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위한 장기간 입원
최태원 회장은 병원으로부터 장기간 요양을 권고 받을만큼 심신이 피로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 7개월간 SK가 겪은 풍파를 ‘보고’ 받는 오너의 심정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게다가 최 회장의 출소를 계기로 경영 참여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진 것도 본의 아니게 최 회장을 경영에서 외도하게 만들었다. SK 관계자들도 최태원 회장의 경영참여 가능성에 대해 ‘당분간’이라는 단서와 함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기자가 병원을 찾은 지난 15일 오후 4시경, 최태원 회장은 병실에 없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최 회장은 외출 중이었다. 목적지는 알 수 없으며 환자가 원할 경우 외출은 가능하다는 게 병원측의 설명이다. SK가 최 회장의 출근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는 것으로 보아 요양과 외부 외출로 소일하고 있는 듯하다.오너인 최태원 회장이 병원서 요양 중인 것과는 관계없이 SK는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최 회장 일가와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과 우호지분을 포함해 소버린을 눌렀다고는 하나 소버린이 취할 수 있는 변수들이 상존해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방안 마련에 분주하기 때문이다.
SK는 만약 소버린이 최태원 회장을 상대로 경영권 분쟁을 벌일 경우 대략 두가지 방법을 취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먼저 소버린이 추가 자금을 동원해 지분을 매입하거나 우호세력을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이것은 적대적 M&A에 있어 가장 기초적이고 전통적인 기법. 그러나 소버린의 자금 동원력이 어디까지인지가 불분명해 실현 가능성은 예측하기 힘들다. 두번째는 자신의 보유지분을 낮춰 SK가 보유하고 있는 의결권 중 상당 부분을 무력화시킨다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것은 산업자원부가 정한 외국인투자촉진법과 공정위의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십분 활용한다는 의미다.
지분 낮추면서 오히려 공세 전환
10월17일 현재 최태원 회장과 특수관계인들이 SK(주)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전체 지분 중 15.98%에 해당한다. 소버린(14.99%)보다 1%포인트 가량 앞선 지분이다. SK가 공개하지 않은 우호세력들도 다수 존재한다. 이대로 표 대결이 벌어진다면 SK는 소버린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그러나 소버린이 보유 지분에서 5%를 매각하거나 우호세력에게 양도하게 되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이 경우 소버린 지분이 10%를 하회함에 따라 외국인투자기업에서 벗어나고 SK는 다시 출자총액제한에 들어가 지분 중 9.45%는 의결권이 제한돼 결국 6.48%만 그 행사가 가능해진다. 이유는 현행 외국인투자촉진법상 단일 외국인이 특정 회사의 전체 지분 중 10% 이상을 보유하게 되면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분류돼 출자총액제한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 경우 SKC&C는 SK(주) 지분 8.63% 가운데 7.35%가 의결권 제한을 받을 수 있으며 SK건설은 3.39% 중 2.11%가 제한된다. 소버린에 절대 유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이것은 SK가 상정하고 고민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SK는 이에 대해 숙고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SK 관계자는 “만약 소버린이 M&A를 시도할 경우 신속하고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여 SK도 갖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의 말처럼 방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SK(주)가 보유한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매각할 수 있다. 또는 SK네트웍스가 해외에 차명으로 보관한 1,000만주 가운데 SK그룹과 우호세력에 넘어온 313만주를 제외한 나머지를 역시 우호세력에게 넘겨도 된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해외 차명 물량을 인수한 기관 가운데에는 소버린의 반대세력이라 할 수 있는 SK네트웍스 채권단도 포함됐다는 얘기가 있다.
SK 입장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우호지분을 확보한 셈이다.지금까지는 상정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을 단편적으로 나열한 수준에 불과하다. 내년 주총까지 소버린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아무도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SK는 내년 SK(주) 주총을 즈음해 소버린과 표 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는 이때쯤이면 시기적으로 최태원 회장이 경영에 참여할 공산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최 회장으로서는 휴식과 함께 경영권 방어에 대한 암중모색 기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최태원 회장이 병원 생활 중 구상한 향후 경영구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지산 sa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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