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계열사 삼성물산이 자사 유통사업부문인 삼성플라자를 매각한 것에 대해 ‘진짜 매각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뒤늦게 일고 있다.
삼성물산측은 현재 ▲누적된 대규모 적자 ▲회사 투자여력의 부족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들고 있으나, 매각을 반대하는 직원들은 “매각을 추진할 만한 경영악화는 없다”며 회사 측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그룹 최고위층만 알 뿐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 “진짜 이유는 그룹 구조조정을 위한 자금 마련에 따른 것 아니냐”며 “우리들은 이에 따른 희생양”이란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매출 계속 증가하는데 왜 팔았나
현재 삼성플라자 매각작업은 ‘직원들의 반발’이란 암초를 만나 ‘일시정지’된 상황이다.
직원들은 지난 10월 26일 회사 측이 매각의사를 처음 밝힌 이후 곧바로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회사측의 매각작업에 조직적으로 대응해오고 있다. 428명의 직원이 매일 2차례 집회를 열고 있다. 11월 24일에는 법원에 ‘매각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현재까지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으나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해도 곧바로 항고할 뜻”이라고 말해 쉽게 물러서지 않을 뜻임을 내비쳤다.
직원들은 회사가 우선적인 매각이유로 꼽고 있는 경영상의 악화는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 노조관계자는 “직원들은 그동안 경영진이 제시한 비전을 신뢰하고 열심히 일해왔다”며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계속된 흑자로 인해 그간 쌓였던 누적적자가 거의 해소됐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 근거로 98년 개점 첫 해 2,774억원이었던 매출이 7년 만인 2005년에 5,675억원으로 급성장했고, 작년 한 해 분당 내의 9개 유통업체 전체 매출액의 33%를 차지한 것을 제시했다. 즉 회사 측 주장은 ‘어불성설’이며 오히려 앞으로 판교·동탄 신도시 건립으로 인해 분당 일대 거주자가 늘어나는데 따른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관계자는 “반드시 경영악화가 이유는 아니다”라며 “건설이나 무역부문 등 주력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매장이 하나 밖에 없는 상태이다 보니 직원들의 승진에도 한계가 있고 조직도 정체될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유통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회사로 넘어간다면 직원들이나 회사 모두에 win-win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언뜻 들어서는 삼성 측의 이런 해명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회사 측은 점포 하나를 늘리는데도 2,000억~3,000억원 정도 들기 때문에 매장을 더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지만 현재 삼성플라자가 위치한 분당 서현동은 굳이 점포를 늘리지 않아도 매출이 늘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애경 측 관계자도 “삼성플라자는 앞으로도 매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큰 지역이기 때문에 인수를 결정한 것”이라며 향후 전망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직원들 사이에서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비대위 측의 한 관계자는 “현재 삼성플라자는 회사가 서둘러 매각을 추진할 만한 경영상의 악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아마도 지주회사 편입을 위해 자금을 마련하려는 의도라는 생각이 든다”고 추측했다.
삼성의 ‘무노조경영’
삼성플라자 매각은 삼성 측이 그동안 철칙처럼 여겨왔던 ‘무노조경영’과도 무관하지 않다. 현재 직원들이 구성한 비대위의 원조격은 지난 99년 3월에 생겨난 후 이틀만에 없어진 삼성물산 유통부문의 노동조합이다.
사실 삼성물산이 ‘삼성플라자’를 매각하려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삼성물산은 지난 98년 영국계 유통업체인 ‘테스코’에 자사 대형유통매장인 ‘홈플러스’를 매각할 때 삼성플라자도 일괄적으로 매각하려 했었다. 그러나 당시 삼성물산 직원들은 회사 측의 매각 작업에 조직적으로 대응할 필요를 느꼈고 이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당시 노조에는 20명의 직원들(발기인 11명)이 모여 노조결성을 결의하고 99년 3월 3일 성남시청에 ‘삼성플라자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접수했다. 당시 노조에 소속됐던 한 관계자는 “노조설립 하루만에 240명이 가입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직원들이 노조를 조직하려 하자 회사 측에서 조직적인 방해행위를 펼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이틀 후인 3월 5일 노조대표 11명과 협상을 갖고 ▲삼성플라자는 향후 회사차원의 매각을 하지 않으며 ▲노조위원 및 가입직원에 대한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지 않는 조건으로 노조의 해산을 요구했고 노조도 이를 받아들여 이틀 후에 노조설립신고를 철회했다.
비대위의 말대로라면 삼성은 자신들의 경영철학인 ‘무노조경영’을 고수하기 위해서 수천억원 대의 매각작업도 철회한 셈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매각을 하지 않겠다는 회사 측의 약속과 노조를 설립하지 않겠다는 노조의 약속은 ‘대가적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며 “노동자들이 노조설립을 하고 있지 않는 동안에는 삼성플라자를 매각하지 않을 의무를 진다”고 주장했다.
매각작업 ‘일사천리’로 진행
현재 이 사태의 향방은 99년 3월 회사 측과 발기인 11명이 모여서 합의했던 ‘향후’라는 표현을 언제까지로 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비대위 측은 당시에 양측이 작성했던 합의문이나 이후 회사 측이 제시했던 경영방침을 보면 분명히 영구적으로 매각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합의문 존재여부나 효력도 문제다. 합의 당사자인 이승한 부사장(현 삼성테스코 대표이사)과 노조대표들이 작성한 합의문은 현재 어느 쪽도 가지고 있지 않다.
비대위는 이것을 공식적 문서라 주장하고 있지만 회사 측은 양쪽 모두 유실할 정도로 별 효력이 없는 문서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당시 양쪽 대표였던 이승한 부사장과 노조위원장이 모두 테스코에 근무하고 있는 것도 변수다. 현재 삼성플라자에는 당시 노조 발기인 11명 중 3명만 남아 있다.
삼성물산 쪽은 10월 26일 삼성플라자를 매각하겠다고 처음 발표했다. 이후 매각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11월 6일 애경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불과 10일만에 5,000억원대(노조 측은 부채를 포함해 6,000억원이라고 주장) 백화점이 팔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99년에 노조의 반발로 인해 실패한 경험이 있는 회사 측이 이번에도 노조의 반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각 작업을 어느 정도 진행한 후에 발표는 뒤늦게 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관계자는 “몇몇 기업에서 오퍼(제안)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직원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지 않게 매각작업을 빨리 진행한 것일뿐 사전협의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박혁진 phj1977@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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