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사무실에 규칙적으로 출근하지 않는 점, 둘째는 회사의 경영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뿐 실무적인 일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람은 홍라희 삼성리움미술관 관장. 현재 홍 관장은 삼성문화재단을 주축으로 삼성리움미술관, 로댕갤러리, 호암미술관, 어린이박물관 등 삼성그룹의 미술관 업무를 모두 관장하고 있다. 하지만 홍 관장의 경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는다. 홍 관장이 미술관에 출근이라도 하면, 이 때는 미술관의 부속실에서 그를 수행한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이미경 CJ부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회장은 회사에 출근을 하기도 하지만, 전문경영인으로부터 자택에서 업무 보고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미경 부회장은 직함은 ‘부회장’이지만,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특성상 아예 해외에 머무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
그러나 이들 ‘노장 여걸’들에게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면, 한 해에 한두번 이상은 반드시 외국 출장길에 오른다는 사실.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홍 관장의 경우 올 초에 오픈한 삼성리움미술관 개관을 위해 본인이 직접 유럽에 나가 진행사항을 체크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재벌가의 30대 여성 경영인들은 이들과 습성이 조금 다르다. 대부분 회장급이 아니라 ‘상무보’ 또는 ‘상무’의 직함을 갖고 있는데 실질적인 업무를 자주 주도한다. 대표적인 사람은 이부진 신라호텔 상무(34)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30),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33) 등. 이들은 이른 바 ‘윗세대’들과 다르게 회사에 꼬박꼬박 출근하고, 회사 경영의 실무적인 부분을 꼼꼼히 챙긴다는 특징이 있다.
회사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기도 한다. 이 중에서도 이 상무의 적극적이고 집요한 성격은 유명하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이 상무는 젊은 임원답게 적극적이고 세밀한 성격”이라고 말했다. 이 상무는 재벌가의 딸이면서도 호텔 직원들과 비교적 잘 어울리고, 뜬금없는 주문을 해 직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가 외부의 손님인 양 가장을 하고 호텔의 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뒤, 품평을 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도 업계에서 널리 회자될 정도. 그런가하면 그는 호텔이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작은 행동 습관까지도 바뀌어야 한다며 ‘이면지 사용 금지’를 코치할 정도로 세심한 성격이기도 하다. 이서현 상무보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상무보는 언니인 이부진 상무와 달리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어서 외부에 잘 나오지는 않지만, 내부 직원들과는 격의없이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직원들과 종종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자주 나눌 정도로 소탈한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의 인사 담당자는 아니지만, 유명한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일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가하면 이제 20대 후반에서 갓 30대 초반의 나이인 재벌가 여인들은 이들보다도 더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현아 대한항공 기내판매팀장(31)과 정지이 현대상선 대리(28) 등. 이들은 재벌가 2세라는 점 때문에 쏟아지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최대한 거리두기에 나서면서도, 회사 내부 직원들과는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비밀노트’ 공개할까, 말까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를 한 이후, 신세계 그룹이 고민에 휩싸였다. 신세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의 인터뷰는 이 업무를 주관하는 홍보실에서조차 며칠 전에야 알았을 정도로 극비리에 추진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이 회장이 건넨 한 권의 노트북 때문. 이 회장은 인터뷰 이외에 평소 그가 메모한 노트북을 회사 홍보팀에 전달했다. 이는 A4용지 30장 분량으로, 그동안 이 회장이 아버지인 고 이병철 회장에 대한 기억을 빼곡히 적은 노트. 현재 신세계 홍보팀에서는 이 내용을 검토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이 회장이 선친으로부터 받은 경영수업 비법, 개인적인 에피소드 등이 시시콜콜하게 담겨 있다고 한다. 원래 신세계측에서는 5월8일 어버이날을 맞아 이 노트를 회사 사보에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외부의 관심이 지나치게 높아지자 공개여부를 두고 회의가 길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정혜연 ch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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