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회복위한 마지막 카드인가
명예회복위한 마지막 카드인가
  • 박봉균 
  • 입력 2004-01-29 09:00
  • 승인 2004.01.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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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풍’(安風, 5대 총선 당시 안기부자금의 신한국당 총선자금 전용 의혹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강삼재 의원이 변호인을 통해 YS를 몸통으로 지목한 내막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강 의원은 안풍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중이다. 강 의원은 그동안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시종 그 돈이 ‘안기부 자금’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폈지만 그 주장을 입증할 만한 ‘물증’ 제시에는 침묵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강 의원의 변호인인 정인봉 변호사가 안풍논란에 다시 불을 당긴 것도 이 딜레마를 빠져 나오기 위한 ‘벼랑끝 전술’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강삼재 의원이 입을 열어야한다면 대단히 폭발력 있는 ‘정치적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강 의원이 YS의 등에 비수를 꽂을 수밖에 없는 ‘외통수’라는데 이견이 없다. 1996년 총선 당시 사용된 돈이 안기부 자금이 아니라 당의 정치자금이었다면 그 정치자금의 출처가 최종적으로 누구인지 밝혀야 하는 것이다. 일단 정인봉 변호사가 YS를 겨냥, 탄알을 장전한 상황이다.강 의원측은 정 변호사와의 사전 논의를 부인하고 있다. 강 의원을 가까이서 10여년 이상 보좌해온 이장연 비서관은 “강 의원은 신한국당 사무총장시절부터 입이 무거운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이 비서관은 그러면서도 “그동안은 정치를 계속 해야 했으니까 신의를 저버릴 수 없었지만, 이제 다 던졌는데(은퇴) 모든 것을 밝힐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항소심에서 강 의원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술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강 의원의 정계은퇴 선언이, 국가예산을 횡령해 선거자금으로 썼다는 ‘파렴치범’ 혐의를 벗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강 의원과 연락이 끊긴 지난 13일 기자는 YS시절 정권의 한 핵심인사로부터 의미심장한 얘기를 들었다.이 인사는 “(안풍)자금의 출처와 성격에 대해선 당 밖의 5, 6명이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가 안팎에서는 김영삼 전대통령과 차남 현철씨, 이원종 전대통령정무수석, 권영해 전안기부장, 다음달 초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김덕룡 의원 등이 포함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핵심인사는 강 의원이 YS를 배신하겠느냐는 질문에 “정계은퇴 기자회견 당시 (강의원이)눈물을 흘렸는데 누군가를 향한 강한 원망과 섭섭함도 묻어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장연 비서관은 “직접 누구 탓을 하거나 섭섭하다는 말씀은 한번도 없었지만, 특히 대선이 끝난 뒤 강 의원만이 홀로 싸웠는데 왜 인간으로서 그런 감정이 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강 의원이 정 변호사를 통해 YS를 겨냥했다면 그 배경엔 한나라당의 메시지도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사석에서 여러 차례 정 변호사가 입을 연 내용을 거론해왔기 때문이다. 일단 안풍은 이번 총선까지 3심 재판이 예정돼 있어 어떤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총선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하는 눈치다. 1심 재판이 유지될 경우 국가가 한나라당을 상대로 제기한 940억원의 국고환수 민사소송에서 한나라당은 패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한나라당은 당 재산 전부를 국가에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때문에 한나라당이 강 의원을 자극해 안풍사건으로 씌워졌던 ‘파렴치한 국고횡령범’이란 누명을 털어버릴 수 있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한 핵심당직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YS가 강 의원에게 돈을 직접 준게 맞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면서도 한나라당은 이번 재판에 직접 개입하진 않을 태세다. YS와의 ‘불편한 관계’를 피하기 위해서다. 최근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이 강 의원을 독려하기 위해 서명 작업에 착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단 정가는 안풍 자금을 YS의 대선잔금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실제로 YS는 3년전 언론에 “92년 대선 때 상당히 많은 돈이 들어왔는데 무엇 때문에 안기부 돈을 받느냐”고 말해 그런 (대선잔금)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측근 인사는 “2001년 1월말 안기부 자금문제를 담판짓기 위해 이 전총재가 상도동으로 YS를 찾아갔을 때 YS는 ‘안기부 예산이 아니고 재벌들이 지원한 정치자금’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YS정부에서 청와대비서관을 지냈던 한 인사는 “YS가 집권 초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안받겠다고 선언하며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만큼 국가 예산을 빼내 선거에 사용했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압박에 YS가 입을 열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박종웅 의원은 “정부와 재판부를 상대로 강력한 정치투쟁을 벌일 생각은 않고 근거도 없이 대선잔금 운운하는 것은 초점을 잘못 잡고 있는 것”이라고 안풍논란을 일축했다. 어쨌든 이번 17대 총선에서 차남 현철씨의 정치권 입성에 힘을 쏟고 있는 YS가, “그 돈은 내가 준돈”이라고 털어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의 재임기간 중에 금융실명제가 도입됐는데 안기부 계좌를 통해 돈세탁을 했다거나,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을 처벌한 사유 가운데 기업으로부터 걷은 통치자금 문제도 들어 있는데 문제의 돈이 대선잔금이나 당선사례금이라고 밝힐 경우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 의원의 한 측근은 상도동의 반응에 대해 “강 의원이 모든 것을 던졌는데 희생양만 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적어도 정치환경을 바꾸는 흔적이라도 남기게 될 것”이라고 항소중 입장 변화를 예고했다. 총선 길목을 강타하고 있는 강 의원의 ‘장외정치’ 행보가 어떤 파장을 부를지 지켜볼 일이다.

박봉균  pjong@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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