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형제의 난 ‘불씨’ 잔존
재벌가 형제의 난 ‘불씨’ 잔존
  • 이규성 
  • 입력 2005-11-14 09:00
  • 승인 2005.11.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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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 총수 일가 4명을 포함해 모두 14명의 두산 경영진이 326억원대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것으로 소위 두산 형제간의 전쟁이 일단락됐다. 박용호-박용성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촉발된 두산 사태를 놓고 재벌가의 형제(남매)경영의 부작용이 표면화됐다는 데 재계는 이견이 없다. 특히 다른 재벌가의 형제경영도 언제 어떤 방식으로 불협화음이 겉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재벌가의 형제(남매)경영 현주소를 살펴봤다.

형제 (남매)경영하면 두산 형제의 난이 벌어지기까지는 그런대로 우애경영으로 대표될 수 있었다. 특히 두산그룹이 100년의 기업 역사를 지속하면서 형제간에 돌아가면서 경영권 승계를 해오면서 우애경영의 대명사로 두산이 손꼽혀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두산일가의 사법처리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재벌가의 형제(남매)경영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사실 국내 대기업들의 경영권은 대부분 오너의 친인척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형제(남매)경영이 아니라고 볼 수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의 자녀들이 계열분리를 통해 쪼개져 나가 사실상 경영권 간섭이 없는 삼성그룹만이 예외일 수 있다. LG그룹의 구본무 LG회장과 구본준 LG필립스 부회장도 형제간이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SK엔론 대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단순히 형제(남매)가 그룹내에 상존했다는 점에서 형제(남매)경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하지만 두산의 예처럼 이들이 경영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그룹 자체가 기우뚱거릴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형제경영을 실제로 우애경영으로 펼치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모범이 될 수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경영은 70년대 창업주 박인천 회장이 아들들에게 경영을 맡기며 시작됐다. 금호실업은 맏아들인 성용, 광주고속(현 금호고속)은 둘째 정구, 금호타이어는 3남 삼구가 맡았고 금호석유화학은 4남 찬구가 80년대부터 경영을 챙겼다. 박성용 회장은 88년 제2민항 설립업체로 선정돼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던 96년 동생인 박정구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박정구 회장이 2002년 지병으로 타계하자 자연스럽게 셋째 동생 박삼구 회장이 자리를 넘겨받았다. 이 과정에서 박성용 회장은 든든한 구심점 역할을 했고 형제간 화합경영의 전통을 세웠다.

효성그룹도 모범적인 형제경영을 펼친 기업으로 손꼽힌다.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은 70년대부터 3형제(조석래-양래-욱래)에게 주력기업을 하나씩 넘겼고 78년 기업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조석래 회장은 주력 기업인 효성물산과 동양나이론,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4개사 모두 ㈜효성으로 통합)을 맡았고 차남 조양래 회장은 한국타이어를 물려받았고 조욱래 회장은 대전피혁, 효성기계 등을 넘겨받았다. 재계에선 형제경영만큼은 아니지만 남매경영도 적지 않다. 우선 최근 정의선 기아차 사장과 정성이 이노션 고문의 남매경영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룹내 위치로 볼 때 정의선 사장을 누나인 정성이 고문이 따라갈 처지는 못 되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업주부였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들어 광고회사 이노션의 주역으로 등장해 투싼, 스포티지 등의 광고제작과 카니발 등 신차 런칭 행사에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그룹내에선 정 고문의 활동반경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CJ의 남매 경영도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올해 초 인사를 통해 이재현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씨를 그룹 엔터테인먼트 사업 담당 부회장에 임명했다. 이 부회장은 영화제작 투자·배급업체인 CJ엔터테인먼트와 극장업체 CJ CGV, 음악채널 m.net 등을 갖고 있는 CJ미디어 등 CJ그룹의 핵심 차세대 사업인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분야를 맡으며 그룹내의 확실한 2인자로 급부상하게 된 것. 이와 함께 CJ아메리카 사업도 담당하고 있다. 사실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부문은 이미경 부회장이 처음부터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지난 1995년부터 ‘먹는’ 사업의 한계에 봉착했던 제일제당(현재 CJ)은 신사업부문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다. 이 와중에 그룹 내 해외파인 이미경 부회장(당시 이사)이 미국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 등과 함께 다국적 엔터테인먼트 회사 드림웍스 설립을 주도하게 된 것. 이를 기반으로 CJ는 영화배급사업부문 진출의 초석을 다질 수 있게 됐다.

