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피제’ 갑론을박 근본 해결책 될 수 있을까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은 국가에 속한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성적에 큰 관심을 둔다. 최근에 시험지 유출 사건이 알려지면서 부모가 재직 중인 학교에 자녀들이 다니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등장했다. 마침내 교육부가 뿔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교육부 “고교 교원을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배치하는 것 ‘원칙적으로’ 금지”
고교 상피제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학교 많다는 우려도
교육부가 고등학교 교사와 그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끔 하는 ‘고교 상피제’라는 제도적 장치를 만든다.
상피제(相避制)란 고려시대 때 시행된 제도로, 일정 범위 안 친족 간에는 같은 관청 또는 통속관계에 있는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거나 연고가 있는 관직에 제수할 수 없게 한다. 관료체계의 원활한 운영과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한 ‘2022학년도 대입개편 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 브리핑’에서 교육부는 “최근 시·도 교육청과 상피제 도입에 합의했다”며 “고교 교원을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배치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경기·세종·울산·대구에서는 부모가 교사로 근무하는 학교에 자녀가 입학하면 교사를 타교로 전보하게끔 하는 규정이 시행 중이다. 이를 나머지 13개 교육청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현대판 고교 상피제는 부모가 교직에 몸담고 있는 학교에 자녀가 배치되지 않도록 하거나, 자녀가 입학한 경우 교원 재직 중인 부모를 다른 학교로 전보 보내는 등 인사관리 규정 개정을 통해 이뤄질 방침이다. 시행 예정일은 내년 3월부터다.
교무부장 B씨 쌍둥이 자매
나란히 문·이과 전교 1등?
고교 상피제 도입은 일명 ‘쌍둥이 자녀 전교 1등’ 논란에서 시작됐다. 서울시 강남구 소재의 한 A여자고등학교에서 교무부장으로 근무하는 B씨의 쌍둥이 딸들이 2학년 1학기 시험 후 각각 문·이과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한 것.
앞서 이들의 1학년 1학기 때 성적은 각각 전교 59등과 전교 121등으로 알려졌다. 급격히 오른 성적에 시험지가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B씨는 인터넷 게시글을 통해 ‘아이들이 하루에 잠자는 시간이 4시간을 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1학년 1학기에는 성적이 안 좋았지만 이후 수학 학원 등을 다니며 1학년 2학기 때는 전교 5등, 2등으로 성적이 올랐고 올해 전교 1등을 할 수 있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논란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이 밖에도 지난 11일 “A여고 교직원 자녀 2명이 이번에 동시에 전교 1등(문/이과)했다는데 부정 의혹을 밝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해당 문제를 다룬 글이 게재되는 등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처럼 여론이 일파만파 퍼져 나가자 서울시교육청은 본청 장학사 1명과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장학사 2명을 해당 학교에 파견해 지난 13일부터 22일 총 열흘 동안 특별장학을 실시했다. 조사 결과 발표는 아직까지 예정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상피제가 시험지 유출 사건 등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교원 향한 불신 커져” vs
“의심 사항 원천 차단”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교육부가 고교 상피제 시행 계획을 밝힌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상피제 반대 의견을 표출했다.
그는 게시물을 통해 “불신 사회, 불신공화국. 교사는 잠재적 범죄인?”이라 적으며 상피제 도입이 교사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관해 전북교육청 정옥희 대변인은 “(전북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상피제를 하고 있다”면서 “성적 조작 등의 극단적인 사례가 나온다면 학생이나 교사에게 법에 의해서 처벌을 하면 된다. 상피제라는 별도의 방식으로 교직사회 전체를 잠재적인 범죄자처럼 보게 하는 시선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라고 부연했다.
또 그는 “면 단위에는 고교가 하나밖에 없는 지역도 있다”면서 “고교 상피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예외적인 사안들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교육희망네트워크 김옥성 상임대표도 이와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는 고교 상피제를 도입하게 될 경우 ▲교원들에 대한 불신이 상승하는 점 ▲환경상 같은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점이 문제될 수 있다고 봤다.
김 상임대표는 “한 학교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교육부가 그런 반응을 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본다”며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조정해야지, (대안으로) 상피제를 만든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 학교 내부적으로 해결을 (먼저) 해야 한다”면서 “학교장이 파악을 통해 적절한 내부적인 감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또 시험지와 관련된 장소에 CCTV를 설치하는 등 체계들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상피제 도입보다 앞서 내부적인 체계를 먼저 갖출 것을 지적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용진(서울 강북을)이 교육부에서 제공받은 ‘고등학교 시험지 보관시설 CCTV 설치 현황’ 자료 분석에 따르면 전국 2363개 고교 중 시험지 보관 장소에 CCTV가 설치된 곳은 1100개 고교로, 설치율이 46.97%에 그친다.
반면 좋은학교만들기 이원관 이사장은 “다수의 학부모들은 (상피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고, 이번 같은 유출 의심사항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당사자(학생·교원)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와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학교를 다니게 하는 것은 학생의 학습선택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도 냈다.
실제 현장에는 교원과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는 여러 불가피한 상황이 있다. 따라서 상피제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교육계의 중론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도 대안을 제시했다. 농산어촌지역의 경우 학생 수가 감소함에 따라 폐교돼 학교 수가 적어 교사로 재직 중인 부모와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닐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자녀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해당 교사를 배제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강민정 기자 kmj@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