 이번 템플턴의 경영참여 선언은 보유지분의 차익실현을 위한 전초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단순투자로 보유 목적 변경한 소버린, 떠날 준비 하나?

SK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최태원 회장과 분쟁을 벌여온 소버린이 경영 참여 포기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두 차례에 걸친 주총 패배로 경영권에 개입할 여지가 좁아진 소버린이 투자차익을 챙기고 떠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소버린은 지난 20일 공시한 ‘주식 등의 대량 보유상황 보고서’에서 SK 지분 14.8%(1,902만8,000주)의 보유 목적을 기존의 ‘경영참여’에서 ‘단순투자’로 변경했다. 소버린은 지난 2월에는 SK 지분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소버린이 주식을 팔아치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SK주가는 한때 5% 급락하는 등 시종 고전한 끝에 2% 이상 하락세로 마감했다.

그동안 주가를 끌어올렸던 ‘경영권 분쟁 프리미엄’이 끝났다는 투자자들의 실망이 반영된 것이다. 소버린은 앞으로 주식을 매각할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증시 전문가들은 소버린이 최태원 회장의 이사 선임 부결 시도가 두 차례에 걸쳐 좌절된 이후 주식을 팔고 떠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굿모닝신한증권 황상연 연구원은 “언젠가는 팔고 나갈 것이라고 본다면, 원유가 강세로 오히려 SK 실적 호전이 예상되고 SK주가 역시 여전히 저평가 상태인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공시 이후 주가가 급락한다면 주가 안정을 요구하는 다른 주주들의 압박에 밀려, SK측이 소버린의 물량을 넘겨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서종열  snikers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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