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초려’ 이루어지나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인 가운데, 오는 18일 선출될 차기 전경련 회장은 어느 때보다 재계의 의견을 강하게 담아낼 수 있는 인물이 추대돼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이건희 회장을 차기회장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었다.이 회장은 지난 2000년과 2003년에도 전경련 회장후보에 추대되는 등 영원한 전경련 회장 후보 1순위이다. 당시는 본인이 강력하게 고사해 회장직 추대가 무산되었다. 2000년에는 ‘60세까지는 기업경영에 주력하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지난해에는 건강문제를 거론하며 역시 고사했다. 그러나 최근 이 회장의 행보를 볼 때 차기회장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이 회장은 지난달 청와대 회동 이후 미국으로 출국해 지난 5일 모임에는 참석지 않았으나, 오는 18일 정기총회에는 참석할 예정이라고 삼성측은 밝히고 있다. 특히 지난 청와대 회동 당시 구본무 LG회장에게 ‘전경련 회의에 자주 참석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최근 전경련에 대한 관심을 거듭 밝혀 주목받았다.전경련 내에서 이 회장 추대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은 현명관 전경련 상임 부회장.현명관 부회장은 삼성그룹 비서실장을 거쳐 삼성물산 일본담당 회장을 지내던 지난해 2월, 이건희 회장의 추천으로 전경련 부회장에 오른 인물로 전경련 내 대표적인 삼성 인맥. 현 부회장은 최근 “회장단의 의견을 들어봐야겠지만, 최선의 방안은 이건희 회장이라는 것이 변함없는 나의 소신이며, 이 같은 의견을 회장단에 전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구학서 삼성 구조본부장의 소환이 임박한 가운데, 이 회장 자신도 장기간 미국에 머무르는 등 조심스런 행보를 하고 있어 이번에도 회장직을 고사하리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장남인 이재용 상무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점도 이 회장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요인이다.
강신호 회장 유임도 거론돼
이건희 회장 추대론이 흐지부지 된다면, 차기 전경련 회장은 강신호 현회장의 유임으로 가닥 잡힐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손길승 회장의 사퇴 이후, ‘회장단 중 최연장자가 회장직을 대행한다’는 내부규정에 따라 몇 차례 고사 끝에 수락했던 강 회장. 그는 회장대행 취임 이후 ‘경제 상황을 감안해 대선자금 관련 기업수사를 조기에 종결할 것’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계속해왔다. 강 회장이 취임이후 비교적 재계의 목소리를 잘 반영해왔다는 점과 현재로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점 때문에 강 회장 유임 가능성이 유력하다.
회장 대행직을 수행하다가 정식회장에 취임한 전례도 있다. 지난 99년 김우중 당시 전경련 회장이 중도하차하자, 김각중 경방 회장이 대행직을 수행하다가 이듬해 2월 정기총회에서 정식 회장으로 추대된바 있다. 김각중 회장은 지난해 손길승 체제 출범 전까지 전경련 회장직을 맡아왔다. 강신호 회장 체제로 전경련이 재편된다면, 향후 전경련은 ‘회장단 집단 지도체제’로 꾸려질 전망이다. 강 회장의 재계 내 영향력이 비교적 크지 않기 때문에 집단지도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이다. 이 경우에 주요그룹 회장단들의 협조 여부가 필수적. 지난해의 경우, 손길승 회장 체제가 출범할 당시 이건희 회장이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하며 현명관 부회장까지 파견시켰고, 각 주요 그룹 회장들도 협조의 뜻을 표한바 있다.구본무 LG회장, 정몽구 현대차회장 등 나머지 그룹총수들이 전경련 차기 회장에 추대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 본인들의 강경한 고사도 그렇거니와 이들 기업 역시 대선자금 수사 등으로 곤혹스러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경련은 강신호 회장을 포함해 7인으로 구성된 회장추대위원회를 통해 본격적인 차기회장 물색작업에 들어갔다. 이건희 회장에 대한 ‘삼고초려’가 이루어질 것인가, 강신호 회장대행의 정식회장 출범으로 마무리될 것인가, 검찰수사와 각종 경제현안을 두고 오는 18일 전경련 총회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수익 sipark@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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