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진행시켜야 합니다”
“은밀하게 진행시켜야 합니다”
  • 이예진 
  • 입력 2005-07-12 09:00
  • 승인 2005.07.12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극도 보안 속 20분 회의

지난 6월 중순.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롯데그룹 회장 비서실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이 자리에는 회장 비서실 소속 임직원들과 요식업 관련 그룹계열사의 관계자들이 참석해 있었다. 물론 비공식적인 회의였고, 회의록도 없었다. “모쪼록 별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참석자 한 명이 말을 이어갔다. 한 눈에 봐도 퍽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분위기.“그런데 어떻게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룹사 관계자 중 한 명이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비서실의 주문이 뜬금없기도 하고, 성사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전문가들이시니 알아서 잘 하시리라 봅니다. 제가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말이 새나가지 않게 조심해 주십사 하는 것 뿐입니다. 이번 일은 회사 내부 사람들의 눈에 띄어도 안되는 일입니다. 어르신의 심기가 편치 않으시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계시죠? 각별히 신경 좀 써주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이 비서실에 머문 시간은 불과 20분 남짓했다.

비서실, 회장 ‘철통경계’

도대체 롯데그룹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롯데그룹 비서실은 회사 내부에서 가장 파워가 막강한 핵심 부서 중 한 곳이다. 물론 타그룹의 경우에도 회장 비서실의 영향력은 크지만, 롯데의 경우 이들과 차이점이 있다. 우선 신 회장은 1년에 절반만 한국에 머문다. 그는 1년을 월별로 나누어 홀수 달에는 한국,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문다. 신 회장은 지난 70년대 중반부터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그의 이런 경영 방식을 두고 일부에서 ‘현해탄 경영’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신 회장의 이런 원칙은 간혹 예외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신 회장은 재계에서 최고령의 원로 경영인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신 회장은 1922년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로 84세. 그는 현재 재계에서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창업 1세대 경영인이다. 고령의 ‘회장님’을 모시는 것은 여간 신경쓸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의 설명. 더군다나 신 회장의 차남이자 그룹의 후계자인 신동빈 부회장은 한국어가 서툴다. 롯데그룹의 비서실의 업무가 많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 그렇다면 회장 비서실에서 그토록 ‘은밀하게’, 또 ‘극비리에’ 진행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을까.

신회장 건강이상설 제기

신격호 회장 비서실과 요식업계 관계자들의 ‘긴급회동’을 두고 회사 안팎에서는 갖가지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비서실로 ‘호출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유통이나 건설이 아닌, 요식업과 관련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업계의 추측 중 하나는 신 회장의 건강 이상설. 이 회의가 열린 시점이 지난 6월 중순으로, 환절기라는 점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올해 여름 기온이 몇 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신 회장에게 ‘맞춤식 식단’을 제공하기 위해 비서실과 요식업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댄 것이 아니냐는 추측. 그룹 비서실에서 일일 식단을 챙겨야 할 정도로 신 회장의 건강이 좋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재계 묘한 시선 던져

또 하나의 얘기 중 30대의 A아무개 여인과 관련된 것. 롯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회의가 소집된 진짜 이유는 롯데백화점 B지점에 입주한 C 음식점 매출을 올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B지점의 C음식점은 올해 초 개업했는데, 그동안 매출 실적이 부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음식점의 실질적 소유주는 30대의 미혼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회장 비서실에서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 음식점을 챙기기에 나서다보니, 업계에서는 신 회장과 이 여성에 대해 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외부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 회장이다보니 이러쿵저렁쿵 말들이 오가는 것이라는 시각이 많기는 하지만.어찌 됐든 지난 6월 중순경, 비서실에서 벌어진 요식업체 관계자들과의 ‘긴급회동’은 회사 일이 아닌 신 회장 개인적인 일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이예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