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들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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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07-16 09:00
  • 승인 2003.07.1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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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젊은 사람이 최근에 잠깐 귀국해서 들려준 이야기.그가 있는 대학에도 한국 학생이 많아져서 오늘의 젊은 대학생들의 실상을 새록새록 많이 알게 된다고 한다. 그런 학생들을 상대로 해서 교재를 만들어야하는 그는 최근에 한국서 사회학 계통의 전공을 한 한 대학원 출신의 유학생은 영어 실력이 그런 대로 괜찮고 문장력도 있어서 그에게 우리 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시켰다. 그런데 시켜놓은 번역 글에 군데군데 공백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학생을 불러 물어 보았다.‘여기는 뭔데 비어 놓았지?’그러자 그는 원문에 모르는 한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영어를 곧잘 하고 사회계열 학문을 하겠다고 미국유학까지 온 사람이 모를 만큼 어려운 한자가 없을 것 같은 원문이었는데 어떤 한자를 모르겠다는 것일까. 그래서 원문을 놓고 알아보았더니 한 곳은 ‘封建制度(봉건제도)’였고 또 한 곳은 ‘專制君主(전제군주)’였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이 정도의 한자는 모른다고 빼먹고 번역할 만큼 그렇게 어려운 한자가 결코 아니다.

더구나 사회계열의 공부를 하고 있는, 그래서 그 전공으로 한국서 대학원을 끝낸 사람이 이런 한자를 모르면서 전공 학문을 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왔다는 것은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오늘날의 국제 사회에서는 학문세계에서만 아니라 어느 분야든 한자는 아주 중요한 지력의 원천이 되는 문자다. 일부러 유학도 가서 배워 오면 유리한 것이 한자 문화이고 한문 지식이다. 한자문화권에 있는 우리는 초등과정부터 우리말과 글에 담겨 있는 한자의 원리를 한자공부로 익힐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유리한 조건인가. 그가 잠깐 다니러 온 모국에서 전교조가 어린아이들까지 무기 삼아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뛰쳐나와 주먹을 휘두르며 투쟁을 외치는 것을 보며 젊은이는 한탄스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하다못해 우리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 한자의 지식을 어디까지 알게 해야 하나 하는 것이라도 교육계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정책을 세워 교육에 임했으면 좋겠다. 그밖에도 우리의 교육 현실에는 모자라는 것이 너무 많고 대학들도 너무 수준에 뒤처져 있는 것이 현실인데….그 젊은이는 자신이 지닌 다른 기억도 이야기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공연히 철학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대학을 그쪽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동양을 선택하는 것을 보고 좀 걱정스러워 하며 물어 보았다.

“동양 철학은 한자가 생명인데 너처럼 한자를 안 배운 세대가 그것을 어떻게 하겠다고 그러느냐…”고.“나는 한문 좀 하잖아요.”부모들은 입을 딱 벌였다. 한문이라니.젊은이가 아주 어려서였다. 유치원에 들어간 무렵 그의 할아버지는 하루에 한번씩 들러서 꼭 한 글자씩 한자를 가르쳐 주시기로 했다. 그러나 유난히 놀기 귀신이었던 어린이는 번번이 할아버지를 헛걸음시켰다. 그래서 열 댓 자나 배웠을까. 그래도 그렇게 익힌 한자 덕에 국민학교 시절 그는 반에서 한자를 아는 아이로 통했다.“할아버지를 그렇게 실망시켜 드리더니 염치도 없이 그걸로 한몫 보는 건 뭐냐.” 하는 생각에 부모들로서는 가소롭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별일은 아니었으므로 그냥 그러다가 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 기억을 젊은이는 ‘확신’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확신이 계기가 되어서 그는 ‘고통스럽지만 행복한 학문의 길’을 선택했다.

“교육이란 그렇게 위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을 들이면 들인 것보다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극성 교육열 때문에 온갖 사회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다. 아파트 투기도 학군 때문에 과열되고 조기 유학에 들어가는 비용이 국가 경영 예산에 견줘질 만큼 새나가고 있다. 따로 공부시키지 않아도 우리 역사와 문화가 가지고 있는 조건을 활용하면 한자공부는 다른 어느 민족보다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다.미국에서 온 젊은이의 말이 아니라도 학생들의 수업권을 법원이 지켜 줘야 할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 우리 현실이다. 오죽하면 학부모들이 나서서 저항의 연대 세력을 만들어 힘으로 대항하겠다고 서둘게 하는가.아직도 최고 집권자가 된 것에만 의기양양한 대통령이란 사람이 즐겨 쓰는 말투를 한번 흉내내본다면 우리 교육계는 날로 「개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그런데도 그런 일에 진지한 대안을 고민하지 않고 부처마다 개혁세력을 구축하겠다는 따위 이상한 발상만 하고 있다. 홍위병 세력을 심겠다는 연상이 되어서 으스스해지는 느낌이다. 어떻게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경제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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