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오르면 대기업도 버티기 어렵다
한번 오르면 대기업도 버티기 어렵다
  • 박용수 
  • 입력 2003-10-23 09:00
  • 승인 2003.10.2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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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 요주의 기업 찍어내지만 금융기관의 기업평가 능력 뺨쳐최근 본지 입수 자료엔 거래소·코스닥 등록회사 98개사 올라있어사채업자들이 작성한 요주의 기업리스트.최근 자금난을 겪고 있는 요주의 기업 리스트가 명동사채시장에 나돌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사채시장은 서울 명동 등지에 형성된 비공개 채권 시장으로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총알 확보가 어려운 기업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때문에 리스트에 오른 기업들은 사채시장에서조차 배척받는 분위기다. 이 리스트의 정확한 실체는 드러나지 않다가 <일요서울>에 포착됐다.사채시장은 비제도 금융권으로 개인이나 법인들이 비상장 회사들의 채권을 매매하는 지하금융 거래 시장이다. 이 곳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정상적인 자금 조달 창구를 갖지 못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채시장에 명함을 자주 내밀수록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자금조달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특히 거래소나 코스닥 등에 기업 공개를 준비하는 단계에 있는 회사의 경우 사채 시장에 자금을 융통하러 오는 경우도 있지만 금융권에 손을 내밀지 못한 한계기업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일요서울>이 확보한 이 리스트는 약 200여개 회사의 명단과 이들 회사의 공개여부, 법인번호, 사업자번호, 금리문자 등의 항목으로 간단하게 기술됐다. 이중 거래소와 코스닥에 공개된 회사는 약 98개사. 금리문자는 회사의 자금 상태 정도를 평가한 것으로 노력1, 노력2 등 자체적인 은어로 표기돼 있다. 노력2는 자금 상태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며, 노력1은 노력2의 아랫 단계에 해당한다. 바로 이 리스트는 사채시장에 현재 나도는 소위 블랙리스트인 셈. 이 리스트에 한번 오른 기업들은 사채시장에서 돈 구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해당회사가 자금난을 겪든 아니든 간에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사채업자들에게 입소문을 타게 되면 재벌기업도 버티기 어렵기 때문에 리스트에 한번 오른 순간부터 사채시장에서 자금 구하기는 하늘에서 별따기다. 이 자료를 건네준 관계자에 따르면, 작성자는 복수의 사채업자이며, 작성 기준은 사채시장에서의 거래 실적과 회사 내부사정 소문 등 여러 가지 측면을 감안했다고 한다. 목적은 사채업자 나름대로 거래할 수 없는 기업들의 가이드라인을 정해놓은 셈. 즉 이 명단에 오른 기업들의 채권 및 어음 거래는 심사숙고하면서 한다는 일종의 지침서인 것. 그러나 이런 리스트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1년과 6개월 단위로 사채업자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작성된다.

따라서 이 리스트에 오른 회사는 사채시장에서 적어도 수년간에 걸쳐 워칭(watching)된 상태의 결과다. 그래서 해당 회사에 대한 몇 줄 안되는 정보를 담은 이 리스트는 한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사채시장의 위력은 상상초월. 사채시장에서 입소문을 탄 회사는 해당기업의 거래은행에까지 그 여파를 미친다. 은행 등 금융기관도 사채시장에서 안좋은 평가를 받은 기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거나 나중에는 자금 회수 등의 극단적 조치를 취하기 때문이다. 사채시장의 일반 기업에 대한 평가는 웬만한 금융기관의 기업 평가 능력을 뺨친다. 뚜렷한 근거없이 수십여년간의 감으로 작성된 이 리스트가 대표적 케이스. 사채시장의 구설수에 한번 오르면 좋게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게 시장 관계자의 전언이고 보면, 이 리스트의 존재는 해당 기업엔 치명타를 안겨줄 수도 있다.

어떤 회사들이 리스트에 올라와 있을까. 이 리스트에 따르면, 약 23개사에 이르는 상장사와 약 75개사의 코스닥 등록기업이 명단에 포함된 상태. 이 회사들 중 과거에 잘 나가던 회사도 있다. 특히 재벌기업 계열사인 A사가 리스트에 올라 눈길을 끈다. A사는 한때 잘나가던 국내 대표적인 회사였다. 이 회사는 계열분리 이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오너 부재로 사업 구도도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 특히 수익구조의 부재와 영업구조 악화가 이 회사의 최대 약점. 이 회사는 최근 채권단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이행각서를 맺는 등 최악의 상황이다. 이밖에 채권단과 화의 상태 기업인 몇몇 회사들도 포함됐다. 한 때 유명 사이트로 인터넷 사업의 모델을 보였던 상장사인 B사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리스트엔 거래소 상장 기업보다 코스닥 등록기업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한때 잘 나가던 코스닥 등록기업들도 눈길을 끈다. 특히 업종별로 보면 IT 쪽 방면 회사들도 다수 포함돼 있어 국내 IT산업의 부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관련, 리스트에 오른 한 기업 관계자는 “최근 경기부진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어디 어려운 게 우리 회사뿐이냐. 사채시장에까지 요주의 대상으로 올랐다고 하지만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이런 리스트가 왜 나도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용수  park@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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