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채 벌침 쏘인 금융권 위기설 ‘확산’
카드채 벌침 쏘인 금융권 위기설 ‘확산’
  • 박용수 
  • 입력 2003-11-27 09:00
  • 승인 2003.11.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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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업계 1위인 LG카드의 현금서비스 중단 등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던 금융권이 벌집을 쑤신 것처럼 어수선하다. 시장에서 카드사발 금융대란설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로 LG그룹은 지난 24일 채권단의 양보를 받아내 LG카드 2조원과 1년간 채권만기 연장 등 지원책을 얻어냈지만 카드업계의 유동성 위기설은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제는 LG카드뿐만 아니라 카드업계 전반에 대한 금융권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LG카드만 문제겠느냐”는 시각이 팽배하게 나돌고 있다는 것. 타 카드사들도 유동성 위기에 노출된 것은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이는 카드업계가 지난 3/4분기에 약 4조원대에 이른 적자를 낸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큰 폭의 적자에 따른 카드업계의 경영정상화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한마디로 카드사업은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닌 돈먹는 하마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카드업계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더욱 키우고 있다.A카드 관계자는 “LG카드 유동성 문제로 다른 카드사도 큰 피해를 입고 있다”며 “1위 업체가 그 정도이니 다른 카드사들은 오죽하겠냐는 시각이 팽배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특히 삼성, 현대 등 재벌계 카드사들은 LG카드의 유동성 문제가 미칠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한 재벌계 카드사 관계자는 “재계 2위 LG그룹도 계열사인 LG카드로 인해 휘청거리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우리 회사는) 아직까지 큰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카드채를 보유한 기관 투자자들이 어떻게 나올지가 더 큰 문제”라고 걱정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카드사들의 수익성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높은 연체율의 지속과 신용불량자 증가 등이 카드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수익성 하락은 카드사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하고 있다. 우량주로 평가됐던 카드사의 주가는 곤두박질 치고 있다. 3만원을 호가하던 LG카드 주식은 1만원 이하로 추락했다. 24일 현재 주당 8,000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외환카드도 사정이 비슷하다. 게다가 카드채 기피 현상이 투신권을 중심으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카드사 위기설을 부채질하고 있다. 투신협회가 매일 발표하는 투신권 수탁고에 따르면, LG카드 위기가 정점에 달하던 지난 20일 현재 투신사 전체 수탁고(계약형)는 141조 8,02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투신업계 수탁고 145조원 밑으로 떨어진 것이 지난 2001년 6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펀드 유형별로는 MMF(90일 이내 초단기 금융상품)가 6조 6,000억원 가량이 감소했고 채권형 9,770억원, 혼합형 9,910억원, 주식형 2,600억원 등이 줄어들었다.

특히 초단기로 운용되는 MMF펀드는 주로 만기기간이 1년 미만인 카드채가 대량 편입돼 있는 데다 개인투자자들이 주고객이다. 따라서 개인 고객들의 환매요청을 받게 되면 투신사들은 꼼짝없이 돈을 내줘야 한다. 아직까지 개인 고객들의 투매 요청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투신권 관계자는 “수탁고 하락이 국공채 등 채권 금리의 상승에 따른 일시적 감소지만 그 이면에는 LG 외환카드 등 카드사들의 유동성 위기에 따른 심리적 위축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금리상승, 시장 불안 등의 악재로 인해 당분한 MMF의 수탁고 하락은 지속될 전망이므로 카드채 문제까지 겹치게 되면 투신권의 환매 러시는 큰 골칫거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카드사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냉담해지기 시작한 것도 카드사발 금융대란설을 부추기고 있는 한 요인이다.

지난 22일 신용평가회사인 한국기업평가는 삼성 신한 우리카드에 대한 회사채 및 기업어음 신용등급을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는 카드사에 대한 시장의 엄정한 판단이지만 카드채 부실 우려를 시장에 확산시키는 부정적 요소로도 작용하고 있는 것. LG카드 이외 타 카드사들도 유동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카드사 대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으로 보여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LG카드 유동성 문제에 정부가 적절하게 개입해 대처한 것도 카드채가 지닌 금융시장에서의 폭발력 때문이다. 투신권 등이 운용하는 카드채 규모는 정확히 추산되고 있지 않지만 업계는 대략 65∼70조원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LG카드의 외부 차입규모는 채권단 차입금을 포함해 21조원 등으로 집계됐다.정부의 우려는 카드채 대부분이 단기채권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채의 60∼70% 가량은 1년 미만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카드회사들이 한달 단위로 자금을 조달해 쓰기 때문에 금융당국에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 1년 이상 회사채 보다 미공개에다 금리가 낮은 기업어음을 선호하는데 따른 것이다.따라서 채권단과 극적으로 타결한 LG가 채권단이 보유한 LG카드채를 해결했다지만 나머지 투신권과 제2금융권 등이 보유한 카드채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주목되는 이유다. 이중 투신권이 보유한 카드채 규모가 얼마 정도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 데다 고객의 신탁 자금을 운용하는 투신권이 환매를 요구하는 개인투자자에게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개입 여지를 남기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심리적 위축이 크기 때문에 시장의 신뢰만 회복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며 낙관론을 펼쳤다.

그러나 B카드사 관계자는 “LG카드와 같이 큰 대형 카드사는 한달 운용자금만도 약 3∼4조원에 이른다”며 “LG카드가 유동성위기에 처하게 된 것도 알고 보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면서 시장의 불신을 우려했다. 따라서 카드업계의 유동성 위기가 더 커질지 아니면 무마될지는 카드채를 대량 보유한 투신권의 거취와 시장의 신뢰회복에 달렸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과거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기업이 시장의 신뢰를 얻어내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의지를 시장이 믿어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용수  park@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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