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진위 논란 ‘증폭’
유언장 진위 논란 ‘증폭’
  • 이범희 
  • 입력 2006-09-08 12:28
  • 승인 2006.09.08 1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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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형제의 난’전모

한진家 2세들이 고(故) 조중훈 창업주의 유서 진위를 놓고 법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대한항공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이 사망할 당시 유서를 위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도덕성논란이 일고 있다. 혼수상태였던 고 조중훈 회장이 잠시 정신을 차린 뒤 직원이 유서를 받아 적었다는 것. 조중훈 창업주의 사후에 유서의 진위를 놓고 형제간 갈등이 벌어졌다. 남호(2남), 정호(4남) 형제는 믿지 못하겠다며 ‘유서의 위조’의혹을 제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형제간에 갈등의 골이 깊지 않았고, 사실 여부가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형제끼리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 합의서가 이행되지 않자 조남호와 조정호가 법정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유언장이 ‘사실인가?’. 아니면 ‘위조됐는가?’의 진위 여부가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한진家 2세들의 재산 분쟁이 브레이크가 파열된 폭주 기관차처럼 끝없이 질주하고 있다. 형제간의 갈등은 증오를 넘어서 원수지간처럼 지낸다는 소문까지 재계에 일고 있다. “피보다 돈이 진하다”는 말을 실감나게 해주고 있다. 법정 소송까지 간 한진가의 ‘형제의 난’은 조만간 1심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정에서 가장 핵심은 조 창업주의 유서가 위조된 것이냐, 아니면 실제이냐이다. 만약 위조됐다면 누가, 무엇 때문에 위조를 했을까 하는데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조 창업주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지난 2002년 11월 17일 타계했다. 이로부터 한 달 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장기간 혼수상태에서 끝내 사망한 조 전회장이 사망 15시간 전인 16일 밤 9시께 대한항공 직원에게 유언 내용을 말하고, 이를 직원이 적었다고 밝혔다. 유언 내용을 살펴보면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 가지고 있는 인하학원과 대한항공 쪽에 대부분의 재산을 넘기라는 것이 주된 골자다. 하지만 유언장이 공개된 후 조남호, 조정호 형제는 “부친의 병실에서 대한항공 직원은 보지 못했다. 사망 직전까지 혼수상태였던 조 회장이 잠시 정신을 찾아 유언에 대해 말을 했다는 주장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형제들은 유언장의 진위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었고, 형제간의 다툼만 심화됐다.

합의문 작성 파기가 발단
조 회장 일가는 언론은 물론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룹 이미지 제고와 문제점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합의문건을 만들었다. 합의안에는 형제간 사업 분할과 계열분리, 잔여재산에 대한 공동 상속인인 2세들이 법정 상속분에 따라 분배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같은 해 5월, 그룹 비상장회사인 정석기업의 주식배분에 대해 조 전회장의 동생 조중건과 처남인 김성배 이름으로 돼 있는 정석기업의 주식 4만9,000여 주와 2만여 주를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 2003년 말까지 조남호와 조정호에게 이전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돈은 피보다 진했다. 조씨 형제들이 합의한지 3년 만에 합의 사항이 해결되지 않자 법정분쟁으로 이어졌다. 국민들에게 볼썽사납게 비친 두산그룹 형제의 난과 마찬가지의 양상이다. 조남호, 조정호가 조중건, 김성배 이름으로 된 정석기업 주식 배분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남호, 조정호 회장측이 요구한 정석기업 주식은 고 조중훈 전회장의 차명주식이 아니다. 선대회장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받아 소유하고 있는 조중건, 김성배 두 분의 개인 주식이다. 개인의 소유 재산인 만큼 주식배분은 힘든 상황이다. 다른 방식으로 합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사태 수습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한진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오랜 숙고 끝에 소송을 제기한 만큼 법정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액면가 5,000원인 정석기업 주식 6만9,000주는 아무리 비싸게 평가하더라도 수십억원에서 백억원 미만에 불과하다. 두 분이 이 정도의 돈 때문에 소송을 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형제간의 갈등…작은 앙금도 ‘불씨’
이는 형제간 갈등의 골이 그만큼 깊다는 반증이다. 특히 형제간의 갈등은 고 조중훈 회장의 기일을 두고 음력과 양력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는 아주 사소한 문제까지 봉착했다. 장남인 조양호 회장과 3남인 조수호 회장, 차남인 조남호 회장과 4남 조정호 회장이 각각 음력과 양력으로 기일을 나눠 기제(忌祭)를 지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형제간의 관계가 각자 기업의 경영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대한항공이 2003년 말 조정호 회장이 경영하는 동양화재(현 메리츠화제)와 약 5,000만 달러에 달하는 운송보험 계약을 해지하고 영국 로이드 보험회사로 거래처를 옮긴데 이어 지난해엔 조남호 회장 소유의 한일CC 골프장에서 대한항공 광고판을 모두 철수했다.
한진해운도 동양화재와 보험 계약을 일부 해지하고 다른 국내 보험사와 신규 계약을 맺었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 주요 고객이었던 메리츠화재에서도 두 회사가 경쟁 보험사로 거래처를 옮겨갔다. 반대로 메리츠화재의 계열사 한불종합금융은 한진그룹 소유의 해운센터빌딩에서 방을 빼 파이낸스빌딩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또 지난 5월 치러진 조양호 회장의 장남 결혼식에 형제들이 참석하지 않아 형제간의 갈등이 얼마나 깊은가 보여준 바 있다.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유언장 진위여부의 판결논란이 그룹전체의 경영문제로 비화 조짐이 보여 재판결과에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범희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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