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맛’ 아는 고위공직자들, 정부 정책에도 요지부동

시민단체 보유세, 임대소득세 등 보다 강력한 정책 내놔야
다주택자 자유한국당 62명, 더불어민주당 39명, 바른미래당 13명
“집을 거주 공간이 아니라 투기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지난해 8월 2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식 석상에서 한 말이다. 정부에서는 부동산 만능주의 사회의 폐해를 잘 알고 있던 만큼 문재인 정부 시작과 함께 다양한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다. 정권 초기인 만큼 해당 부처의 장관 등은 문제해결 의지도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평균 재산 약 14억
토지·주택 등 부동산 상승
지난달 29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가 ‘2018년도 고위공직자 정기재산변동 사항’을 공개했다. 윤리위가 재산을 공개한 고위공직자는 총 1711명이다. 윤리위는 매년 행정부 소속 정무직, 1급 이상 공무원(고위공무원단 가등급 이상), 국립대 총장, 지방자치단체장, 의원, 시·도 교육감 등의 재산을 공개한다.
올해 공개대상자가 신고한 재산 평균은 13억4700만 원이다. 규모별로 보면 5억~1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경우가 488명으로 28.5%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10억~20억 원 418명(24.4%), 1억~5억 원 401명(23.4%), 20억~50억 원 252명(14.7%), 1억 원 미만 90명(5. 3%), 50억 원 이상 62명(3.6%) 순이었다.
연도별 평균만 놓고 보면 올해는 전년도(공개자 1800명)의 13억5500만원보다 800만원이 감소했다. 그러나 올해 공개대상자의 재산 변동 추이를 보면 평균 8300만원이 늘었다. 재산 증가자는 1279명(74.8%), 재산 감소자는 432명(25.2%)이다.
이는 토지와 주택 등 부동산뿐만 아니라 종합주가지수까지 상승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저축, 상속과 증여 등으로 인한 재산 증가도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주택을 두 채 이상 소유한 이른바 다주택자가 한 두 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토부 장관이 직접 집을 거주 공간이 아닌 투기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대부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조국 민정수석, 김현미 국토부 장관 등은 정부의 정책에 맞춰 자신들이 갖고 있던 아파트 등을 매각하기도 했다.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솔선수범을 보였지만 거기까지였다. 호기롭게 집값과의 전쟁을 벌이겠다던 정부였지만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과 고위공직자들은 ‘공직은 유한하고 부동산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국회의원 287명 중 다주택자는 총 119명이다. 장관을 겸임하고 있는 5명은 제외한 수치다. 정당별로 살펴보면 자유한국당 62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39명, 바른미래당 13명, 민주평화당 4명, 무소속 1명 순이다. 국회의원 다주택자 중 74명은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청와대 참모진 중 다주택자는 14명이다. 그중 박종규 재정기획관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서울 강남에 아파트 2채를 소유하고 있다. 주택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 1급 고위직 9명 중 4명도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하고 있다.
다주택자 수가 가장 많은 정부부처는 교육부다. 총 38명이 다주택자다. 이어 외교부, 청와대, 국토교통부 순으로 다주택자가 많다.
사실 다주택자라고 해서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공무원 특성상 주거지와 근무지가 달라 집을 두 채씩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실제 청와대 참모진들의 경우 대부분 실거주 목적이라고 해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 정부가 과거 그 어떤 정부보다 다주택자를 가장 배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위공직자들이 여전히 다주택자로 남아 있다. 국민들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태경 센터장
“불로소득 환수해야”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는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이 공개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문재인 정부의 8·2 부동산대책을 비판하며 “정부 정책이 신뢰 못 받는 이유는 고위공직자가 집을 여러 채씩 갖고 안 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이날 오전 대전 서구문화원에서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를 열고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 말고는 잘 하는 게 없다. 특히 부동산 정책은 강남부동산 정책”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공개 현황에 따르면 청와대 참모진 장관급 등 25명이 다주택자였고 국토부 1급 이상 공직자 9명 중 4명이 다주택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강남3구와 세종시 등 투기과열지구에 주택을 보유했다”며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8월 2일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사는 집이 아니면 팔라고 했다. 그러나 고위공직자 대부분이 안 팔고 버티고 있다”고 강조했다.
효과적인 부동산 정책을 만들기란 정말 쉽지 않다. 부동산 만능주의 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국민들을 위해 부동산 안정은 물론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2월 28일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진단했던 토지+자유연구소 이태경 센터장은 “보유세와 임대소득세에 대한 과세를 머뭇거리는 데에서 드러나듯이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인식과 의지가 많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 투기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노리고 발생한다. 따라서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사전에 차단하거나 사후에 환수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최적의 정책수단이 보유세”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센터장은 보유세의 한계도 인정했다. 그는 “보유세만으로 부동산 투기를 끝장내거나 집값을 안정시키긴 어렵다”며 “적정한 공급대책, 금융대책, 주거복지대책,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힘의 비대칭성을 완화하는 정책 등이 총체적이고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보유세, 임대소득세 등에 대해 정부의 보다 강력한 정책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히게 하지 않으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코웃음 치고 있는 다주택자 고위공직자들.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정책은 없을까.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