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그룹의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시민단체의 맹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그동안 논란이 돼왔던 이 상무의 편법 주식매입 파문 때문이 아니다. 그가 몇 해 전 야심차게 추진했던 인터넷 사업 부문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의 주요 계열사들이 이재용 상무 때문에 380억원을 손해봤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삼성카드, 삼성SDS 등은 과거 ‘본의 아니게’ 이 상무가 세우거나 사들인 인터넷 기업들을 인수했고, 그 회사들이 계속 적자를 기록해 결국 수 백억원의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삼성 황태자의 첫 작품은 결국 수백억원을 날리고 끝났다”며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된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은 난감한 분위기다. 아직 경영 수업 중인 이 상무의 이미지에 자칫 흠집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재용 상무가 직접 경영을 한 것도 아닌데 자꾸 ‘첫 작품 실패’라는 얘기가 나와 당혹스럽다”며 “이미 오래 전에 정리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삼성과 이재용 상무의 인터넷 사업,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 일이 시작된 것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0년, 삼성SDS에서는 자사의 PC통신 부문인 ‘유니텔’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할 것이라는 얘기가 솔솔 새나왔다.
지난 2000년 당시 ‘닷컴’사업은 트렌드
당시 이재용 상무는 서른 두 살로, 미국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에 재학 중이었다. 이 상무는 곧 귀국하기로 돼있었다. 그룹 안팎에서는 그가 귀국하는 상황에서 이런 얘기가 흘러 나오자, 이 상무가 ‘유니텔’을 맡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오갔다. 하지만 이 상무는 아예 삼성그룹의 인터넷과 관련된 벤처회사들을 묶는 지주회사를 만들어버렸다. ‘이삼성(e-samsung)’이었다. ’이삼성‘은 이 상무가 개인 돈 60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지주회사였고, 향후 그룹의 인터넷 관련 사업을 통째로 맡기로 했다. 지난 2000년 당시 경영일선에 뛰어든 재벌 2, 3세들의 생각은 대부분 비슷했다. A그룹의 오너는 “9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공부한 재벌그룹 2, 3세들은 대부분 인터넷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며 “나이가 젊은데다, 당시 미국에서 ‘닷컴’ 열풍이 불어 수업내용의 대부분이 이와관련됐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삼성’ 정점으로 16개 회사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제일제당 인터넷 비즈니스 사업,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도 인터넷 비즈니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경영 경험이 충분치 않은 재벌 2세들로서는 가장 익숙한 분야를 먼저 손대고 싶었던 셈. 이재용 상무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그는 대학원에서 컴퓨터 비즈니스를 전공했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삼성그룹은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폐암 치료를 위해 장기간 자리를 비웠고, 이 상무의 경영 참여를 순조롭게 하기 위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삼성그룹은 ‘이삼성 프로젝트’를 단 시간에 추진시켰다. ‘이삼성’은 같은 해 ‘이삼성 인터내셔널’이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고, 이 회사는 실질적인 인터넷 업무를 담당할 ‘오픈타이드 USA’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오픈타이드 USA’ 는 다시 ‘오픈타이드 코리아’를 설립했고, 이런 연결고리는 이어졌다. 결국 삼성그룹은 ‘삼성인터내셔널’을 정점으로 ‘오픈타이드’, ‘가치네트’, ‘FN가이드’, ‘시큐아이닷컴’ 등 총 16개의 인터넷 회사를 설립하거나 인수했다. 이들의 역할은 각각 달랐다. ‘오픈타이드’는 웹 에이전시, ‘가치네트’는 금융, ‘FN가이드’는 증권, ‘시큐아이닷컴’은 보안, ‘이니즈’는 자동차 매매 등은 담당했다. 삼성의 무차별적 사세 확대를 두고 그룹 안팎에서는 여러 얘기들이 오갔다. 당시 오픈타이드에 있었던 한 관계자는 “이재용 상무가 이들 회사에 직접 투자한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소유주라는 사실은 다 알고 있었다”며 “이들 회사에 모인 인력들이 고급 인력이다, 그룹에서 축출될 가능성이 큰 사람 이라는 등 말이 많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회고했다. 이 관계자의 얘기에 따르자면 그룹 안팎에서조차 혼란이 컸던 사업이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황태자의 첫 작품’이라며 주목하는 분위기였다.
삼성계열사, 이재용 지분 떠안아
하지만 삼성그룹의 인터넷 사업은 이 상무 본인이나, 그룹 모두에게 득이 되지 못했다.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닷컴 열풍’이 꺼지면서 이들 회사의 역할도 줄어들고 있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상무는 어느새 본인이 투자했던 지분을 그룹 계열사로 넘기고 있었다. ‘이삼성’의 지분은 제일기획으로, ‘이삼성인터내셔널’의 지분은 삼성SDI와 삼성SDS, ‘시큐아이닷컴’의 지분은 에스원, ‘가치네트’의 지분은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 등이 사들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 동안 삼성그룹은 이들 업체에 대해서 철저히 함구했다.
‘오픈타이드’의 경우 초기 설립 목적이었던 웹 에이전시에서 점차 삼성의 로컬 컨설팅회사로 바뀌는 등 몇 몇 회사들은 변화가 있기도 했지만, 적자 폭은 줄어들지 않았다. 삼성그룹은 오랜 시간 골머리를 썩여오던 회사들에 대해 대수술에 들어갔다. 지난해 삼성의 계열사인 ‘인스밸리’를 매각했고, 올 초 ‘FN가이드’마저 제외시킨 것. 삼성은 지난 8일 ‘엠포스’의 지분까지 모두 매각함으로써 사실상 인터넷 사업부문을 접었다. 하지만 삼성은 사업을 조용히 접고 싶었던 바람과 달리, 시민단체가 이를 지적하고 나서자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특히 참여연대에서 ‘황태자의 경영 자질론’을 들먹이자 난감한 모습이다. 삼성이나 이재용 상무 모두에게 인터넷 사업은 ‘지우고 싶은 과거’가 된 셈이다.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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