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작품은 2007년 카프카의 <심판>을 연출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선정되는 등 평단 주목을 받은 연출가 구태환이 맡았다. 또 <심판>을 함께하며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박윤희가 주인공 K로 분하고, 당시 호흡을 맞춘 박동우 무대디자이너가 다시 한번 카프카 철학을 세련된 현대미학으로 구현했다. 연극 <성>은 고전을 연극으로 선보이는 작업인 만큼, 각색에 심혈을 기울였다. 현실의 부조리를 위트 있게 그려낸 작품 <그게 아닌데>로 알려진 이미경 작가가 합류해 카프카의 원작을 리듬감 있는 희곡으로 옮겨냈다.
미완의 걸작이자 프란츠 카프카가 남긴 가장 매혹적인 소설로 꼽히기도 한 ‘성’의 연극 공연은 2002년 미국 드라마 리그 어워즈에서 베스트 연극으로 노미네이션 되었고 독일의 도이체스 테아터 민중극단에 수차례 상연된 바 있다.

카프카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우연히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묘사했다.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현대 인간은 그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로 소비되며, 끊임없이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성>의 주인공 K가 겪는 정체 모를 불안감 역시 현대인이 느끼는 막연한 공포나 고독과 다르지 않다.
줄거리
K가 마을에 도착한다. 자신을 토지측량사로 고용한 성으로 가기 위해 눈보라와 어둠을 뚫고 왔으나, 미처 다다르기 전에 날이 어두워졌다. 그는 하룻밤 묵을 여관을 겨우 찾아 숙박을 부탁한다. 하지만 여관 주인과 마을 사람들은 K를 의심한다. 그들의 의심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알 수 없다. 마을에 도착한 이후 엿새 동안 K는 이들의 의심을 뚫고 성에 갈 수도, 성에서 파견된 관리를 만날 수도 없다. 이방인인 K에 대한 경계와 감시는 마치 비밀협약처럼 마을 사람들에게 만연하고, 성에서는 간혹 심부름꾼을 통해 엉뚱한 메시지만 보내오는 게 전부다. 그러나 K는 좌절하지 않고 성에 가려고 하는데···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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