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엄격한‘열린강의’
통제 엄격한‘열린강의’
  • 김재윤 
  • 입력 2005-05-03 09:00
  • 승인 2005.05.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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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스타급 최고경영자(CEO)들이 총출동해 화제를 모았던 성균관대학교의 ‘기술 혁신과 경영 리더십’ 강의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러나 학생들은 강사들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열악한 조건에서 수업을 듣고 있음이 현장취재에서 확인됐다. 한 학생은 수강중에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있다.'지난 4월28일 오후 2시40분경. 삼성전자 이기태 사장의 강의시간(오후 3시~5시)이 다가오자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인문사회관 32XX호 강의실 입구가 붐비기 시작했다. 조교들이 학생들의 신분확인과 출입통제를 위해 출입구 앞에 테이블을 설치하는 작업으로 더욱 붐볐다. 곧이어 수업을 듣기 위해 학생들이 강의실로 입장을 시작했다.학생들은 신분확인 절차를 밟기 위해 출입구 앞에 일렬로 길게 늘어섰다.

학생들은 ‘출입증’인 A4용지를 수업조교에게 제출하고, 조교들은 이를 확인한 뒤 출입을 허용했다. 확인해보니 A4용지는 일주일 전 강의 내용에 대한 ‘감상문’ 이었다.기자의 강의실 출입은 “과제물이 없다”는 이유로 제지당했다. 이후 기자는 학교측 관계자를 대동해 들어갔다. 출입통제에 학교 관계자는 “삼성사장단 강의는 수강생은 물론 수강신청을 하지 않은 학생들과 일반인들까지 관심이 높다. 그러나 강의실 수용인원이 한정돼 있어 부득이하게 수강신청을 한 학생에 한해 출입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 며 “그동안 기자들의 강의실 출입도 철저히 금지됐으나 오늘은 기자들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해 출입이 허용된 것” 이라고 언급했다. 삼성과 성대측은 인터넷상에 강의 내용을 공개하면서 ‘열린 교육’ 임을 강조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셈이다.

눈길을 끈 것은 학생들이 강의실 밖을 나갈 때 조교에게 학생증을 맡기고 나간다는 풍경이었다. 이에 대해 담당 조교는 “강의 내용 동영상이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만큼, 출석체크만 하고 퇴실하는 학생들이 있어 내린 조치” 라고 말했다.그러나 학생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신원을 밝히기를 꺼린 학 학생은 “중도 퇴장하는 학생들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삼성 사장단에 대한 학교 이미지 제고를 위해 화장실을 갈 때도 신분증을 맡겨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며 “대학생은 성인인 만큼 ‘땡땡이’ 에 대한 문제는 각자의 양심에 맡겨 학생들 스스로 해결했으면 좋겠다” 고 밝혔다. 이윽고 2시55분경 정장차림의 이기태 사장이 수행원 5명을 대동하고 강의실에 입장했다.

이날 이 사장의 강의주제는 ‘글로벌경영’에 대한 내용. 정각 3시가 되자 강의실 문은 굳게 닫혔고 조교는 문 밖에서 계속 출입을 통제했다. 이 사장은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후 바로 강의에 들어갔다. 강의는 글로벌 환경 변화에 대한 이해와 글로벌 환경변화가 기업 경영에 주는 시사점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됐다.강의실은 만원을 이뤘고 자리를 잡지 못한 일부 학생들은 복도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과목개설 당시 수강신청이 폭주할 정도로 관심이 컸던 터라 초반 강의를 경청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매우 진지했다. 그러나 많은 인원이 몰린데다 더운 날씨 탓에 이내 강의실은 ‘찜통’이 됐다. 강의 시작 30분정도 지날 무렵 졸고 있는 학생들이 늘어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진지한 자세로 강의를 경청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일부 학생들은 엎드려 잠을 청하기도 했고, 자신의 휴대폰으로 ‘게임’ 을 즐기기도 했다.4시45분경 이 사장의 강의는 끝났고, 이어서 질의응답 시간이 마련됐다. 질의응답은 수업 종료 시간인 5시 넘어서까지 이어졌는데 다음 수업이 있는 학생들은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사장도 다음 스케줄을 의식한 듯 5시15분경 더 이상의 질문을 받지 않고 강의를 끝마쳤다. 이후 이 사장은 학교측이 마련한 감사패를 수여받고 수행원들과 함께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나갔다.기자는 강의실을 나온 몇몇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 수강생은 “CEO들이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서 좋다. 강의 내용이 실용적이진 않지만 대기업 고위층의 마인드를 알 수 있어서 취업준비하는데 도움은 될 것 같다” 고 평가했다. 학생들은 강의내용에 대해 대체적으로 만족해하는 분위기였지만 애초 삼성측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질문 기자들이 시켰나요?”

삼성 CEO 릴레이 강의에 나선 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사장(56). 이 사장은 강의를 끝마친 후 학생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진땀을 흘렸다. 학생들은 “신제품이 나오면 휴대폰을 벽에 집어 던져 품질 테스트를 한다는데 몇 개나 던져봤느냐” 는 질문에서부터 “휴대폰 부품의 높은 해외의존도에 대한 삼성의 대책은 무엇이냐” 는 등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냈다.이에 이 사장은 “기자들이 여러분들에게 이런 질문 좀 해달라고 시킨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며 “요즘은 제조 공정과정에서 낙하실험을 하기 때문에 더 이상 휴대폰을 집어 던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항상 주머니 속에 5가지 ‘연장’ 을 가지고 다니며 직접 품질 테스트를 한다. 이 공정을 내 이름의 약자를 따 ‘KT 스탠다드’ 라고 명명했다” 고 말했다.

또, 휴대폰 부품의 해외 의존에 대해 이 사장은 “수출 물량이 92%인 상황에서 휴대폰 국산화율이 70~80%면 공정한 무역이다. 우리 것을 수출하려면 남의 것도 써줘야 한다. 그래서 내 차도 렉서스다” 라고 답변하기도 했다.강의를 마무리 하면서 이 사장은 “현재 삼성은 노키아, 모토로라에 이어 세계 3위의 휴대폰 업체지만, 3.5세대와 4세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역전의 기회를 잡을 것” 이라며 “4세대 휴대폰 보급 시점이 2010년께로 예상되고 있는 만큼 늦어도 5년 내에는 1위 자리에 오를테니 지켜봐달라” 고 포부를 밝혔다.

김재윤  yoonihoora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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