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넘긴 제약업체선 사실 몰랐을까
제품 넘긴 제약업체선 사실 몰랐을까
  • 정하성 
  • 입력 2004-11-05 09:00
  • 승인 2004.11.0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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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강보조식품의 유통기한을 변조, 판매한 유통업자들이 적발되면서 제약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제약업체들은 경찰이 이 사건을 계기로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펼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제약사- 제약사 영업사원- 유통업자- 약국·소매점’간 이뤄지는 불법유통에 대해 철저한 수사 방침을 세워놓고 있어,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지난 10월 초 어린이 성장촉진제 등 건강보조식품을 헐값에 구입한 뒤, 유통기한을 변조 시중에 판매한 유통업자 김모(51)씨 등 3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김씨는 지난 2002년 11월부터 최근까지 국내 유명 제약회사 자회사인 H사 J사 등으로부터 어린이 성장촉진제 등 건강보조식품 17종을 도매가격의 반값에 구입했다. 제품 구입 가격이 싼 이유는 있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구입한 제품의 유통기한을 아세톤 등으로 지우고 새로 유통기한을 찍거나 위조 라벨을 부착해 판매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김씨가 인터넷 판매망과 전국의 약국, 소매점 등 87곳에 10억6,000여만원 상당의 제품을 납품했으며, 판매 당시 제품의 실제 유통기한은 이미 지난 상태라고 밝혔다.문제는 김씨가 유통기한을 변조, 판매한 제품들이 유명 제약회사의 자회사 등의 제품이라는 점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유명 제약사의 자회사가 생산한 것인 만큼, 약국과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을 믿고 이를 구입했을 것”이라고 밝혔다.또 어린이 성장촉진제 등 국민건강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건강보조식품이 불법적으로 유통됐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의사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건강보조식품들은 변질될 우려가 많다”며 “특히 성장기의 어린이들이 먹는 식품의 경우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건강보조식품 유통기한 변조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현재의 건강보조식품 유통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실제로 이번 사건에서도 제약업체들이 ‘업자들의 유통기한 변조’사실을 몰랐느냐는 점이 의문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건강보조식품생산업체들이 유통기한을 23개월 앞둔 제품을 판매업자에게 넘긴 것은 문제가 있다”며 “생산업체들은 이런 제품이 판매될 때 유통기한이 변조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이와 관련, 김씨 등은 경찰조사에서 “제약회사 영업직원들이 직접 찾아와 약품의 덤핑 매입을 권유했다”고 밝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김씨의 경찰 진술에 따라 제약업체들이 업자들에게 제품을 판매하면서, 유통기한을 조작할 것이란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의약품 제조사들이 유통기한이 임박한 재고품을 언제·어떻게 처리하는지 여부를 계속조사하고 있다”며 “또 회사나 영업사원이 유통기한 변조를 묵시적으로 인정하면서, 제품을 넘겼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제조업체-영업사원-유통기한 변조 판매업자’간 유착관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은 현재 제약회사와 영업사원, 판매업자간 유착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계좌추적 등의 수사에 매달리고 있다. 또 임박한 건강보조식품 판매 경위 등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경찰 관계자는 “생산업체와 영업사원, 그리고 판매업자들간 유착에 대한 심증은 가지만, 이를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다”며 “건강보조식품의 유통체제를 개선하지 않는 한 유사한 사건은 재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건강보조식품 제조사들도 이 사건의 파장을 예의주시하며,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번 유통기한 변조 제품을 생산한 J사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은 통감하고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회사측이 유통기한을 변조한 업자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H사 관계자는 “이번 사건 때문에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며 “매출액이 수백억원대로, 조그만 이득을 얻고자 제고품을 ‘유통기한 변조 판매업자’들에게 넘길 이유가 없다”며 유착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이어 이 관계자는 “일부 판매업자들의 잘못을 회사측에 떠넘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도 “건강식품에는 로트(LOT)라는 번호가 있는데, 구입한 식품의 로트번호를 확인하면 제조일자를 알 수 있다. 유통기한을 넘긴 제품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봤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김씨와 함께 검거된 이모(54)씨는 지난 5월부터 유통기한이 지난 산삼 배양제품(1개당 120만원)을 개당 6만원에 구입한 뒤 유통기한을 다시 찍어 30여만원에 되팔고, 일본에서 생산된 키토산 제품도 비슷한 수법으로 판매하는 등 720여만원 상당의 제품을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정하성  haha7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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