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변호사로만 구성된 ‘변호사 노조’ 의미는?
국내 최초! 변호사로만 구성된 ‘변호사 노조’ 의미는?
  • 강민정 기자
  • 입력 2018-08-03 20:05
  • 승인 2018.08.03 20:05
  • 호수 1266
  • 2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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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할 수 있는 기폭제 돼야
변호사 노조 측 대리인을 맡은 메이데이 유재원 변호사
변호사 노조 측 대리인을 맡은 메이데이 유재원 변호사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지난달 24일 국내 최초로 ‘변호사 노조’가 탄생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들로 구성된 이 노조가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교섭 단위 분리 결정을 받은 것이다. 이들이 노동계에 만들어 낸 새로운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일요서울이 법률사무소 메이데이의 유재원 변호사를 만났다.

하루 14~5시간 근무 관행처럼 여겨져…변호사 근로 형태 사실상 ‘사각 지대’
유 변호사 “서로 하는 일이 다를 뿐…복수노조 간 교류와 연대 이뤄져야”


변호사 노조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이하 구조공단)에 근무하는 소속 변호사들로 이뤄진 기업 단위 노조로, 현재 가입 인원은 총 19명이다.

이들은 앞선 3월 5일 출범해 같은 달 26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 단위 분리 신청을 냈지만 지난 4월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이에 대해 기각 결정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중앙노동위원회(이후 중노위)가 경북지방노동위원회의 초심 판결을 깨고 구조공단 소속 변호사 노조와 일반직 노조를 분리해 별도 교섭단체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교섭창구 단일화’
덫에 걸린 복수노조
 

변호사 노조 설립은 변화하는 시대 상황을 반영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고학력자들은 이전에는 프리랜서 형태로 근무했으나 이젠 이들 역시 어딘가에 소속돼 8~10시간 정도 근무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유재원 변호사는 이를 두고 “상시 일한다는 ‘근로’의 의미로 보면 이들도 근로자다. 앞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지식 근로자’라 할 수 있다”고 정의했다.

아울러 “(이전까지) 파견법이나 기타 비정규직법에서는 연구직·전문직은 예외로 둬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지만, (고학력자가 많아진) 21세기 사회에 맞춰 이들도 상시 노무를 제공하는 근로자성(性)이 있으며 이들이 모여 자신들의 근로 조건을 얘기한다면 노조 결성·활동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들이 이룬 교섭창구 분리가 갖는 의미에는 먼저 구조공단 내 일반직 근로자 550명이 속해 있는 ‘일반직 노조’와 소속 변호사들로 구성된 ‘변호사 노조’라는 복수노조로 운영됐다는 배경이 있다.

이전까지는 한 사업장 당 하나의 노조만 설립할 수 있었으나 2011년 7월 새로운 노동조합법이 시행되면서 하나의 사업장에도 여러 개의 노조를 만들 수 있는 ‘복수노조’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복수노조 설립은 가능하지만 ‘교섭창구 단일화’로 인해 사실상 도루묵이라는 것이다.

유 변호사는 “복수노조 (체제) 아래서는 노조 수가 많이 있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라 교섭 창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변호사 노조의 경우) 노조 결성까지는 좋았으나 교섭창구 단일화에서 막혔던 것”이라고 말했다.

교섭창구 단일화란 노조가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때 사업장 내 노조 사이 의논을 거친 뒤 교섭대표를 여러 노조 중 한 곳으로 정하는 것을 뜻한다.

교섭대표 선정은 대개 다수결로 이뤄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소수노조의 경우 자신들의 의견이 교섭에 반영되기 어렵다.

이러한 실정을 두고 유 변호사는 “복수노조를 만들어 놓고 (교섭창구를) 단일화해 다수노조가 끌고 가게 한다면 노조권을 과연 보장해 준 것이냐”며 비판했다.

정계를 비롯한 학계에서도 복수노조 아래 교섭창구 단일화를 두고 여러 논의가 오가고 있는 상황이다.
 
1주일 90시간 근무
임신 이유로 ‘강제 휴직’

 
사회에서는 변호사라는 직군을 대할 때 ‘전문직이다’ ‘일이 힘든 만큼 돈을 많이 벌지 않느냐’ ‘개업하면 되지 않느냐’는 등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면이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이들은 실제 과도한 근무에 시달리는 등 좋지 않은 업무 환경에 처해 있다.

유 변호사는 변호사 업계의 잘못된 관행으로 ▲자신의 업무량이 확인 안 된다는 점 ▲변호사를 근로자로 인식하지 못해 처우 개선 요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점을 꼽았다.

그에 따르면 한 변호사가 30~50개의 사건을 담당했을 경우 과도한 업무량이 발생하지만 이를 ‘재량근무제’ ‘포괄임금제’ 등으로 묶어 놓기 때문에 자신의 업무량이나 업무 시간 등을 관리하기 어렵다.

일례로 1주일에 90시간 넘게 근무한 어느 로펌 변호사가 뇌암에 걸려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하루에 14~5시간을 일한 꼴이다.

유 변호사는 “(변호사들의 근무 환경은) 거의 사각 지대”라며 “암암리에 과로사나 과로우울증 등을 앓는 이들은 더 많다. 과로와 무한근로제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변호사들은 근로자로 인식되지 못하다 보니 육아휴직제도, 근로시간휴게제도를 비롯한 여러 가지 복리후생이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2013년에는 임신을 이유로 고용된 여성 변호사를 강제 휴직 처리한 법무법인 대표도 있었다.

해당 법무법인은 2013년 6월 당시 소속 변호사 A씨에게 혼인·임신을 이유로 9개월 무급, 3개월 유급 형태로 1년 동안 강제 휴직을 시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강민정 기자 km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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