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의 보도 이후 현대차 등 국내 자동차 업계는 “진실이 심하게 왜곡됐고 유럽시장에서 국산 승용차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견제 차원에서 악의적으로 보도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BBC 2채널은 지난해 12월 26일과 27일 ‘탑기어’라는 자동차 전문 오락프로그램에서 ‘태평양 주변국가의 자동차를 탐방해 보자’라는 제목으로 한국과 말레이시아 승용차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난했다.이 프로그램 진행자인 제레미 클락슨은 “기아차가 보행자협회에서 추진하는 버스타기, 걷기 운동을 후원하고 있었다”며 “내가 만약 기아차를 가지고 있다면 걷고 싶을 것이다”라고 비난했다.그는 현대차의 ‘엑센트’를 직접 시승하면서 인테리어가 전부 회색인 점과 엔진에 실린더가 3개뿐인 것을 지적하고 “만약 당신이 집에서 현대 엑센트 브로슈어를 보고 있다면 절대 사지 말고 차라리 중고 골프(타사 브랜드)를 사고 남는 돈으로 휴가나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시승 이후 현대 엑센트를 두고 “이 차 이름이 뭐더라. 맞아! 엑시던트(Accident, 사고)다. 태평양 주변 국가들은 정말 멍청한 이름을 갖고 있다”고 조롱했다.그는 이어 “한국 자동차 회사의 노동자 임금은 결코 싸지 않고 영국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과 같다”며 동일한 인건비가 들어가는데 자동차 값이 싼 것은 한국차가 저가 부품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그는 또 “(한국산 승용차는) 처음 살 때 싸지만 중고차 시장에서는 유럽산과 일본산만 제 값을 받는다”며 현대 엑센트 차량에 상징적으로 1파운드(한화 약 2,000원)가 쓰여있는 가격표를 붙였다.
방송국 스튜디오로 돌아온 진행자는 “한국과 말레이시아 자동차 회사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동차를 가전제품을 만들듯이 한다는 것이다. 마치 바퀴달린 냉장고처럼 말이다. 거기에는 영혼도 없고 열정도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비난했다.실제로 프로그램 진행자는 스튜디오에서는 한국산 냉장고(본체), 전자렌지(의자), 세탁기(계기판)에 빨래건조기를 바퀴로 단 해괴한 모양의 자동차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바로 한국산 자동차”라며 직접 시운전을 하기도 했다.시운전을 마친 진행자는 마지막으로 “(개조된 차를 보고) 이거 하나 사야지. 이것이 아까 내가 몰았던 현대 ‘엑시던트(Accident)보다 좋다”고 말했다.
‘한국차 급성장 막아라’
세계적인 방송인 BBC가 현대차 등 한국산 승용차에 대해 비하 보도를 한 것에 대해 현대차는 “공식적인 대응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지나친 왜곡 보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BBC의 방송 보도 이후 현대차는 “탑기어라는 프로그램이 흥미위주의 오락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며 “원래 코믹스럽게 진행하는 프로그램이고 진지한 다큐멘터리나 정규 뉴스 보도가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황금 시간대에 방영됐고 시청률이 높기 때문에 현대차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추락할 수 있어 현대차는 영국 법인을 통해 비공식적인 반박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의 유럽 수출량이 300만대를 돌파하면서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영국에서 의도적으로 방송을 내보낸 것 같다. 방송내용은 엑센트 등 현대차에 대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자동차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BBC 프로그램이 사전에 기획되고 의도적으로 보도됐고 국산 승용차의 이미지가 실추됐다는 점에서 공식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며 “북미나 유럽 시장에서는 흔히 외국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 악의적으로 제품에 대한 비하 보도를 하지만 이번처럼 노골적으로 하지는 않았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자동차 업계에서는 BBC 방송이 현대차뿐만 아니라 한국산 자동차를 묶어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현대차, 이미지 추락우려
황금시간대 비하 보도로 유럽시장 공략 타격 예상이번 BBC의 현대차에 대한 비하 보도에 따라 유럽 시장에서의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이미지 추락이 우려되고 있다.현대차의 경우 지난 2001년에도 미국 뉴스위크 등 경제 주간지에서 한국 자동차에 대한 덤핑 등 비하 보도가 있었고, 이번 BBC 방송의 비하 보도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외국 시장에서의 텃세가 얼마나 심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특히 현대차의 경우 유럽에서만 매년 500억원 정도의 홍보비를 쏟아 붓고 있는 상황에서 황금 시간대에 시청률이 높은 방송 프로그램에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비하 보도가 나가면서 유럽 시장 공략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또한 현대차의 경우 엑센트가 영국 등 유럽시장의 주력 차종이기 때문에 이 차종에 대한 직접적인 비하 방송이 나가면서 수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는 “영국은 과거 자동차 생산국이었으나 현재는 아니기 때문에 타 대륙의 제품에 대해 일종의 견제 심리가 강하다”며 “지난 11월말 기준으로 서유럽시장에서 현대차의 시장점유율이 3%를 넘어섰기 때문에 이번 탑기어 프로그램의 비하 보도도 역으로 생각하면 한국 자동차에 대한 유럽의 관심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BBC의 탑기어 프로그램은 이번 한국 자동차 비하 보도 전에 10만달러 이하의 스포츠카 중 현대차의 투스카니와 넥서스 스포츠카를 비교하면서 투스카니의 우수성에 대해 방송을 하기도 했다.일각에서는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BBC의 비하 보도가 진실을 왜곡한 면도 있지만 한국산 자동차가 좀 더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영민 mosteve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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