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정치쇼? 누가 ‘덫’을 놓았나
예견된 정치쇼? 누가 ‘덫’을 놓았나
  • 김종민 
  • 입력 2004-03-24 09:00
  • 승인 2004.03.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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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탄핵안 가결에 반발 해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시위.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음모론’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물론 핵심은 이번 사태가 오기까지 ‘노 대통령이 덫을 놨느냐, 아니냐’다.탄핵안 가결까지의 일련의 상황을 되짚어 보면, 야당이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탄핵안을 발의한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를 거부하는 기자회견을 해 야당을 격앙시켰고, 이에 흥분한 야당이 탄핵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이후 탄핵 반대여론이 고조됐고, 친노세력의 결집 및 우리당 지지율 급상승 효과를 가져왔다는 잘 짜인 논리다. 결과만 놓고 볼 때 음모론은 사실 그럴듯한 얘기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 탄핵 가결에 반대하는 여론의 역풍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일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탄핵 가결에 반대하는 여론이 60∼70%에 이르고,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급상승, 한나라당을 15∼20%포인트 가량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도 탄핵반대가 60∼70%에 이르고 호남은 90%에 육박하고 있다. 게다가 한나라 텃밭인 TK, PK에서 정당지지도는 우리당이 한나라당을 앞지르는 역전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으며,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는 탄핵이후 우리당 지지율이 급상승, 민주당보다 2∼3배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우리당과 민주당으로 양분되었던 호남이 우리당으로 정리되어 가는 양상이다. 더욱이 551개 전국 시민사회단체, 변협, 민변 등이 탄핵안 가결에 반발하고 있고, 광화문을 위시해 전국 곳곳에서 ‘탄핵불복종 시민운동’ 촛불시위가 매일 저녁 7시에 전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은 지지율 하락과 함께 탄핵안 의결에 불참했던 설훈·조성준·정범구·박종완 의원이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주도한 조순형 대표 등 당 지도부의 총사퇴를 촉구하고 나서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지난 14일 설의원 등은 성명을 통해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탄핵안을 가결시킨 것은 잘못”이라고 적시하고 “조순형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탄핵안을 발의하고 가결시킨 것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상시 행보를 같이해 왔지만 막판 탄핵안 가결에 동참한 추미애 상임중앙위원까지 포함한 지도부의 총사퇴를 요구한 것이다.이들은 또 “16대 국회의 탄핵안 가결은 국민의 뜻이 아니다”라며 “당 지도부가 총사퇴 하는 것만이 국민들께 사죄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거듭 주장했다.설훈 의원은 특히 “당에서‘해당행위’라고 하는 사람이 다수라면 이 당은 절망적”이라고 말해 당 지도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탈당까지 계획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설 의원은 이어 “탄핵에 찬성했던 의원들도 후회하고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며 조직화할 가능성도 내비쳤다.이에 대해 조대표는 “조직 구성원의 기본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내가 당대표로 있는 한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방법으로 상응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사퇴 요구를 일축, 내분이 재연되고 있는 상황이다.더욱이 국민의 정부에서 각료를 지내고 민주당에 영입된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고재방 전 청와대 부속실장도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항의하며 민주당을 잇따라 탈당했다.

이 같은 ‘DJ맨’들의 탈당은 탄핵안을 계기로 한-민 공조가 깊어지자 나타난 것으로 민주당 정체성 위기를 드러내는 ‘적신호’로 관측되고 있다. 한나라당 역시 선거대책위원회 출범 및 전당대회 등 일정을 수정하는 한편 탄핵안 가결을 둘러싸고 ‘국정혼란’ 여부에 대한 선전전을 펼치는 등 새로운 총선대책 수립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소장파들도 전당대회를 무산시키려는 술책이라며 반발하고 나서 당 내홍이 재연될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이 때문에 한나라당과 민주당 두 야당은 “지금 상태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란 불안감에 휩싸여 있고, “노 대통령이 놓은 ‘덫’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 아니냐”는 자조섞인 목소리까지 흘러나오고 있다.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노대통령이 미리 예상해 야당을 링으로 끌어올렸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도 “노대통령이 사과만 했다면 탄핵이라는 극단적 사태를 모면할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이를 거부한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많은 사람들은 노 대통령 스스로가 탄핵정국에서 피해자로 인식되도록 도박을 했고, 그 결과는 노대통령이 바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고 덧붙였다.그러나 과정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 시각이다. 당장 음모가 성립되려면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음모에 가담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열린우리당의 주장이다.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측은 “음모론은 탄핵에 대한 국민의 반대 여론이 비등하자 이를 호도하려는 야당의 역음모”라며 “음모를 하다 보니 모든 게 음모로 보이는 모양”이라고 일축했다. 이평수 열린우리당 수석부대변인도 “언급할 가치도 못 느끼겠다”며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김종민  kjl9416@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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