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흉봤다고 모가지 댕강”
“회장님 흉봤다고 모가지 댕강”
  • 현상필 
  • 입력 2006-11-30 13:48
  • 승인 2006.11.30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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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 부당해고 논란


두산중공업이 올해 초 형제의 난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박용오 박용성 두 회장의 이전투구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 자사직원을 뒤늦게 해고조치해 논란을 빚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올해초 회사측이 문제의 글을 올린 직원을 고소하다 갑자기 취소했는데, 9개월 지난 최근 사측이 문제의 글을 올린 자사 직원을 다시 해고조치를 취해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사건의 전모를 취재했다.

회장님 비리 비판, 직원이 하면 명예훼손?

지난해 말 두산중공업 주단사업부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새길벗’이란 가명으로 노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경영진의 비리내용을 비판하는 글을 종종 올렸다. 두산그룹 총수일가의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진행 중이던 재판과 관련한 내용이다. 김모씨의 글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박용호·박용성 전회장 사이에 벌어진 이른바 ‘형제의 난’의 내막에 불과했다.
그러나 두산중공업 측은 노조 인터넷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린 김씨를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명예훼손 혐의로 신고했다. 지난 1월 13일 창원 중부경찰서 형사들은 김씨의 집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벌였고, 그는 현장에서 긴급 체포됐다.
그러나 김씨의 구속 상태는 만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사측이 그날 저녁 돌연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사측은 고소를 취하한 이유에 대해 “게시판에 글을 올린 용의자가 외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경찰의 연락을 받고난 후에야 회사 직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서 “회사 내부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고려해 고소취하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소 취하에 대한 노조의 입장은 다르다. 당시 박용성 전회장과 박용만 전부회장 등 두산그룹 총수일가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 이 명예훼손사건이 외부에 알려져 자칫 재판에 나쁜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해 자진해서 소송을 취하했다는 설명이다. 또 두산그룹에 집중되던 따가운 시선도 견디기 어려워 고소를 취하한 배경이라는 것이 노조측의 시각이다.
그러나 두산 측의 처신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두산측이 김모씨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근거는 노조 게시판에 올린 경영진을 비판한 글이었다. 하지만 게시판의 내용은 이미 지난해부터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김씨가 터무니없는 루머를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지 않은 한 사측에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명분이 없는 내용인 것이다.
노조측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두산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사측이 고소와 동시에 취하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두산중공업은 김모씨의 고소사건을 두고 오랜 기간 속앓이를 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홍보실 관계자는 “김모씨가 ‘새길벗’이란 이름으로 노조 게시판에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부터이다. 그때부터 그는 경영진의 신상과 정책에 대해 유언비어와 허위사실을 유포해왔다”고 말했다. 또 “이미 경찰의 조사결과 3년간에 걸쳐 김모씨가 작성한 악성 루머가 모두 470여건에 달해, 더 이상은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노조 게시판에 ‘새길벗’이란 이름으로 등록된 게시물은 모두가 삭제돼 현재 단 한 건도 남아있지 않다. 또 김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2003~4년 노조 대의원 활동 당시 사측 인사들과 첨예한 대립으로 논쟁을 벌인 적은 있으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과도한 수위의 욕설을 내뱉은 적은 없다”고 강변하면서 “사측에서도 논쟁의 빌미를 제공했고 유언비어는 억측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두산측이 김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면서 이번 명예훼손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마무리된 양상이다. 하지만 박용성회장의 재판 결과가 나오자마자 두산측은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21일, 박용성 회장은 비자금조성과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최종판결 선고 후 두 달이 지난 9월 5일, 두산중공업 인사팀은 돌연 명예훼손에 대한 사실조사를 하겠다고 통보하며 면담조사를 실시했다.
같은달 21일 2차 조사를 마친 인사팀은 10월 23일 인사위원회를 열었고, 같은 달 27일 김씨에 대해 명예훼손을 이유로 ‘권고사직’을 결정했다. 권고사직은 10일 이내에 직원이 자발적으로 퇴사하지 않으면 강제 해고 조치되는 중징계에 해당한다.
김씨측은 지난 7월 이후로 두산중공업이 더 이상 박회장 일가의 판결과 관련해 부담요소가 없어져 회사측이 보복적 후속 조치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김씨는 “이미 고소를 취하한지 9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느닷없이 해고통보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호소했다. 김씨는 지난 11월 3일 재심을 신청해 17일 2차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하지만 통보예정일인 같은달 24일 현재까지 두산측은 김씨의 징계결정 발표를 미루고 있다.
두산중공업이 9개월 만에 다시 직원의 명예훼손 문제를 들춰낸 배경에 대해서는 노사협상에 타격을 받지 않는 시기를 고르기 위해서였다는 지적도 있다.
2006년 2·3월은 두산그룹 총수일가의 재판이 진행된 것 외에도 두산중공업 노사가 임단협에 들어간 시기다. 또 7월은 박회장 일가의 판결이 결정된 것과 더불어 임금과 단체협상이 마무리되었다. 다시 말해 김씨의 명예훼손 문제를 다시 거론한다 하더라도 내·외부적으로 아무런 걸림돌도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이에 대해 두산중공업측도 시인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서는 노조와 충돌을 일으킬만한 빌미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아름다운 형제경영’의 이미지가 깨진데 이어 두산중공업은 묵은 감정을 털어내지 못하고 직원을 해고시키는 비정한 기업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상필  dj0927@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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