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안건은 이덕훈 행장을 비롯해 최병길 김영석 부행장에 대한 징계 수위 결정. 우리카드 경영정상화에 대한 우리금융의 지시를 어긴 데 따른 것이었다.위원회는 최병길 김영석 우리은행 부행장을 소환했다. 경영기획본부장인 최 부행장에게는 우리카드 증자를 위한 중간배당 절차에 무리가 있었던 경위를 설명 듣고, 신용관리본부장인 김 부행장에 대해서는 9월말 부실자산매각 가격의 적정성 여부를 추궁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금융과 우리은행 경영진간 내분이 일어난 첫 단추가 끼워지는 순간이었다.우리금융이 주목한 우리카드 증자 과정은 이렇다. 우리금융은 9월말 우리은행으로부터 투자 지분에 대한 중간배당으로 3,800억원을 받는다. 우리금융은 여기에 2,600억원을 보태 6,400억원을 우리카드에 출자했다. 우리카드는 2분기말 현재 연체율이 11.67%로 기준치인 10%를 넘겨 적기시정조치를 받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김영석 부행장이 지적을 받은 부실자산매각 가격의 적정성은 회의가 끝난 이후부터 우리금융이 이덕훈 행장을 몰아 세운 중요한 명분이 됐다.우리은행은 부실자산 처리를 위해 지난 2000년 한빛SPC(유동화전문회사)를 설립하고 여기에 부실자산을 매각했다. 한빛SPC는 기초자산(부실자산)을 근거로 채권을 발행했고 2/4분기말 현재 모든 선순위채권을 상환한 상태다. 그러나 아직 상환되지 않은 일부 후순위채권을 우리은행이 모두 보유하고 있다.한빛SPC는 부실자산 처분을 비교적 잘 해냈다. 상환한 채권을 제외하고 남은 7,032억원의 자산 중 4,932억원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다. 문제는 우리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후순위채권을 우리은행이 감액손실 처리했다는 점. 여기에 채권이 부실화 할 경우를 대비해 마련해놓은 상환보장유보금(CR)에 대해서도 충당금까지 마련했다. 그 결과 우리은행은 2/4분기에 약 1,980억원의 이익을 반영하지 못했다.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는 금융감독 당국으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우리금융그룹 전체자산 중 80%를 우리은행에 의존하는 우리금융으로서는 펄쩍 뛸 일.윤병철 회장과 우리금융은 이에 대해 ‘분식회계’를 적용시켜 이덕훈 행장 등 우리은행 경영진에 징계를 내렸다. 분식회계라고 하면 보통 이익을 과대계상하거나 손실을 축소시키는 것이 상식이라는 점에서 우리은행의 분식회계는 흔치 않은 경우다.
13일, 분식회계에 대한 징계로 이덕훈 행장에게는 엄중 주의조치가, 최병길·김영석 부행장에게는 정직 이상의 중징계 요구조치가 내려졌다. 우리금융은 공식적으로 분식회계를 밀고 나왔지만 분식회계 말고도 우리금융과 우리은행 경영진은 오랜 갈등에 휩싸여왔다는 게 업계의 오랜 입소문이었다.공교롭게도 최병길·김영석 부행장 모두 이덕훈 행장과 함께 우리은행 배당을 통한 카드사 증자방식에 반대, 합병을 주장해온 인물들이다. 우리금융과는 노선을 달리해왔던 것. 우리금융은 은행-증권-카드로 구성된 금융지주 체제를 유지해야 각 자회사들의 전문성과 경영효율성이 유지된다는 입장이다.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이 이덕훈 행장측의 주장대로 우리은행과 우리카드가 합병한 이후 부실화를 초래할 경우 우리금융에 책임론이 대두될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게다가 내년 3월로 우리금융 및 자회사 경영진의 임기만료가 다가옴에 따라 우리카드 처리 해법이 임기 이후 거취를 좌우할 것이라는 예상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금융과 우리은행 경영진의 오랜 갈등을 보여주는 단면 하나. 지난 8일, 우리금융은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 끝에 ‘지주사의 경영전략과 정책에 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자회사 경영진에게 해당 임직원의 문책을 요구할 수 있다는 ‘MOU 조항’을 들고 나왔다. 상위조직이 하위조직 임원진에 대해 문책을 요구하는 데 MOU 조항이라는 거창한 이유를 들이댄 것은 왜일까.지난 2001년 7월 우리금융은 옛 한빛은행(우리은행의 전신)에 목표 실적 이행을 요구하며 요구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해당 임원을 해임하는 등 인사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MOU 체결을 요구했다. 그러자 한빛은행은 행장에게 자율적인 경영위임권을 보장하라는 부수적인 내용을 MOU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사실상 인사권 독립으로 우리금융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의미. 결국 이 문제는 우리금융의 의지대로 해결되기는 했으나 양측 경영진의 대립은 해소되지 않은채 지금까지 흘러왔다.우리금융과 우리은행 경영진의 대립은 서로 한발씩 양보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졌지만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보다못한 감사원이 사태 진상 파악에 나서겠다고 공표하는 등 정부측 해법이 제시될 가능성이 커졌다. 내년 3월 임기가 다하는 우리금융그룹 경영진의 표정이 어떻게 엇갈리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지산 sa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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