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겨라, 뒷돈 줬던 그 증거
꼭꼭 숨겨라, 뒷돈 줬던 그 증거
  • 경제팀 
  • 입력 2003-12-15 09:00
  • 승인 2003.12.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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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대선 자금 수사를 벌이는 검찰과 기업간의 힘겨운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의 수사를 대비한 기업들이 오해를 살만한 문제의 서류를 미리 손을 써둔다는 것이다. 압수수색이라는 강수를 둔 검찰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격이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오전 10시 30분 경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건물 26층에 대검찰청 수사관 10여명이 들이닥쳤다. 26층은 롯데그룹의 핵심 경영부서인 경영관리본부가 있는 곳으로 수사관들은 서너 시간 동안 회계 장부 등 관련 서류를 복사해갔다. 롯데그룹도 검찰의 압수수색을 예견했다는 듯이 순순히 자리를 피해줬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날 압수수색에서 건진 것이 별로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날 “롯데그룹이 비자금을 조성한 흔적이 포착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 수색했다”고 밝혔다.이날 검찰의 압수수색은 지난 대선 당시 롯데그룹이 롯데건설을 통해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뒤 여야 정치권에 거액의 대선자금을 전달했다는 물적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을 극비리에 진행했음에도 롯데그룹과 롯데건설을 급습한 검찰은 빈손으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사전에 정보가 흘러 롯데그룹이 이처럼 철저히 대비한 것일까. 대검 출입기자, 대검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대검 중수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업 수사는 철저한 내부 보안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 대검 관계자는 “수사 정보는 담당자 이외 알지 못한다”며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기업 관련 정보는 거의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대검의 수사정보에 대해 접근이 어렵다 보니 기업들은 검찰 수사에 대비해 아예 서류 파기 등의 극약 처방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의 경우도 이런 케이스가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는 이미 롯데그룹의 주요 임원이 출국금지 대상에 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그룹차원에서 압수수색에 대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롯데그룹은 검찰 수사에 대해 “대선 자금과 관련,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치권에 전달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롯데건설 압수수색과 관련해서 신문에서 나온 것 이상 알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고 전했다.

특히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고 있는 금융계열사나 건설사를 보유한 대기업들은 검찰 수사에 대비한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사정이 이쯤 되자 일부 건설회사들이 검찰 조사의 ‘불똥’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모습마저 보인다. 일부 그룹 계열 건설회사들은 사내 컴퓨터 자료를 지우고 일부문서를 폐기 처분하는 등 검찰의 불시 조사에 대한 사전 대비책을 마련해 놓았다는 것. 재계 관계자는 “압수수색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며 향후에 있을지 모를 검찰 조사에 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가령 지난 11월 중순 경 실제 A카드사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설이 나돌자 해당 기업은 내부 문서를 파기하거나 디스크 파일을 지우는 등 검찰 수사에 대비했었다. 그러나 관련 서류를 금융당국으로부터 협조받은 검찰은 A카드사의 압수수색을 벌이지는 않았다. 이는 검찰 수사에 얼마나 기업들이 민감하게 대응하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타 재벌계 카드사들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검찰 수사에 대비, 대외비 등 서류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런 현상은 기업들이 전례없는 정보부재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의 기업수사가 이뤄지게 되면, 검찰의 수사대상 기업명단이 대강 나오게 마련인데. 이번 경우는 전례가 없이 정보부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정보가 전무하다 보니 ‘찔리는’ 기업들은 서류파괴 등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수사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들은 검찰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특정 신문사에서 나오는 검찰 정보에 의존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는 것.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연일 특종을 보도한 B신문사의 초판을 구하기 위해 매일 가판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B신문사는 민주당 대선 자금 기업 리스트를 공개한데 이어 검찰의 기업 관련 소환 대상자 등을 특종 보도했다. 정보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한 재계 관계자는 “검찰의 기업 수사와 관련, 정보가 부재하다 보니 이 신문사의 특종보도가 나오게 된 경위에 대해 윗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 한줄 한줄에 신경을 쓸 만큼 기업들은 검찰의 수사관련 정보에 안테나를 곤두 세우고 있다.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B그룹은 검찰의 정보망을 총 가동 중이다. 평상시에 유지했던 정보망 뿐 아니라, 검찰 수사에 조금이라도 접근 가능한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물 불 가리지 않고 접근한다.하지만 이 그룹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일이 발생했다. 과거의 수사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정보유출이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원한 방법이 원천봉쇄. 설령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일을 처리해 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제 소지가 될 파일은 전량 소각했고, 컴퓨터 하드를 모두 밀어버리는 ‘포맷’까지 했다는 후문이다.이것도 미덥지 않아 향후 예상되는 재판과 관련, 변호인단과 함께 법리논쟁까지 벌였다는 소문이다. 기업들이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기업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경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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