이어 영화제작 및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가 생겨났고, 드림웍스가 제작하고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수많은 영화들을 내걸 스크린이 필요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티플렉스인 CJ CGV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미경 부회장의 입장에선 당연한 자기 밥그릇을 되찾은 셈이다. 하지만 지난 2000년 벤처기업 골드뱅크(현재 코리아텐더)에 투자해 수백억원의 투자 손실을 낸 장본인이었던 이미경 부회장에게 ‘있지도 않은(공식적으로 CJ그룹에 부회장 직함이 없다)’ 부회장 직함을 줬다는 면에서 재벌 2세들간의 나눠먹기식 인사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씨 장녀이며 전 중앙종금 김석기 사장과 백년가약을 맺었으나 이혼한 아픔을 겪었다. 내년 롯데쇼핑의 상장 예정으로 주목받고 있는 롯데그룹도 사실상 남매경영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특히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과 동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간에 ‘롯데쇼핑 상장’을 놓고 명암이 엇갈리고 있어 더욱 이목을 끌고 있다. 재계는 그동안 삼성-신세계의 경우처럼 롯데쇼핑을 사실상 신영자 부사장이 물려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신영자 부사장이 30년 넘게 백화점과 할인점 사업을 통해 ‘유통명가 롯데’를 키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롯데쇼핑 상장 움직임을 살펴보면 신영자 부사장의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30년 가까이 키워낸 롯데쇼핑을 공개하면서도 사실상 들러리로 전락한 셈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롯데그룹 2세들의 경영권 분쟁을 염려하고 있다. 특히 롯데쇼핑을 30년 넘게 경영해왔던 신영자 부사장의 입장에선 롯데쇼핑은 그야말로 인생이 담긴 존재다. 이에 반해 롯데 쇼핑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신동빈 부회장은 차기 후계자라는 이름 덕에 상장 반사이익을 고스란히 얻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동빈 부회장은 롯데쇼핑의 최대주주(21.19%)이고 롯데쇼핑 상장을 통한 차익으로 그룹지배력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중국고사성어에 ‘난형난제’라는 말이 있다. 공적과 덕행을 논하여 우열을 다투는 데 구별이 힘들 정도일 때 쓰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재벌가의 형제(남매)경영이 두산의 형제의 난을 타산지석삼아 ‘난형난제’ 경영이 되기를 시민단체들은 바라고 있다.

# 두산일가, 326억원 어디에 썼나? 6남매 공평(?)하게 배분, 생활비로 탕진

비자금으로 조성된 326억원은 두산일가가 마치 곶감 빼먹듯이 야금야금 생활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용성 전 회장 일가가 회사 자금을 개인 돈처럼 빼내 사용한 용처는 지극히 개인적인 용도로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사찰 시주로 15억원이 후하게 사용됐고 이자대납으로 139억원을 물쓰듯 쓰기도 했다. 매년 8,000만원씩 가족들 모두가 특별 보너스로 잔치를 벌이는 등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던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한 가지 재미난 일은 그동안 가족경영 관행을 이어온 박 전 회장 일가는 비자금 배분에도 가족주의에 따라 배분을 한 것이다. 비자금 조성에는 두산 건설 등 계열사와 동현엔지니어링 등 위장 계열사가 한 몫을 담당했다. 이들은 계열사 사장들에게 회사경영을 맡긴 게 아니라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고, 계열사 대표도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하청업체와 허위계약을 체결하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하여 총수일가의 주머니를 채워줬다. 실제로 두산산업개발이 219억원, 세계물류가 48억원, 넵스가 40억원, 동현엔지니어링이 19억원 등을 조성하여 박용성 전회장 등에게 전달했다.이렇게 모은 돈으로 박용성 전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가 박용성 전회장의 형제들에게 매월 600만~700만원씩 생활비조로 통장으로 송금하거나 운전기사를 통해 보냈다.

매년 5월에는 8,000만원이 ‘특별 보너스’라는 명목으로 지급됐다. 이와는 별도로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은 사찰시주금을 자신이 조성한 비자금 40억원 가운데 15억원을 주기도 했다. 또한 박용성 전회장의 일가는 두산건설에 대한 지분 유지를 위해 비자금 139억원을 유상증자에 들어간 은행대출금의 이자로 냈다.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회사자금을 빼돌린 것이다. 이러한 충격적인 조사결과에도 불구하고 박용성 전회장 일가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 기소 결정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용성 전회장 일가가 횡령한 돈을 원상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구속 기소한 것에 대해 향후 논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규성  bob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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