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이후 일본계 자금과 대만계 자금이 빠르게 한국시장을 떠나고 있는 것은 이헌재 전 부총리 퇴진, 독도사태 악화, 한·일 외교불안 등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현지 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일요서울>이 명동과 강남지역의 대부업계와 사채업계, 파이넨스업계, 다단계업계, 부동산디벨로퍼시장(부동산개발시장) 등을 정밀 취재한 결과 지난 3월 이후 현지 금융시장에서 한국을 빠져나간 자금규모는 1조원대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한국시장을 떠난 일본, 대만계 자금은 자국으로 회수되거나 동남아와 인도 등 신흥시장으로 넘어간 것으로 현지 금융관계자들은 전했다.
▲명동 상황
가장 타격을 입고 있는 곳은 채권업이 성황을 이루어온 명동 사채시장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명동 현지 사채업자는 “국내에 들어온 일본계 자금이 3월 들어 일본 및 동남아와 인도로 빠르게 이탈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이에 따라 벤처캐피털을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들의 자금경색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또 현지 파이낸스사 관계자는 “일부 자금이 움직임은 있으나 아직은 자금여력이 풍부한 상황이어서 큰 변화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앞으로 중소기업들의 자금 요청이 몰릴 시기가 다가오면 현재와 같은 유동성 지속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지난해 초 전두환 비자금 사건 이후 많은 이들이 이곳을 떠난 상태에서 최근 일본계를 비롯한 아시아계 자금들의 철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어 매우 당황하고 있다”며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이들 금융 관계자들은 “3월 이후 1개월 동안 명동 금융시장에서 일본계 자금은 이미 1조원 이상이 철수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외 해운업체들의 해외 지사망을 이용해 자금을 이동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3월 이후 명동 사채시장에서 일본계 자금 이탈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명동 사채시장이 더 이상 지하경제의 장이 아니라는 점과 일본 국내 경제의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에 들어선 점, 그리고 ‘독도문제’로 인한 자금 불안정성이 높아진 데다 신변위험요인이 커진 점 등이 작용한 것으로 현지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강남 상황
강남 금융시장의 경우 일본계 자금은 주로 테헤란로 일대 저축은행과 논현동, 삼성동 일대 다단계 회사, 그리고 부동산개발시장에 들어와 있었다. 이 시장에 들어온 일본계 자금은 수조원대에 이른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추산이다. 그러나 테헤란로 일대의 경우 일본계 자금이 움직이면서 일부 대부업체들의 경우 개인대출은 예전과 다름없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3월 이후 채권대출 혹은 법인 담보대출은 1순위 아니면 무조건 거절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같은 현상은 테헤란로 일대 빌딩 공실률이 급증한 데다, 여전히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 있는 부분도 작용하고 있다. 스탠다드차티스은행 강남PB지점 등 이 지역 저축은행과 PB지점 등에 맡겨졌던 일본계 자금들이 3월 이후, 특히 독도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일 외교전쟁’을 선언한 직후부터 자금철수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논현동과 삼성동 일대의 경우 유흥업종과 다단계업계에 외국계 자금과 스폰서들이 한동안 몰렸지만 최근들어 일본계 자금으로 추정되는 외국계 자금이 크게 줄어들면서 J사, W사, D사 등 유명 다단계회사들의 존립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현지 금융관계자는 “최근 100억원대의 소규모 자산가들의 투자는 일정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투자를 하는 개인사업자, 특히 외국계 자금은 완전히 실종된 상황”이라며 우려했다. 일본계 자금들이 많이 몰렸던 부동산개발 및 분양시장도 침체분위기 속에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일부 부동산 디벨로퍼(분양업계)업체들은 “3월 이후 전주나 스폰서를 찾기가 힘들어졌다”며 아예 문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그러나 명동에 있는 산요머니 등 일본계 대형 대부업체들의 반응은 ‘한일 외교전쟁’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아직 별다른 자금 움직임은 없다고 전했다. 산요머니 명동지점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자금이탈 등에 대해 면밀히 체크하고는 있지만 아직 뚜렷한 기미는 없다”고 전했다.
일본계 자금 이동경로 추적
<일요서울>이 명동, 강남 등을 현지 취재한 결과 일본계 자금은 그동안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 등 공식적인 투자창구를 통하기 보다는 대부시장이나 부동산시장 등에 주로 투자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한국에 투자된 일본계 자금은 주식시장보다는 파이넨스나 대부시장, 사채시장에 주로 들어와 있다”고 전했다. 일본계 자금 중에는 국제시장을 떠도는 핫머니성보다 최소한 3년 이상 머무는 장기성 투자가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본계 자금이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는 정확히 파악되고 있지 않지만 2000년 이후에만 대략 10조~15조원 가량에 이른다는 것이 업계관계자들의 추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일 외교문제가 불거진 이후 일본계 자금은 매우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이 현지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 특히 사채시장에서는 1조원 이상이 3월에 이탈했으며, 이들 자금은 동남아와 인도 등 금융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시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었다.
서종열 sniker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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