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한가운데 전씨가 있다. 전씨의 화려한(?) 경력은 그의 삶의 발자취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공문서 위조 등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경력에서 국회의원 비서관, 신용 불량자, 그리고 촉망받는 부동산 중개업자…. 무엇보다도 현역 국회의원 2명을 상대로 한 폭로전은 한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의 변화무쌍한 삶의 단초가 된 것은 27세 나이에 당시 통일민주당 박재규의원을 만나면서부터다. 박 전 의원에 따르면 전씨는 당시 농촌경제신문기자로 선거때 지역구에 내려와 취재를 하면서 서로 알게 됐다는 것. 그후 전씨는 박 전 의원에게 비서로 채용해 줄 것을 부탁했고, 기자경력이 도움이 될 것 같아 함께 일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전씨와의 만남은 박 전 의원측에서 보면 악연이었다.
1989년 9월, 13대 국회 농수산위에서 농약관리법을 추진하기 위한 활동비 명목으로 금품을 수뢰한 이른바 ‘박재규독직사건’의 고발자는 박 전 의원의 비서관이었던 전씨였다. 박 전의원은 이 사건으로 3년형을 받고 구속됐으며, 4년뒤인 94년 향년 4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전씨의 폭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5년 뒤인 1994년 2월, 전씨의 2탄이 예고돼 있었던 것. ‘박재규독직사건’은 당시 박 전 의원에게 패배한 민자당 배명국의원에 의해 정치적으로 조작된 사건이었으며, 폭로를 맡은 자신은 배 의원으로부터 8,500만원의 대가를 받았다는 것이 당시 2탄 폭로의 요지였다. 전씨의 새로운 폭로로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고 연일 여·야간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배 의원은 결국 사건의 도의적·정치적 책임을 지고 민자당 경남도지부장직에서 사퇴했다. 사건 당시 전씨가 모 일간지에 스스로 밝힌 자신의 경력 또한 화려하다.
중 2때 양쪽 다리의 뼈가 썩어 들어가는 증세로 수술을 받은 뒤 그 후유증으로 시력이 악화돼 중퇴했다. 그 후 79년부터 1년간 모 기관의 프락치로 서울대에서 학원 사찰을 담당했고, 이때부터 서울대 법학과 79학번 가짜 학생증을 소지하고 다녔다는 것. 10·26 직후 학원 사찰 업무를 그만둔 전씨는 서울법대 학생증을 계속 지니고 다니다가 적발돼 82년 태릉경찰서를 거쳐 법원에서 공갈 및 공문서 위조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10년을 선고받았다. 전씨의 첫 번째 전과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긴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씨는 두 차례의 폭로 이후 정치권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은 촉망받는 부동산 개발업자(디벨로퍼)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 2000년대 초. 93년 대재건설이라는 작은 건설사를 설립하는 등 건설업 경력을 차근차근 다져온 그는 2001년 경기 안양에 연면적 3만평 규모의 ‘메가밸리’라는 아파트형 공장의 분양대행을 맡아 2주만에 분양을 마치는 수완을 발휘하면서부터 업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전씨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 보광휘닉스파크 인근에 고급 콘도인 ‘클럽휘닉스파크’를 분양, 주목을 끌었다. 전씨는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2003년 하이앤드라는 회사를 설립, 본격적인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들었다. 이미 이 시기에는 고등학교 후배이자 여권의 실세였던 A씨와 상당한 친분을 맺어 놓은 상대였다. 전씨는 강원도의회의 경제분과 위원을 역임하는가 하면 2004년 강원도 출신 국회의원 환영회 행사 비용을 전액 부담, 성대하게 치르는 등 주변에 세 과시를 하기도 했다. 행사에는 강원도 출신 전·현직 국회의원과 지역내 유력 공기업 사장이 대거 참석, 세차례에 나눠 기념 사진을 찍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클럽 휘닉스파크 분양 사업은 부동산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실패, 전씨의 회사 하이앤드는 지난해 8월 30일 부도처리됐고 전씨는 당좌거래 정지 대상에 올랐다.
전씨가 한국철도교통재단을 끌어들여 러시아 유전개발을 명분으로 코리아크루드오일을 설립한 시기는 하이앤드가 부도가 나기 10여일 전인 8월 17일. 전씨는 유전개발계약을 체결한 뒤 자신의 코리아크루드오일의 지분 42%를 84억원에 철도재단측에 넘길 계획이어서 성사만 됐다면 단번에 거액을 손에 쥘 뻔했다.이러한 전씨의 행적으로 철도공사가 6,200만달러 상당의 대형 사업을 추진하면서 투자 파트너의 재정 및 신용상태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배경에 대해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전씨는 이와관련 “A의원은 동향이라 여러번 만난 적이 있지만 오히려 A의원과 가깝다는 이유로 내쪽에서 피해를 보았다”며 “대출 받으러 갔더니 여권 실세와 연결돼 있어 눈총을 받을까봐서인지 무척 꺼렸다”고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이혜숙 softpe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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