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노무현 당선자 인수위시절, 손 고문(당시 전경련 부회장)은 “우리나라에 재벌은 없다”며 현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이 발언이후 현정부와 전경련은 일촉즉발의 갈등을 빚었고, 결국 손병두 부회장은 상임고문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그리고 손 고문은 지난달 23일 전격 해임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임기가 다 됐다’는 것이다.전경련 관계자는 “전경련 내규에 의하면 상임고문은 임명권자와 임기를 같이 한다고 규정돼 있다”며 “이에 따라 손 고문의 경우, 손길승 전회장이 임명한 만큼 이 규정에 따라 물러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다시 말해서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2월 전경련 회장에 취임하면서 손병두 당시 부회장을 상임고문에 임명했으며 손 회장이 지난해 10월 퇴진했고, 그동안 대행이었던 강신호 회장이 지난달 18일 총회에서 정식 회장에 추대됨에 따라 손 고문의 임기가 끝났다는 것이다.그러나 일각에서는 손 고문의 해임 배경을 두고, 각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시기상의 문제다. 재계에서는 손 고문의 사임 시점이 지난달 18일 총회가 아닌 총회 후 5일이나 지난 후에 이뤄졌다는 점을 의아해하고 있다.또 재계안팎에서는 ‘강신호- 현명관 체제’확립을 위해서 손 고문이 희생(?)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손 부회장은 서울 상대를 졸업한 뒤 공채 2기로 전경련에 입사했다. 이후 삼성으로 옮겨 회장 비서실에서 이사까지 지냈고, 동서경제연구소 소장,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등을 역임했다.그리고 본격적으로 전경련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97년.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전경련회장에 선출되면서 부회장에 선임되면서부터다. 이후 손 부회장은 외환위기를 전후해 DJ정부의 개혁 정책과 빅딜(대규모 사업맞교환)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6년여동안 상근부회장직을 역임하며, 재계의 조율을 맡았다.
재계에서 그의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는 경륜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로 전경련 부회장직을 맡으면서 재계를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특히 정부 정책에 맞서 소신 있는 의견을 내놓아, 전경련의 위상을 높였다”고 밝혔다.이처럼 손 고문은 전경련에 오랫동안 몸 담으며, 내부장악력과 영향력이 그만큼 컸었다. 이에 따라 손 고문이 물러남으로써 전경련내에서‘강신호-현명관’체제가 강화될 것이란 얘기다.이와 함께 손 고문의 퇴장으로, 정부와 전경련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란 관측이다. 현정부로서는 그간 정부정책에 ‘쓴소리’를 했던 손 고문이 물러남으로써, 전경련과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더욱 성숙해진 셈이다.실제로 최근 전경련과 정부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손 고문 퇴임직전인 지난달 22일에는 이헌재 부총리와 강신호 전경련 회장이 전격 회동했다.‘경제 수장’인 이 부총리와 ‘재계 수장’격인 강 회장간의 만남으로 인해 참여정부 출범 이후 소원했던 정부와 재계의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이날 회동에서 이 부총리와 강 회장은 경제 회복과 고용 증대 등 당면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등 ‘정·재’가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이와 같이 ‘손 고문 해임’에 대해 각종 해석이 분분한 것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억측일 뿐이다. 손 고문의 퇴임은 내규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손 전고문은 퇴임후,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전경련 부회장 재직시 겪었던 빅딜 등에 관한 책을 쓸 생각”이라고 전했다.
정하성 haha7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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