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한국 재계사역에서 정주영과 이병철을 빼놓곤 말이 안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이들은 모두 고인이 되었다. ‘만세(萬歲)를 꿈꾸며 불로장생을 추구했던 진시황’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듯 이들 두 사람 역시 ‘영웅’의 발자취만 남긴 채 사라졌다. 이병철은 1987년 11월에, 정주영은 2001년 3월에 작고했다.잘 알다시피 정주영은 현대그룹의 창업자이고, 이병철은 삼성그룹의 창업자이다. 이들 두 사람의 부가 어느 정도인지는, 80년대 초 한 경제학자가 “삼성과 현대의 자산을 모두 합치면 경상북도 땅을 모두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표현한데서 알 수 있다. 그만큼 이들 두 사람이 일군 부는 엄청났다. 그만큼 이들 두 사람에 얽힌 숨은 비화도 많을 수밖에.한국 재계역사의 거목인 이들 두 사람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영웅시대’라는 드라마를 통해 두 거목의 발자취를 더듬은 적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어쨌든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이들 두 사람에 대한 연구는 식을 줄 모른다. 그 이유는 이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봄으로써 ‘교훈적 지표’를 삼자는 뜻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이들 두 사람에 대해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는 곳도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정주영과 이병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비된다. 성장과정이나 성격, 경영방식, 자녀교육, 사생활 등 모든 면에서 대조를 이룬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항목별로 나누어 살펴보자.먼저 성장과정에 대해 알아본다.정주영 회장의 고향은 강원도 통천이다. 이곳은 지금은 북한 땅이다. 정주영 회장이 작고하기 전 대북사업에 강한 집착을 한 것도 고향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는 게 가족들의 말이고 보면 이해가 간다. 반면 이병철 회장의 고향은 경남 의령이다. 때문에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은 고향이 남과 북으로 서로 다르다.
나이는 정주영 회장이 1915년생이고, 이병철 회장이 1910년생이니 이 회장이 다섯 살 위다. 그렇지만 이 회장은 77세의 나이에 작고했고, 정 회장은 86세에 작고해 정 회장이 더 장수를 누렸다.두 사람은 태생적인 출신이 달랐다. 정 회장은 평범한 농사꾼 집안의 8형제(6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리 넉넉지 않은 집안 탓에 그는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닌 것이 송전보통학교가 전부였다. 보통학교는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교였다. 정 회장은 19살의 나이에 가출한 뒤 인천부두노동자, 공사장 인부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일제시대 때 쌀도매상 배달부로 일하다가 이를 인수한 뒤 돈을 벌었고, 해방 이후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차리면서 본격적으로 기업가의 길에 들어섰다.정주영 회장이 밑바닥 인생부터 시작했다면 이병철 회장은 엘리트코스를 밟았다고 할 수 있다. 이 회장은 경남 의령의 천석꾼 집안에서 태어나 스물여섯살에 사업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경남 마산에서 정미업을 시작해 큰 돈을 벌었고, 중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면서 재벌의 반열에 올랐다. 정주영 회장이 한푼두푼 모아 재벌의 황금성을 쌓았다면 이병철 회장은 출발부터 막대한 자본과 인맥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삼성상회 시절부터 막역하게 지냈던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자와의 얽히고설킨 비화는 지금도 두 재벌의 가슴속 깊은 곳에 ‘앙금’처럼 남아 있다. 이병철 회장과 조홍제 회장은 모두 경남 의령출신의 대표적인 재벌가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병철 회장의 고향인 경남 의령 일대에서 배출된 재벌이 많다는 점이다. LG그룹 구인회 회장도 이 곳 출신이다. 구 회장 가문과는 나중에 이병철 회장의 딸 숙희씨가 구 회장의 아들 구자학씨와 결혼하면서 사돈관계로 맺어진다.어쨌든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의 이같은 출신성분의 차이는 나중에 두 사람의 경영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은 사업분야를 택하는데 있어서도 달랐고, 사생활에서도 달랐으며, 심지어 전문 경영인을 택하는 방식도 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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