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실패 삼성계열사가 떠맡아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삼성 계열사들이 이 상무가 인터넷 사업에서 본 손실을 떠안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인터넷 기업들의 지분을 매입해 막대한 손해만 본 뒤 곧바로 기업을 청산한 것은 이 상무의 재산 부풀리기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를 기업이 떠안는 행위라는 것이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가치네트’는 지난 3월 23일 주주총회에서 감자를 통해 자사주 10.63%를 소각했다. 이로써 ‘가치네트’의 자본금은 214억원에서 191억원으로 줄어들었다.이에 대해 ‘가치네트’의 한 관계자는 이번 감자의 배경에 대해 “지난 2002년 12월 자회사인 금융재테크 포털사이트 ‘웰시아’ 영업권을 SK텔레콤의 자회사인 팍스넷에 매각할 당시 ‘가치네트’의 주주들이 매수청구권을 행사해 보유하게 된 자사주 지분을 전량 소각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업계는 ‘가치네트’의 이번 자사주 소각이 법적 청산의 첫 수순인 것으로 보고 있다.이 상무는 인터넷 벤처 열풍이 한창이던 지난 2000년 초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지원을 받아 e-삼성, e-삼성 인터내셔널 등 2개의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가치네트를 포함한 14개의 인터넷 기업을 세웠다. 그러나 1년도 되지 않아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이 기업들이 부실화되자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삼성 계열사들에 떠넘겼다. ‘가치네트’는 이런 인터넷 기업들 중 이재용 상무가 최대주주로 남아있는 마지막 회사다.삼성의 6개 계열사들은 이 상무로부터 부실 인터넷 기업들을 인수한 후 이 기업들을 하나 하나 해체해 왔다. 참여연대는 청산과정에서 계열사들이 입은 손해는 2005년 현재 총 387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페이퍼 컴퍼니 ‘활동 전무’
현재 ‘가치네트’는 영업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페이퍼 컴퍼니’다. 회사 지분 중 76.26%는 이재용 상무(32.79%), 삼성에버랜드(18.73%), 삼성SDS( 9.37%), 삼성경제연구소(4.68%), 삼성카드(3.28%), 삼성증권(1.41%) 등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하고 있다. 최근 삼성의 전략기획실장으로 부임한 이학수 부회장도 4.68%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참여연대는 당시 e-삼성과 이 상무가 투자한 인터넷 기업 지분을 인수한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참여연대는 삼성SDI, 에버랜드, 삼성SDS, 삼성전기, 에스원 등이 e-삼성, e-삼성인터내셔널. 시큐아이닷컴 지분을 인수한 탓에 무려 38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인터넷 사업은 이 상무의 경영실적 잣대이다. 그런데 모두 실패했기 때문에 회사가 존재한다면 향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이 상무에게 문제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삼성측에선 인터넷 관련 사업은 모두 청산 절차를 밟아 이 상무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을 해소시키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이 상무가 ‘저질러놓은’ 인터넷 기업들의 부실을 삼성 계열사들이 ‘뒤처리’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지난해 10월 참여연대는 삼성 계열사들이 이 상무의 인터넷 기업들을 인수한 것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며 이 상무와 삼성 계열사들의 이사 9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상무가 인터넷 기업들의 경영에 실패해서 생긴 손실을 삼성 우량 계열사들의 소액주주들이 부당하게 떠맡게 됐다는 것이 고발의 요지. 참여연대는 “삼성 계열사들이 이 상무의 지분을 매입한 것은 정상적인 투자가 아니라 이재용 상무의 경영권 승계 과정의 하나로 추진된 인터넷 사업이 실패하면서 생긴 손실과 사회적 명성의 훼손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참여연대는 또 “결국 지배주주 일가의 손실 회피를 위해 수익성 없는 사업에 투자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이재용 상무와 계열사 임원들은 업무상 배임”이라고 설명한다.
