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의혹들 다시 수면 위로 LG 어디로 가나
과거 의혹들 다시 수면 위로 LG 어디로 가나
  • 김지산 
  • 입력 2003-11-27 09:00
  • 승인 2003.11.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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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정국을 주도하는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지난 11월7일 주목할만한 발언을 했다.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치권에 전달한 기업은 빨리 검찰에 협조하라. 수사가 시작된 뒤 오면 소용없다”. 기업들에 대한 사실상 선전포고였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14일, 검찰이 LG그룹 구본무 회장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린 사실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대기업 오너로서 처음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진 구 회장과 검찰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재계에 회자되는 얘기들은 검찰이 LG그룹에 수사 자료 요청을 수차례 넣었지만 LG가 성의를 보이지 않자 검찰이 구본무 회장에게 출금조치를 내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안 중수부장의 ‘자수권유’ 발언과 구 회장 출금조치 사이의 1주일 기간이다. 길다면 길 수도 있고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1주일이 오너 출금조치까지 내려질만한 기간인지에 대해서 재계는 다소 회의적이다. 출금조치를 미리 염두에 두고 ‘자수권유’ 기간을 1주일로 잡아 명분을 만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안 중수부장의 발언은 LG를 향한 사전 정지작업을 연상케 한다.물론 이 발상에 문제가 없지 않다.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진 것은 구본무 회장이지만 막상 가장 먼저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은 총수는 금호그룹의 박삼구 회장이다. 그리고 비자금 수사 범위가 너나 할 것 없이 재계 전체에 고루 미치고 있다. 검찰 역시 “괜한 발상”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LG홈쇼핑을 압수수색 했다는 사실은 최근 몇 년간 LG의 발목을 잡아온 대주주 일가와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 의혹을 새삼 끄집어내기에 충분하다. LG정보통신이 구본무 회장 등 대주주 일가를 상대로 LG홈쇼핑 주식 거래를 한 시기는 99년이다. 검찰이 LG의 과거 파일들을 매우 면밀히 검토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검찰이 단서를 잡았다고 알려진 LG그룹의 비자금 조성 경위는 대주주 일가가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통해 시세차익을 남겨 이를 비자금으로 연결시켰다는 것이다.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LG홈쇼핑의 경우 내부거래 당사자가 아닌 거래 ‘매개’ 역할을 한 점을 검찰이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가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내용은 이렇다. 99년 4월, LG정보통신이 보유 중이던 LG홈쇼핑 주식 101만6,000주를 대주주 일가에 주당 6,000원에 매도했다.

당시 이 거래가 부당내부거래 의혹을 샀던 이유는 같은 해 12월 종근당이 LG홈쇼핑 주식을 주당 10만원에 매각한데 이어 2000년 1월에는 LG홈쇼핑이 코스닥 등록시 공모가를 주당 5만5,000원에 산정했다는 데서 비롯됐다. 코스닥 등록시 공모가를 기준으로 하면 대주주 일가는 주당 4만9,000원씩, 모두 500억여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계산이 성립된다.2000년 7월 참여연대는 이 거래에 대해 공정위에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요청했으나 공정위는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검찰이 이 사건에 ‘비자금 조성’이라는 단서를 잡고 수사에 착수한 이상 부당내부거래 의혹을 사왔던 LG그룹의 내부거래들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얼마 전까지 부당내부거래 조사는 공정위 고유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으나 올초 검찰이 SK 계열사와 최태원 회장의 계열사 주식 스왑(주식 맞교환)에 대해 ‘배임’ 혐의를 적용, ‘범죄수사’ 사례를 남긴 것도 이러한 정황의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참여연대에 의해 주주대표소송이 진행 중인 LG화학과 대주주 일가의 LG석유화학 주식 스왑 역시 민사에서 형사 사건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이 거래는 일전에 공정위가 부당내부거래 판정을 내린 바 있어 높은 주목을 받고 있다. 거래의 시초는 LG홈쇼핑건과 마찬가지로 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그해 LG화학은 대주주 일가에 LG석유화학 주식 2,700만여주를 주당 5,500원의 헐값에 매각했다. 공정위는 이 거래를 부당내부거래로 판정하고 법인에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02년 4월, LG화학은 오너일가로부터 LG석유화학 주식 632만주를 주당 1만5,000원씩 매입하는 대신 LG투자증권 주식 526만5,600여주를 주당 1만9,000원에 넘겼다. LG화학은 3년만에 3배 가까운 가격에 매물을 다시 사들인 것이었다.

이 거래로 대주주가 남긴 이익은 최소 1,900여억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이와 비슷한 유의 내부거래를 하나의 범주로 묶을 경우 검찰 수사는 더욱 방대해질 수밖에 없다. 99년 내부거래와 2002년 내부거래 사이에 부당내부거래 의혹을 받았던 거래들이 대부분 비슷한 유형을 취하고 있다. 2000년 4월 대주주 일가가 비상장 계열사인 LG칼텍스정유와 LG유통 보유 주식을 각각 주당 15만원, 11만원에 매각한 일 등이 앞서 언급한 범주에 속한다.LG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치 SK 수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배임’에 집중한 것으로 비쳐지는 일련의 수사에 대해 재계에서는 SK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압수수색에 이어 오너에 대한 정면 압박이 SK 수사 때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2위 LG그룹의 숨통을 쥐고 있는 검찰이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재계의 압박 속에 어떻게 수사를 진행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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