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적 지위이용 ‘길들이기’하나
우월적 지위이용 ‘길들이기’하나
  • 김영민 
  • 입력 2004-06-16 09:00
  • 승인 2004.06.1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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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명예퇴직을 조건으로 인가해준 ‘카클리닉(부분정비업소)’에 대한 횡포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주장은 현대차가 지난 99년 3월 계열사였던 현대자동차써비스를 합병하면서 합병 전에 이뤄진 현대차써비스와 직원 간의 지정정비업소 계약을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파기하면서 불거져 나왔다.서울을 제외한 전국 직원 카클리닉 대표들이 협의회를 구성해 조직적인 대항 움직임을 보이자 현대차는 협의회를 구성한 주동자에 대해 계약해지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전국 카클리닉 대표 모임인 ‘그린협의회’ 회장이 현대차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 결과 1심에서 승소하면서 현대차의 카클리닉을 상대로 한 숨겨진 내용이 들춰지고 있다.

그린 협의회 vs 현대차

지난 80년부터 96년까지 현대차써비스에서 근무하던 윤모(49)씨는 경력 10년 이상의 장기근속직원에 대해 퇴직을 조건으로 10년을 의무계약기간으로 하는 직원 카클리닉을 인가하겠다는 당시 현대차써비스의 제안에 따라 퇴사를 결심하고 96년 7월 카클리닉 지정 계약을 체결했다.또한 현대차써비스는 ‘대여금 최종 상환기일은 대여일로부터 10년 후이고, 최고 1억원까지 3년간 무이자 혜택을 주며 그 후 7년간 원금 및 이자를 균등분할상환하되 3000만원에 대해서는 무이자로 한다’는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다.이에 윤씨는 현대차써비스로부터 1억원을 차용, 카클리닉을 창업하고 필요한 장비와 시설을 설치해 영업을 시작했다.하지만 지난 99년 3월 현대자동차와 현대자동차써비스가 합병되면서 현대차와 ‘직원 카클리닉’간에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의무계약기간 10년이던 것이 1년 단위 재계약으로 변경됐다.이러한 일방적인 현대차의 계약 변경 등에 불만을 품은 카클리닉 대표들은 현대차와의 대등한 의사소통을 위해 지난 2000년 7월 ‘그린협의회’라는 현대 지정정비업소 모임을 만들고 회장으로 윤씨를 선임했다.

이후 그린협의회가 임원회의와 홈페이지(www.hynndai-center.co.kr)를 통해 현대차에 대한 요구사항과 불만을 표출하자 현대차는 회장인 윤씨에 대해 그린협의회 발족 10개월만인 2001년 5월 현대차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상호신뢰존중의 계약관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계약 종료를 통보하고 거래를 중단했다.그린협의회 회장인 윤씨는 자신의 카클리닉을 통해 현대차 보증수리업무(보증기간동안 무상수리)를 하면서 월 평균 78만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으나 현대차가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하자 매출이 급격히 하락해 지난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이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 민사합의17부(신성기 부장판사)는 지난달 말 “현대차가 합병 전 현대차써비스와의 협정 체결로 10년 의무계약기간을 보장해줄 신의칙상의 의무가 있다”며 “계약이 파기된 2001년 7월부터 계약이 재개되는 날까지 월 평균 매출의 70%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명예퇴직을 조건으로 직원 카클리닉을 인가받은 현대차써비스 퇴직자 약 300여명(추정)은 현대차의 현대차써비스 합병으로 무산된 10년의 계약기간을 유지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이에 대해 현대차는 “윤씨가 그린협의회 활동에만 신경을 쓰느라 카클리닉 관리에 소홀히 했고 그린협의회를 통해 현대차의 상표권을 침해하고 현대차를 비방해 명예를 훼손하는 등 상호 신뢰관계를 손상시켰다”며 “약관상 계약 해지의 사유로 정해진 ‘현대차에 대한 직간접적인 재산상의 손실 및 부당한 손해를 주는 행위를 하였을 때’에 해당하므로 거래중단은 정당하며, 현대차가 직원 카클리닉과 일반카클리닉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정비업체 협정의 유효기간을 일률적으로 1년으로 통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윤씨의 대리인측은 “이번 판결로 현대차가 직원 카클리닉에 대한 우월권 행사가 어려워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하지만 이번 법정 소송으로 인해 현재 그린협의회 활동이 중단된 상황이어서 앞으로 활동이 재계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그린협의회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10년 이상 장기근속 직원에 대해 지정정비업체 지정계약을 체결한 것은 해고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명예퇴직을 종용하고 계약 이후에는 억대가 넘는 설비투자를 한 직원들이 현대차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는 약점을 이용해 10년 의무계약에서 단기 1년 계약으로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등 현대차의 횡포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현대차는 그동안 윤씨 이외에 업무상의 문제로 다수의 직원 카클리닉에 대한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함으로써 비판을 받아왔다.