소액주주 타격 입을 수도
그룹차원에서 대외적 활동을 재개했지만 반대로 이 상무가 요즘 바짝 몸을 낮춘다. 악재가 겹친 상황이라 그저 몸을 낮춘 채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서울중앙지검이 수사 중인 삼성관련 4건의 사건은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 상무가 ‘에버랜드 전환사채’,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편법으로 증여 또는 인수했다며 참여연대가 고발한 사건이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재용이 인터넷 사업에서 본 손실을 삼성계열사가 떠안았다며 참여연대가 고발한 ‘e-삼성 사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요 수사 대상자는 지난 96년 에버랜드와 서울통신기술의 전환사채 발행과 관련된 이건희 회장, 현명관(당시 비서실장), 홍석현(당시 중앙일보사장) 등이다. 또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등의 최대 수혜자이며 ‘e-삼성 사건’과 관련 피고발인인 이 상무도 포함돼 있다. 특히 검찰은 에버랜드 CB발행을 통해 삼성의 경영권을 이 상무에게 넘겨주기 위해 그룹 차원의 공모가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회계자료 분석을 통해 물증 찾기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현재 대검 중수부 산하의 회계분석팀의 지원을 받아 에버랜드 CB가 발행됐던 1996년 전후 시기 계열사들 및 에버랜드의 재정실태 등을 정밀 분석 중이다. 검찰수사의 초점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에버랜드 CB발행 공모 의혹에 대한 집중 조사에 맞춰지고 있다. 또한 지난 3월 31일자 본지 621호에 보도된 이 상무의 해외비자금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경영능력 아직은 미지수
이재용 상무의 재산 형성 시기는 지난 95년. 당시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8,000만원을 현금으로 증여받아 증여세를 납부하고 41억원의 현금을 확보한다. 그는 41억원을 비상장 계열사 에스원, 삼성엔지니어링에 투자하여 상장을 통해 563억원의 상장 차익을 남긴다.비상장 기업에 투자하여 상장 차익을 남긴 이재용의 재산 형성 과정은 경영권 승계를 추진하던 여러 기업들에 벤치마킹 모델이 된다.
이 상무는 인수 대금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상장주식을 매수하는 방식 대신 CB(전환사채)와 BW(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하는 방법을 썼다.이 상무는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SDS 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한다. 그러나 전환사채와 인수권부사채를 너무 싸게 인수했다는 이유로 헐값 논쟁에 휘말렸고 참여연대에 고발당하기에 이른다. 현재 이 상무는 25.1%에 달하는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갖고 있고, 삼성SDS 지분 9.1%도 확보했다.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최대주주(13.34%)이기 때문에 삼성그룹을 총괄 지휘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셈. 삼성SDS는 e-비즈니스 시스템 구축과 컨설팅 사업으로 매출 2조원의 거대 SI업체이다.
삼성SDS 대주주 현황을 보면 이재용(9.1%), 이부진(4.6%), 이서현(4.6%), 이학수(4.5%), 김인주(2.2%) 등이 올라 있다. 이 상무는 38세로 일반 회사원으로 치면 차장급에 불과한 나이지만, 오너의 2세라는 점에서 승승장구한 것은 사실이다. 올초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들어 섰지만 아직 자신만의 색깔을 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게 일반적인 평가.삼성그룹이 적극적으로 경영능력 키우기에 매달리는 것은 오너 3세의 경영 승계라는 사회적 정서를 불식시키는 한편 전문 경영인으로 이미지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다.이 상무가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선 에버랜드 전환사채 등 현안문제를 극복하고 경영 성과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대외용 이미지 메이킹도 ‘병행’
때문에 삼성그룹은 그를 그룹 경영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다. 지난 2000년 닷컴 붐으로 인터넷 사업을 시작하여 원금마저 손실을 보면서 이 상무의 경영 능력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주주들의 반감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몸을 낮추고 경영수업을 쌓아 왔다.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정보통신 전시회 세빗(Cebit)에 매년 참석하고, 매달 기초과학 스터디그룹에 참여한다는 것을 언론에 홍보해 왔다. 이 같은 마케팅 전략을 통해 첨단기술에 대한 열정이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부전자전’을 부각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다.세빗에 참석한 삼성전자 한 임원은 “이 상무가 상당히 깊이 있는 질문을 많이 했다.
