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내는 ‘척’만 했는데… 진짜 수리 됐네!
사표내는 ‘척’만 했는데… 진짜 수리 됐네!
  • 정혜연 
  • 입력 2005-05-03 09:00
  • 승인 2005.05.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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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기업’ 쌍용화재가 또다시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쌍용화재는 모기업이었던 쌍용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지난 2002년 4월 그룹에서 분리, 회사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기업이다. 최근에는 그린화재라는 중소 보험사로부터 M&A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그럼에도 쌍용화재는 올들어 회사 영업이익과 순익이 흑자로 돌아서면서, 핑크빛 미래가 점쳐지던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 이 회사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또다른 일로 심각한 내분에 휩싸여 있다. 쌍용화재의 오너와 전문 경영인이 ‘대표이사’ 직책을 두고 법정에서 맞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 이창복 대표이사 회장과 양인집 사장(그는 지난 4월20일까지 대표이사 사장이었다)이 바로 그들이다. 이 회장은 쌍용화재의 최대주주인 세청화학의 오너이고, 양 사장은 지난해 세청화학을 비롯해 다른 주주들로부터 선임된 전문 경영인이다. 이 둘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회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뜻을 함께하던 사이였으나,최근에는 완전히 등을 돌리고 말았다. 특히 이들이 법정 소송까지 간 과정을 보면 흡사 TV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쌍용화재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사연인 즉슨 이랬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지난 1월. 양인집 사장은 어느날 느닷없이 회사측에 사의를 표명하게 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양 사장이 개인 사정이나 회사 경영에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 사의를 나타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막은 달랐다. 양 사장의 ‘사의 표명’은 정말 사임을 원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쌍용화재 이사회에서는 회사의 경영이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자, 외부에서 유력 인사를 회장으로 영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당시 쌍용화재는 양인집 사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돼있었다.

그런데 이사진 사이에서 ‘외부 인사 영입’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아졌지만, 과연 누구를 영입할 것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료 출신 인사의 영입도 논의됐다. 그러나 최대주주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고 한다. 최대주주인 세청화학의 이창복 회장은 본인이 쌍용화재의 대표이사로서 활동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는 것. 결국 이 회장은 전문 경영인인 양 사장에게 본인이 대표이사에 오를 수 있도록 힘써줄 것을 특별 주문했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양 사장은 총대를 메기로 했다. 이창복 회장의 대표이사 선임에 대해 반대하는 다른 주주들을 설득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결연한(?) 의지의 ‘정표’로 이사회에 사직서까지 제출했다. 2, 3대 주주들을 잘 설득해 이 회장이 쌍용화재의 대표이사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

지난 3월18일.

회사 이사회 의결을 거쳐 세청화학의 이창복 회장이 쌍용화재 대표이사 회장직에 올랐다. 양 사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는 ‘이창복- 양인집’ 복수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된 것.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로부터 한 달 뒤였다. 지난 4월21일, 회사측은 양 사장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대표이사에서 퇴출시킨 것이다. 회사 측은 이 날 양인집 사장이 사임함에 따라 회사의 대표이사가 복수체제에서 이창복 회장 단독체제로 바뀌었다고 공정위에 공시를 했다. 이렇게 되자 회사 내부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의 실적이 좋아져 직원들이 한껏 고무된 상황이었는데, 느닷없이 양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해 직원들이 당황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더 황당해진 사람은 양 사장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해임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때부터 이 회장과 양 사장의 관계는 벼랑 끝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두 사람의 입장이 전혀 다르다. 이 회장측은 양 사장이 이미 지난 1월 ‘본인 사정’으로 인해 사의를 표명한 데에 따라 사표를 수리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양 사장은 이 회장 측에서 여러 이유를 들어 자신을 ‘퇴출’ 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회장과 양 사장의 주장이 정반대로 치닫기 시작하자, 회사는 하루아침에 내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쌍용그룹에서 분리된 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 안정궤도를 찾는가 싶었더니, 이번에는 내부적 문제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양 사장은 회사의 통보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섰다.

그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경정등기’를 신청한 것. ‘경정(更正)등기’란 등기의 일부에 착오가 있을 때 이를 시정하기 위한 조치다. 양 사장은 이번에 회사측에서 수리한 사직서는 본인이 작성한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며 법원에 무효 소송을 낸 것이다. 더욱이 그는 이 회장이 본인을 해임한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으며, 자신은 그 과정에서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얘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양 사장은 대표이사 직책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본사 사장실로 출근을 하고 있어, 이 회장과 껄끄러운 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적인 결론은 법원에서 내리겠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업계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쉽게 사직서를 제출하지 말라는 경계령이 내려지지나 않을까.

정혜연  ch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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