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거품의 후유증
로커스의 분식회계는 지난 9월 발생했던 터보테크 분식회계와 그야말로 ‘판박이’다. 두 업체 모두 금감원이 은행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분식회계가 적발됐으며, 두 업체의 대표들이 각각 벤처기업협회의 부회장과 회장을 역임하는 등 대외활동도 적극적인 면도 똑같다. 업계관계자들은 1세대벤처들이 분식회계를 한 이유에 대해 “바로 적극적인 대외활동이 분식회계의 간접적인 도화선이 됐을 것”이라며 “1세대벤처의 고질적 병폐인 ‘제왕 경영’방식이 손쉬운 분식회계를 불러들인 셈”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대형 분식회계 파문에 휩싸였던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2000년 코스닥 붐 이전에 증시에 등록됐던 벤처 1세대 기업이다.
문제는 당시 코스닥 지수가 280(현재 지수체계로는 2800)까지 치솟으면서 과도한 투자를 받았던 게 화근으로 작용한 것. 이에 장흥순 터보테크 전회장은 “당시 회사가 유상증자를 할 당시 구주를 담보로 신주를 매입했다가 주가가 폭락하면서 담보가 부족해져 회사 자금을 끌어넣었다”고 털어놨다. 로커스 김형순 사장도 “코스닥 거품이 꺼지면서 부실 매출과 주식 투자 실패로 회사 사정이 나빠졌는데 외형적으로 회사 사정이 나쁘지 않게 꾸미기 위해 분식회계를 했다”고 고백했다.
감사·감리도 무용지물
문제는 이들 기업이 외부로부터 이 같은 분식회계를 막기 위해 감사·감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5년이 넘게 분식회계가 지속됐는데도 외부감사와 감리업체는 이를 적발하지 못한 셈이다. 이에 외부감사를 맡은 인덕회계법인은 “분식과 관련된 부분을 기업이 조직적으로 은폐하면 외부감사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고 해명했다. 금감원도 뒤늦은 적발에 대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1,800개 상장기업의 공시를 맡고 있는 이들이 고작 16명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 실제 금감원은 매년 상장기업 중 10%가량을 임의로 골라 감리를 실시하고 있다. 게다가 기업 부담 축소 차원에서 올해부터는 1차 감리 진행 이후 문제없으면 회계장부 등 관련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CD와 CP를 통한 분식회계는 회계법인이 감사 과정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은 외부 감사가 소홀했다는 것을 입증한다”며 “터보테크와 로커스에 대한 특별감리 때 해당 회계법인의 감사 절차 등도 집중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벤처기업협회 한 관계자는 “코스닥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경영 사정이 악화되자 기업 외형을 유지하기 위해 분식회계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던 것”이라며 “1세대나 1.5세대로 불리는 벤처기업 중 상당수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종열 snikers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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