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파, 전격 지도부 심장을 겨누다
소장파, 전격 지도부 심장을 겨누다
  • 박봉균 
  • 입력 2004-02-27 09:00
  • 승인 2004.02.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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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원 의원 석방안 가결로 촉발된 한나라당내 갈등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최병렬 대표 체제 출범이후 당내 개혁을 주도해온 소장파가 최 대표를 직접 겨냥, ‘자기희생’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불거졌다. 그동안 소장파가 ‘지도부의 석고대죄’와 ‘당의 환골탈태’를 주장한 적은 많았지만 지도부를 직접 겨냥 ‘결단’을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악의 경우 분당사태로 비화할 것이라는 얘기도 거침없이 나온다. 한 당직자는 “총선이라는 대전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기차를 보는 것 같다”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전했다. 취임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최병렬 대표는 조만간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소장파가 최병렬 대표의 퇴진을 촉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최 대표는 “도대체 뭘 희생하라는 거야”라며 화를 내는 등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또 “지역구민이 31명(석방안 발의자)의 이름이 난 신문을 보여주며 ‘이런 사람들 잘라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며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 대표는 곧바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 임태희 대표비서실장 등을 여의도 한 음식점으로 불러 대응책을 논의했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그동안 최 대표의 거취문제를 놓고 전국구 후순위, 부산 출마 등 많은 것들이 거론됐지만 이제 남은 핵심은 최 대표의 총선 불출마 선언뿐”이라며 “최 대표가 스스로 아름다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소장파들도 무조건 압박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한 의원은 “한달 전부터 당내외 인사들이 당의 위기타개책으로 최 대표의 총선 불출마와 재창당 등을 건의했지만 최 대표는 ‘내게 맡겨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지도부 퇴진을 요구한 의원들은 ‘친 최병렬계’로 분류되는 의원들로, 최 대표 체제하에서 기획위원장(원희룡), 청년위원장(오세훈), 상임운영위원(남경필), 수석부대변인(은진수) 등을 역임한 사람들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 대표는 “석방동의안을 주도한 게 미래연대에 속한 박종희 의원 등이 아니었느냐. 그런 사람들이 어디에다 대고 나가라는 얘기를 하는 거냐”고 화를 내며 퇴진론을 일축했다. 실제 이날 성명 발표에 참여한 권오을 의원은 서 전대표 석방결의안 제출에 서명한 바 있다.이와 관련 당 안팎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양자가 더 이상 밀릴 곳이 없는 상황에 처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당선이 아니면 끝이라는 ‘올인 게임’에 돌입한 의원들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만 하는’ 현재의 당 지도부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 최 대표 역시 ‘물러서면 끝’이라는 생각이다. 최 대표측이 ‘불출마’ 나 ‘전국구 후순위 배정’ 등에 대해 꺼려하는 것은 의원직마저 잃을 경우 ‘무장해제’돼 재기의 기회가 박탈되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가 ‘아직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넌 것은 아니다’는 분석도 많다. 이같은 분석은 소장파들의 요구가 최 대표의 ‘퇴진’보다는 ‘당개혁 프로그램의 제시’에 무게가 두어지고 있다는데 주목한다. 남경필 의원도 “퇴진은 언론이 만들어 낸 말”이라며 “우선은 당을 뒤집어 엎을 만한 ‘당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도 공천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당 개혁프로그램을 제시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당 공천작업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물갈이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중진의원들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최 대표와 소장파가 대폭적인 현역 물갈이를 앞두고 사전 정지작업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이 와중에 한나라당 홍사덕 원내총무와 박진 대변인이 사퇴를 전격 선언, 당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소장파의 책임 추궁이 이들의 사퇴를 몰고 왔다. 최병렬 대표는 두 사람의 사의를 즉각 만류했으나 이들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홍총무는 사퇴 이유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비준동의안 처리 불발 및 서청원의원 석방동의안 통과 등 일련의 국회사태와 관련한 원내사령탑의 책임감을 들었다. 하지만 홍총무는 지도부 책임론을 거론한 소장파에 대해 “사려깊지 못하다”고 직접 공격하고 나서 홍총무의 이날 전격 사퇴는 원내지휘 책임이라는 명분과 못지 않게 지도부흔들기에 대한 대응의 성격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정치 ‘수읽기’에 능한 홍 총무가 ‘전격 사퇴’ 카드를 꺼내 든 데는 나름대로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그는 정국지형이 바뀔 때마다 예상치 못한 승부수를 띄운 정치인으로 꼽히고 있다.당 일각에서는 홍 총무가 탈당해 공천심사위의 무원칙한 공천작업에 반발해온 현역의원 및 정치신인 등과 ‘무소속 연대’를 결성할지 모른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한나라당이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는 가정이다.

박 대변인도 기자간담회를 갖고 “당 대변인으로서 서 전 대표의 석방동의안 가결에 대한 당의 입장을 합리화하고 당위성을 주장한 데 대해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당직자로서 책임을 깊이 통감하며, 백의종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홍 총무와 박 대변인의 사의표명이 부담이다.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이 최근 최 대표에게 지역구 불출마 선언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최 대표의 최종 결심이 주목된다. 당내 일각에서는 최 대표가 불출마선언 후 전국구 뒷번호를 받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한 측근은 “FTA 비준안 등이 국회에서 처리되고 수도권 공천의 선명성 제고작업 등이 이뤄지면 뭔가 변화가 있을것”이라며 최 대표의 결단시기가 임박했음을 내비쳤다.

인터뷰1 원희룡 의원

“최대표 용퇴론서 예외 안돼”한나라당내 소장파의 대변인격인 원희룡 의원은 “최병렬 대표도 용퇴론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원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소장파가 단순히 과거만 갖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지금도 마인드가 20년 전에 머물러 있거나 그런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을 문제 삼는 것”이라며 “최 대표의 경우도 과거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현재 그 역할에 있어 하는 일이 없고, 과거에만 집착한다면 대표든 누구든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원 의원은 “현지도부는 당을 확 바꾸겠다고 공약했다”면서 “그 역할을 하면 밀어주겠지만 말로만 하고 실천을 안한다면 지도부도 비판 대상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보수층이 나라를 이끌어가야 하고, 우선 당내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것”이라며 “이런 노력이 좌절된다면 건전한 직장인들과 보수세력을 대변할 정치세력을 어떻게 만들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볼 생각도 있다”고 밝혀 독자세력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인터뷰2 남경필 의원

“정권 실정에만 편승 말아야”남경필 의원은 “지도부 용퇴론이 당내 갈등으로 국한돼 비쳐지자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충심어린 자성의 목소리가 본질이 왜곡됐다는 설명이다. 남 의원은 “지도부의 자기희생적 결단에는 당 지도부의 퇴진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며 “당과 지도부가 잘못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당명 개정 등 재창당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도 적극 개진하겠다”고 밝혔다.오는 주말 미래연대 회합을 잇따라 갖고 보다 구체적인 프로그램 기준과 발언 수위 등을 조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남 의원이 언급할 것으로 보이는 재창당 개혁안에는 상향식 공천과 관련한 완전 국민참여 경선을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남 의원은 “우리 당이 대선 패배 후 처절한 몸부림을 쳤는데 최근 다시 대선전처럼 정권의 실정에 편승하려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봉균  pjong@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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