기술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마케팅이나 시장전망 등 경영전반에 대한 질문을 현장에서 직접 해 담당 임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고 말했다. 삼성 임원들은 이 상무의 성격이나 경영수업 스타일이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복사판 같다고 전한다. 이 회장과 마찬가지로 이 상무도 궁금하면 참지 않고 바로 바로 답을 얻고 문제가 생기면 직접 부딪혀 보기 때문이라는 것. 삼성은 그룹차원에서 ‘부전자전’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추진하고 있다.이 같은 삼성의 그룹차원의 이미지 메이킹에도 불구하고 이 상무가 원만하게 경영권을 승계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가 삼성에버랜드, SDS등 계열사 지분을 취득하여 얻은 주식 이득은 1조원. 그러나 에버랜드 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배임 문제와 관련돼 있어 만약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다면 지분 보유 자체부터 정당성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정부의 금산법 제정과 노조의 ‘소유와 경영분리’에 대한 반발이다. 그간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에선 오너의 경영과 소유 분리를 주장해 왔지만, 이건희 체제에서 경영성과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등 전문 경영인으로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 상무가 경영권을 승계할 경우 또다시 참여연대 등과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곳곳에 ‘암초’ 도사리고 있어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에서 올해 전무 승진이 확실시되던 그는 승진이 보류됐다. 삼성측에선 “경영에 책임을 져야 하는 첫 단계인 전무직으로 승진하기 전에 현업에서 경영수업을 쌓는 것”이라고 애써 해명하지만, 일부에선 재판과정에서 불거지게 될 여러 사안들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이재용 체제로 경영이 승계되는 것은 막을 것이다. 그는 전문 경영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오너3세라는 특권으로 검증 절차도 없이 경영권을 물려 받으려 하고 있다”고 말한다.
외국 대기업에는 창업주의 2·3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미국 스탠더드 오일의 록펠러 가문, 포드 자동차의 포드 3세, 휴렛패커드(HP)의 패커드 일가가 대주주로서 최고경영자(CEO) 선임에 가끔 개입할 뿐, 경영은 철저히 전문경영인의 몫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창수 수석연구원은 “서구 기업들은 종신형 오너 혈통주의가 경영상의 리스크라고 보는 반면, 우리는 검증된 전문경영인 부족으로 경영권 세습을 수용하는 상황”이라며 “그 대안은 실력 있는 CEO의 양성”이라고 말한다.
# 5년간 관련 내용 주석 기재 안해에버랜드 감사보고서 ‘공정성 논란’
삼성에버랜드의 2005회계연도 감사보고서가 적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3월 21일 삼성에버랜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에버랜드 감사를 맡고 있는 안진회계법인은 삼성차 채권단과 분쟁을 겪고 있는 연대책임 사항을 그 동안 기재하지 않다가 이번 감사보고서에 처음으로 우발채무 사항으로 기재한 것.지난 99년 9월 삼성차 채권단과 맺은 합의서 사항에 따른 것. 합의서는 이건희 회장이 내놓은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처분해 처분가액이 2조4,500억 원에 미치지 못할 경우 31개 계열사들이 연대 책임을 지고 불이행시 지연이자 상당액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그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삼성차 채권단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연대책임 등의 내용은 이미 알려져 있다.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연대책임 합의서를 서명했던 다른 주요 계열사들은 이 사항을 지난 2000회계연도 감사보고서 때부터 우발채무 주석사항으로 기재해 오고 있다. 그런데 에버랜드와 안진회계법인은 그동안 이 사항을 감사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내놓은 2005 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 처음으로 우발채무 항목의 주석으로 기재하면서, 기재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삼성차 채권단이 삼성그룹 계열사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우발채무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우발채무 주석사항은 ‘실현가능성’여부를 따지는 것이 주요 포인트이다. 그 동안 회사와 회계 법인이 이를 주석으로 기재하지 않았다면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다가 지난해 말 채권단이 소송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우발채무 항목으로 잡은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우발채무 주석의 경우 주관적 판단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채권단과의 약정사항(합의서)이 지난해 말 관련 소송을 계기로 구체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만큼 이제 와서 주석사항으로 기재했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사항은 아니라는 것.
실제로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2002년도 감사보고서를 중심으로 금융감독당국의 감리가 있었으나, 관련 사항의 주석 미기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관련 분쟁의 경우 분쟁 금액이 크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사항이다. 그 동안 주석사항으로 기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적정성 논란이 있다. 또한 다른 계열사들이 지난 2000년부터 주석사항으로 기재하던 것을 기재하지 않은 점이 다른 계열사들과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이에 대해 회계감사 책임을 맡고 있는 안진회계법인측은 “에버랜드의 우발채무 주석 기재는 그 동안 적정하게 이뤄졌다”고 해명한다.삼성에버랜드는 삼성그룹 후계구도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고, 삼성에버랜드-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지주 회사 성격을 지니고 있다.
조경호 news00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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