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그룹에 비상이 걸렸다. 대우건설 인수전에 탈락한 이후 서울증권 인수로 눈을 돌려 세력확장에 나섰지만 온통 가시밭길이다. 최근 검찰은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의 친동생을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좌불안석이다. 유진그룹측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면서 검찰 수사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유진의 서울증권 인수는 사실상 물건너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다. 우선 인수하려는 유진기업과 서울증권 대주주인 강찬수 회장 모두 검찰의 수사선상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유진은 서울증권 인수는커녕 그룹의 심대한 이미지 타격이 예견되고 있다.
그 사연은 이렇다. 유진기업과 지난 7월 스톡옵션 1,282만주 및 경영권의 양도계약을 맺은 강찬수 회장이 최근 검찰의 집중조사를 받았다.
검찰 강회장 본격 수사
검찰이 강회장에게 적용하는 혐의는 배임과 증권거래법 위반. 강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이 회사 노조가 검찰에 진정서를 넣은 것이 시초가 됐다. 금감원도 노조의 진정서에 따라 검찰과는 별도로 특별검사에 착수한 상태.
한겨레는 11월 15일자에서 서울남부지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서울증권 노조와 민주금융노조 등으로부터 고발된 강회장을 지난 10월 말께 불러 피고발인 조사를 벌였다”며 “강회장 혐의 사건은 현재 형사 5부에서 수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실제 노조는 지난 4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5.1%의 지분을 가진 강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지하는 인사들에게 위임장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출장비 등의 명목으로 10억원의 회사자금을 지출했다고 주장하며, 강회장을 지난 8월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강회장은 또 지난해 10월과 올 1월 한국증권금융에 자신이 보유 중인 서울증권 주식 1,200만주를 담보로 배우자 등 두 명의 이름을 빌려 55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혐의(증여세 탈루)로 노조에 의해 국세청에도 고발됐다. 강회장은 또 지난 4월 주초 이전부터 자신의 보유주식을 고가로 인수할 제3자를 물색하면서 임직원과 일반 주주들에게는 지난 3월부터 5월 사이 공석에서 잇따라 독자 경영하겠다고 밝히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증권거래법 위반)도 걸려 있다.
노조는 11월 17일 또 강회장이 2005년 12월 21일 소로스 펀드인 퀀텀펀드로부터 170만주의 서울증권 주식을 장외매수하면서 최대주주로서 자사주식을 추가매집할 경우 금감위 허가를 받도록 돼 있는 규정(증권거래법 42조)을 어겼다며 검찰에 추가 고발장을 제출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강회장이 1999년 5월 소로스 펀드에 의해 서울증권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지금까지 받은 스톱옵션은 1,812만주(지분율 7%)이며, 2005년 12월 7일 이사회에서 주총승인을 조건부로 부여받은 스톡옵션 900만주(지분율 3.5%)까지 합치면 2,700만주가 넘는다. 이는 서울증권 전체 주식수의 10.5%에 이르는 규모다.
강회장은 스톡옵션 지분 가운데 1,282만주를 행사해 지난 7월 유진기업에 경영권과 함께 주식양도 계약을 맺었으며, 유진기업이 서울증권 지배주주로 나머지 539만주도 유진기업에 넘길 방침이었다.
조영규 서울증권 노조위원장은 “미국 시민권자인 강회장이 고발건을 이유로 유진기업과의 경영권 양도거래가 파기될 경우 보유주식을 장내 매각하고 증거인멸을 위해 출국할 수 있다”며 “강회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처를 내려 줄 것을 검찰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유진그룹 주가조작혐의 피소
강회장의 검찰 수사 이외에도 유진그룹도 계열사 주가 조작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서울증권 인수에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유진기업과 한주흥산은 지난 7월 28일과 8월 초 잇따라 5% 이상 지분을 확보하면서 지배주주 변경신청을 냈지만 넉 달째 금융당국의 승인신청이 미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증권의 유력한 인수후보인 유진기업이 과거 주가조작 혐의와 관련해 현재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재계는 유진기업의 주가조작 혐의와 서울증권 지배주주 변경신청의 표류가 연관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유진그룹 측은 “지배주주 변경신청이 넉달째 표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련법이 올해 초 도입되면서 국내 처음으로 처리되는 사안이어서 연기된 것인지 정확한 배경은 모르지만 주가조작 혐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금감원은 올해 초 증권산업 부적합자가 증권사 등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증권,자산운용사 지배주주 변경승인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데, 이 법의 도입 이후 서울증권에 처음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진기업이 받고 있는 혐의는 시세조정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2부는 지난 11월 14일 증권선물위원회가 2004년 12월 유진종합개발 유아무개 이사와 회사를 시세조정 혐의로 통보한 사건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코스닥 등록법인인 유진종합개발 측이 주식거래 실적부진을 이유로 코스닥 등록이 취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식거래량을 늘리는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했다는 내용을 증선위로부터 통보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다만 해당 부서가 많고, 중간에 사건이 재배당돼 처리가 늦어졌다고 덧붙였다.
유진종합개발은 지난 2004년 11월 1일 주식거래 실적 부진을 이유로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되었다가 같은 해 12월 투자유의종목으로 해제됐다. 이 과정에서 거래량이 급격히 늘어난 흔적이 역력했다.
건설소재 업체인 유진종합개발은 2005년 12월 같은 그룹계열 종합건설업체인 유진기업에 흡수합병됐지만 시세조정 혐의로 검찰에 통보된 유진종합개발 유아무개 이사는 합병된 유진기업에서도 등기이사를 지내고 있다. 유아무개 이사는 유진그룹 유경선 회장의 친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의 증권업 감독규정의 증권업 허가 심사 기준을 보면 금감위는 주요 출자자를 상대로 형사소송 절차나 검찰청, 공정위, 국세청, 금감원 등에서 조사 등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고, 조사 등의 대상이 되는 사실이 허가심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일 경우 심사를 유예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이에 대해 유진그룹 관계자는 “금감원이 검찰에 통보하는 것은 맞지만 위법하다기 보다는 혐의가 있는 것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유씨일가 공동 경영
한편 유진그룹의 지배구조는 유경선 일가가 모기업인 유진기업을 지배하고 유진기업이 다시 고려시멘트 등 7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형태다. 그룹운영은 유재필 창업주와 그 아들 유경선씨 등 형제들이 공동 경영하고 있다.
지난 1984년에 창업한 유진기업은 창업주 유재필의 큰아들 유경선 현 그룹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유경선 현회장은 연세대학교 출신으로 일개 소기업에 불과한 유진기업을 대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다.
유진의 능력은 지난 대우건설 인수전 때도 드러났다. 언론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유진은 당시 1조5,000억원을 마련, 괴력을 발휘해 일개 무명의 기업에서 성장잠재력이 높은 탄탄한 그룹임을 인정받았다.
그동안 유진그룹은 재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대우건설 인수전에 참여함으로써 일반인에 그룹의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때 홍보 책임자로 대우그룹의 창구였던 백승기씨를 영입해 그룹 이미지 구축에 나섰고, 지난 2004년에는 SK그룹에서 SK텔레콤 사장까지 맡는 등 SK그룹에서 잔뼈가 굵은 김대기씨를 그룹 부회장으로 영입해 면모를 갖췄다는 평가다.
박용수 watchpe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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