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없이 촬영한 영상으로 부당 수익을?…웹하드 카르텔 실체
동의 없이 촬영한 영상으로 부당 수익을?…웹하드 카르텔 실체
  • 강민정 기자
  • 입력 2018-08-31 19:50
  • 승인 2018.08.31 19:50
  • 호수 1270
  • 2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웹하드·헤비 업로더·디지털 장의업체 ‘끈끈한 유착’
지난 28일 '정부는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 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수사하라'는 제목으로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분수 대광장 앞에서 개최된 기자회견.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여성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디지털 성폭력으로 안타까운 선택을 한 여성의 사건이 보도되면서 일명 ‘웹하드 카르텔’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의 은밀한 유착 관계가 디지털 성범죄 산업 구조를 가능케 하고 방조한다며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다.

저작권 없어 고수익 창출 가능…‘블루 오션’처럼 여겨
활동가 “벌어들이는 돈보다 벌금액이 적다”


지난 28일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분수 대광장 앞에서 ‘정부는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 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수사하라’는 주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와 녹색당, 불꽃페미액션, 페이머즈, 찍는 페미 등이 주최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등 11개 단체가 함께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개인의 잘못으로 여겨져 왔던 피해 촬영물 영상 유포가 사실상 견고한 카르텔 속에서 부당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 구조였음을 지적했다.

아울러 디지털 성폭력 피해 규모를 줄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피해 영상의 유통을 통제하고 차단할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들은 ▲웹하드의 불법행위에 대해 대통령 직속 특별 수사단 구성 및 조사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수준으로 디지털 성범죄 촬영물 유포자, 유통 플랫폼, 소지자 모두를 처벌하는 법안 신설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의 유통·삭제 동시 진행 ▲대표 웹하드 실소유자에 대한 처벌 ▲디지털 성범죄 유통 플랫폼, 디지털 장의사, 숙박업소 관련 앱, 스튜디오 촬영회 등 디지털 성범죄물을 생산·유통·삭제하는 산업화 구조 자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물밑 ‘웹하드 카르텔’
디지털 성폭력 조장해
 

웹하드(webhard)란 인터넷상의 저장 공간을 뜻한다.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처럼 데이터나 파일 따위를 저장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통해 영상과 데이터 등을 주고받는다.

이때 자료를 올리는 사람을 두고 업로더(uploader), 내려 받는 사람을 다운로더(downloader)라고 한다. 특히 방대한 양의 자료를 올리는 이를 두고 ‘무거운·육중한’을 뜻하는 영단어인 헤비(heavy)를 더해 ‘헤비 업로더’라고 부른다.

웹하드 카르텔(cartel·기업연합, 기업단합)이란 웹하드 업체와 헤비 업로더, 필터링 업체, 디지털 장의업체(온라인상 개인정보 삭제 업무를 하는 업체) 사이에 모종의 연결고리가 존재해 디지털 성산업 구조를 공고히 만들었다는 의혹이다.

웹하드 업체는 ▲피해 촬영물을 올리는 헤비 업로더들이 단속에 걸리지 않도록 지원 ▲피해 촬영물 유통을 사전 방지할 수 있는 DNA 필터링 회사와의 유착을 통해 제대로 된 필터링을 거치지 않음 ▲불법 촬영물 영상 삭제로 피해자들로부터 이중 수익 창출 등의 의혹에 연루돼 있다.

이들의 결탁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촬영한 영상들이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음에도 불구, 자신들의 수익을 얻기 위해 이를 묵인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사성 리아 활동가는 “방송 등은 모두 저작권이 있다. 하지만 피해 촬영물이나 몰래 찍은 불법 영상물의 경우 저작권이 없어 웹하드 측에서 수익을 굉장히 많이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사이트에 국산 야동(야한동영상)이 많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더 많은 이들이 모여들게 돼 지속적으로 수익을 얻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리아 활동가는 “이러한 시장 구조가 있는 한 여성들은 계속해서 하나의 상품으로 팔릴 수밖에 없다”면서 “디지털 성범죄 산업 구조가 없다면 광범위하고 합법적으로 유통시킬 망이 없었을 것이고, 실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올 만큼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실제 상당한 수의 피해 촬영물들은 ‘국노(국내산 노모자이크)’ ‘국NO’ ‘국산’ ‘몰카(몰래카메라·불법 촬영)’ ‘골뱅이(술 취한 여성을 뜻하는 은어)’ 등의 키워드를 통해 손쉽게 유통되고 있다.

한사성에서 지난해 6월 21일 실시한 키워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사이트의 경우 ‘국노’라는 키워드를 통해 검색된 피해 촬영물의 수는 1만7037건에 달했다.

또 다른 사이트에서는 ‘국산’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넣었을 경우 총 1만6895건의 피해 촬영물이 검색됐다.

이를 두고 리아 활동가는 “2000 몇 건의 피해 촬영물이 유통되다가 정부 측에서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니 73~4개로 줄었다”면서 “사실 (웹하드 업체들이) 충분히 (제재·관리)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정황이 많다”고 비판했다.
 
피해자 죽음에 ‘유작(遺作)’
동의 없이 ‘저작권 등록’

 
피해 촬영물의 무분별한 유통으로 빚어진 안타까운 사건도 있다. 자신의 동의 없이 촬영된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는 디지털 성폭력 영상 피해를 겪은 한 여성이 이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것.

하지만 인터넷망 속에서 해당 영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죽은 사람이 생전에 남긴 작품이라는 뜻의 ‘유작(遺作)’이라는 자극적인 수식어를 붙여 다시 유통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상대의 동의 없이 촬영한 피해 영상을 두고 누군가가 저작권을 등록해 수익을 얻어가는 사건도 있었다. 저작권을 등록할 경우 ‘제휴 콘텐츠’로 처리돼 합법적인 영상으로 여겨진다.

피해 촬영물의 경우 본인이 모르는 사이 찍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암수율도 높다. 이처럼 피해자에게 막대한 정신적인 고통을 주지만 지속적으로 관련 범죄가 재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엔 허술한 현행법도 영향이 있다.

영상을 재유포할 경우 정보통신망법으로 처벌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벌금액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실제 경찰 단속에 걸린 한 헤비업로더에게 책정된 벌금액은 5만 원에 불과했다.

리아 활동가는 “(피해 영상물 업로드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보다 벌금액이 적다. 다운로드해서 보는 건 처벌받지 않는다”면서 “사실상 대응책이 부재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웹하드 카르텔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지난 7월 28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웹하드 불법동영상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이 문제를 다루면서부터다.

이후 지난 7월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 수사를 요구한다”는 글이 게시돼 지난달 28일까지 청원이 진행됐다.

이 청원에 총 20만8543명이 동의했다. 동의 인원이 20만 명을 넘길 경우 청와대는 해당 문제에 관해 의견을 밝혀야만 한다.

강민정 기자 kmj@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