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금감원 통합 잘해낼까
금감위-금감원 통합 잘해낼까
  • 공도윤 
  • 입력 2004-08-18 09:00
  • 승인 2004.08.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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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제 5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으로 윤증현 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가 임명됐다. 현재 금융감독기구는 개편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상태. 때문에 이번 인사를 놓고, 정부의 속뜻이 무엇인지, 윤 위원장이 어떤 역할을 할지, 다양한 추측과 소문이 돌고 있다. 카드사태 등 금융시장의 불화로 제 5대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의 내정 전, 업계는 정부가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정재 전금감위원장의 사표가 수리된 지난 2일을 전후로, 언론은 ‘위원장’자리를 놓고 4명의 후보자가 팽팽한 경합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청와대는 사표수리 바로 다음날 윤증현 위원장을 자리에 앉혔다.먼저 ‘위원장 내정’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를 살펴보자.

이정재 전금감위원장의 퇴임은 카드사태에 대한 감독당국의 안일한 처사, 정부의 금융감독기구 개편에 대한 어정쩡한 행보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다. 카드사태와 금융감독기구 개편은 연장선에 놓여있다.업계 전문가들은 “금융감독 기구의 기형적 구조가 카드사태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한다. 현행 금융감독기구는 합의제 행정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와 이 위원회를 보조하는 공무원 조직인 ‘사무국’, 공적 민간기구인 ‘금융감독원’으로 이뤄져 있다. 이중 금감위 사무국과 금감원은 기능과 역할이 비슷해 ‘중복 업무’로 인한 ‘비효율’과 모호한 권한과 책임에 따른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최초로 카드사태 문제가 제기됐던 3년 전에도 이들 조직을 통합하자는 ‘금융감독기구 일원화’가 거론됐다. 금감원 노조측을 포함해 학계, 시민단체 등의 지배적인 여론은 세 조직 통합에 ‘찬성’입장이다.

그러나 ‘통합’의 주체를 놓고 정부와 금감원의 의견은 상이하다. 정부는 금융기관을 감독하고 제재하는 공권력적 행정행위는 정부가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동시에 금융감독기구 개편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부혁신위에서 공무원 조직인 금감위 ‘사무국’에 힘을 실어주면서 금감원의 기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감독원과 정부는 양날의 칼 같은 존재다. 서로 상호 보완하며 협력하기도 하고, 서로 감시기관으로 견제하고 제재에 들어가야 한다. 이번 카드사태도 금감원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귀속돼 벌어진 사건이다. 카드사태는 정부의 ‘소비진작책’에 따른 부작용이다. 정부가 현금서비스 한도를 무제한으로 풀 때 금융감독기구가 제어를 해줘야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금감원 조직 자체가 재경부, 재무부 출신 관료로 이뤄져 있다 보니 독립적인 시스템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민간 전문가, 시민단체도 “금융감독은 중립성을 지킬 때 올바른 견제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감독기구를 공적인 단일 민간기구로 통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금감원 노조측은 “정부혁신위 구성인원 중 몇몇 실무자들이 ‘사무국’중심으로 감독기구를 ‘통합’하려는 근본적인 이유 저변엔 ‘아랫사람 늘리기, 자기 자리 키우기’사상이 깔려있다”고 비난했다. 현재 사무국 공무원은 대략 70여명. 사무국 공무원에 관해 금감원 노조측은 “98년 출발 당시, 사무국의 역할은 금감원을 보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행정보조차 늘린 초기 인원은 소수인 19명으로 출발해, 현재 70명으로 대폭 늘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까닭에 윤 위원장의 역할 부담과 책임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윤 위원장의 내정 과정에서, “정부측 인물 아니냐”는 의심의 화살이 몰리고 있다.

정부가 지난 2일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바로 다음날인 3일 윤증현 위원장을 정식 임명한 것에 대해 금융감독체계 개편작업을 조속히 마무리짓고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초대 위원장부터 윤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재무부, 재경부 출신의 관료 출신이었다.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기구에 정부쪽 사람을 앉혀 지금까지 금감원은 제대로 된 감독기관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서 윤 위원장을 서둘러 내정한 것에 대해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어갈 인물을 앉힌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역대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 모두가 재무부 출신 관료다.

1대 위원장인 이헌재 부총리는 경기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 대통령 경제비서실,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을 거쳤다. 2대 위원장인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은 광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출신. 제 9회 행정고시를 합격한 후, 재무부 국고과장, 재정경제부 본부 국장, ADB 이사를 역임했다. 3대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은 대전고등학교, 고려대학교를 졸업. 제 6회 행정고시 합격, 국세청 조사국장, 재무부 세제실장, 한국투자신탁 사장, 한국산업은행 총재를 지냈다. 4대 이정재 전 위원장 역시 경북고, 서울대학교 출신. 한국은행, 제 8회 행정고시 합격, 재무부 재무정책 국장,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 예금 보험공사 전무이사, 제 3대 제정경제부 차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윤 위원장 역시 제 10회 행정고시를 합격한 후, 재무부 금융국장, 재정경제부 금융정책실장, ADB이사를 거쳤다.

그는 30년간 금융권에 몸을 담은 노련한 재무관료로 추진력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청와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지난달 27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감독기구 체제개편과 운영혁신 방안’자료를 보고하며 “개편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추진력 강한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어 ‘미리 윤 내정자를 점찍어 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또한 윤 위원장은 내정을 앞두고 스스로 ADB 이사직의 사의를 표명한 후, 미리 귀국해 ‘미리 언질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 이에 대해 윤 위원장은 “ADB 이사 사의 표명과 이번 인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대답은 피해 궁금증은 남는다.금융계에서는 윤 위원장이 노대통령과 민주화운동 동지였던 고 이수인 의원과 처남·매부지간인 점을 주목, 이런 인연이 이번 인사의 한 배경이 됐을 것이란 추측도 했다.

윤 위원장의 장점은 실제 구조조정 참여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97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으로 일하며 현 금감위와 금감원을 태동시킨 금융감독체계 개편 실무작업을 이끌었다. 전통 금융 전문가로 금융전반에 대한 전문성과 식견을 보유하고 있고 금융계와 관계 부처 등의 신망이 두터운 인물로 알려진다. ‘실무경험’측면에서도 그는 “아시아개발은행에서 축적한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금융감독의 선진화와 금융감독 시스템 개선 등 산적한 현안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 노조측은 윤 위원장의 내정 결과 발표 직후 성명을 통해 “윤 위원장은 97년 환란사태의 직접 책임자며 전형적인 재무관료로서 재경부의 영향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중립성이 제일 우선시돼야 할 금융감독기구의 장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윤 위원장은 “구조적인 문제가 누적된 결과였다. 당시 실무자로서 뼈아픈 경험을 했고 이를 새로 시작하는 공직생활의 교훈으로 삼겠다”고 전했다.윤 위원장은 지난 97년 금융정책실장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책임을 지고 세무대학장을 거쳐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로 밀려났었다. 외환위기 때 금융정책 실무를 맡았던 사람이 금융감독당국의 수장 역할을 잘 수행하겠느냐는 시각은 여전히 윤 위원장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또 8월 중순 정부혁신위의 ‘금융감독기구 개편안’의 최종 결과를 앞두고, 금감원 노조와 정부와의 조율을 잘 마무리하는 일이 그에게 던져진 첫 번째 테스트가 될 전망이다.

공도윤  syoom@ilyosoe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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