법정 공방 관심

현대차와 윤씨간의 법정 공방에서 현대차의 횡포에 대해 집중 거론됐다.현재 약 300여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전국의 직원 카클리닉은 일반 자동차 수리 이외에 현대차의 보증수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보증수리 업무는 현대차의 A/S 규정에 따라 재질상, 작업상의 결함으로 차량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무상으로 수리해주는 것을 말하는데, 직원 카클리닉이 문제의 차량에 대해 무상으로 수리를 해주고 수리비를 현대차에 청구하는 식으로 이뤄진다.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현대차 직원들은 보증수리로 인해 부품 교환이 요구될 경우 고가의 부품을 신품이 아닌 중고품으로 교환하는 편법을 동원하면서 차액을 챙겼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린협의회에 따르면 대구에 있는 K 카클리닉과 J 카클리닉의 경우 현대차 직원들이 자동차 미션을 교환할 경우 신품(180만원 가량)의 3분의 1도 안되는 중고품(50만원)으로 교환해주라고 강요하고 현대차 본사에는 신품을 교환했다고 청구하는 식으로 약 1억원 이상을 챙겼다는 것.현재 대구, 광주 등 일부 지정정비업체는 부품교환에 있어 중고부품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현대차 본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했으나 현대차 직원이 직접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계약 해지 무효소송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현대차는 자동차 정비에 필수 장비가 아닌 기계를 전체 지정 카클리닉에 강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윤씨는 “현대차가 지역사업소를 통해 엔진 전기점검 장비를 사라고 강요해 전체 카클리닉의 90% 이상이 250만원을 들여 구입했다”며 “실제 활용도가 없을 것으로 판단해 구입을 꺼렸으나 현대차 지역사업소 책임자까지 찾아와 무언의 압력을 넣어 어쩔 수 없이 구입했다”고 말했다.

일부 카클리닉은 현대측이 엔진, 미션 등 종합진단장비인 ‘HDS’ 구입을 요구해 3300만원을 들여 이 장비를 구입했으나 현재 이 장비의 A/S팀이 해체된 상황으로 장비 수리와 업그레이드도 지원되지 않아 최근 500만원에 팔아치우는 등 현대차의 장비 강매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또한 지정 카클리닉에서 보증수리를 할 경우 문제 차량에 대해 진단을 내리면 현대차는 수리비가 많이 지출된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하고, 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 카클리닉의 고객서비스 점수를 낮게 부과하는 등 카클리닉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린협의회 관계자는 “카클리닉에서 차량에 대한 수리견적을 뽑으면 매번 현대차 직원들이 사업소로 불러 수리비를 줄이라는 말만 거듭해 교통비만 날리는 경우가 많아 일부 카클리닉에서는 3만원 미만의 보증수리 업무는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며 “반드시 교환이 요구될 경우 고가부품에 대해서는 현대차 직원들이 중고품을 사용하라고 강요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이러한 현대차에 대한 불만이 그린협의회를 통해 외부로 표출하자 현대차는 현대차 대표 명의로 ‘홈페이지 삭제와 상표 사용을 중단하지 않으면 형사고발하겠다’는 내용증명을 그린협의회측에 발송하기도 했다.또한 윤씨를 제외한 다른 카클리닉 대표들에게 ‘계약을 해지 하겠다’며 강제적으로 그린협의회 탈퇴를 종용하고 집단 탈퇴서를 받은 사실도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다.

김영민  mosteve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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