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자회사 그랜드코리아레저(GKL)가 운영하고 있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 게임기비품 구매에 대한 감사 청구안이 지난 11월 6일 국회에 제출됐다. 또한, 카지노 서베일런스 시스템 도입 과정에서 금품 로비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내사를 벌이고 있어 향후 GKL을 둘러싼 의혹이 어떻게 규명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베일런스 시스템은 출입 통제장치, 객장 내 폐쇄회로 카메라, 컴퓨터 네트워크 등으로 구성된 설비로 카지노 운영의 핵심 보안장비를 말한다.
검찰은 2005년 말부터 카지노 설비 관련 입찰 비리의혹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를 진행했지만 사행성 게임비리(바다이야기) 사건 등 대형 사건에 밀려 뒤로 미뤄져 왔다.
이번 사건은 2005년 12월 GKL 전직 내부자가 비리 의혹과 함께 관련 자료를 검찰과 일부 언론에 넘기면서 시작됐다. 당시 검찰과 언론을 접촉했던 GKL 팀장급 인사는 “내부 비리가 상당하다”면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반면, GKL측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함에 따라 <일요서울>은 일부 로비자금의 이동 경로를 포함, 진상을 총력 추적했다.
GKL은 지난 2006년 1월 서울 강남 코엑스센터 영업점 오픈을 시작으로 밀레니엄 힐튼 영업점, 부산 롯데 영업점 등을 잇따라 개장하고 카지노 ‘세븐럭’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2005년 230억원대 서베일런스 시스템 도입 과정에서, 입찰에 참여한 D사, S사 등 국내 굴지의 기업과 관련된 의혹이 불거지면서 촉발됐다. 입찰에서 2위를 차지한 컨소시엄 업체가 1위 업체를 제치고 낙찰되는가 하면 일부 임원에게 출처 불명의 로비자금이 전달되기도 했다.
만약 관련 기업으로 수사가 이어질 경우,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일부 카지노 전문가들은 보안설비 규모가 100억원 정도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입찰 금액이 과다 책정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입찰 금액 과다책정 ‘의혹’
검찰과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관계자들에 따르면 D사가 당시 GKL의 임원이었던 C 전이사에게 1억5,000만원을 전달하려다가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C 전이사는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는 과정에 내게 전달하려 했던 자금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듣게 됐다”면서 “검찰이 1억5,000만원에 대한 계좌추적을 벌인 결과, D사가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유성렬 검사도 “돈이 제공되기 전, 중간에 배달사고가 난 것이라 관련 업체에 대한 처벌이 쉽지 않다”면서 “또, 중간에 돈을 유용한 사람들도 처벌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굴지의 기업이 정당한 절차가 아니라, 로비설에 휘말렸다는 것만으로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에 앞서 C 전이사측은 자신에게 전달된 1억5,000만원 상당의 수표 중 일부를 복사(Copy)해 검찰 등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계좌추적 영장을 발부받아 수표의 출처까지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측은 “C씨가 조사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며 “여러 가지 방향으로 검토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검찰은 아직까지 GKL측 관계자를 소환한 바 없다. 그러나 검찰이 이 사안을 검토한지도 1년이 경과하고 있다. 통상 내부자의 진술이 수사 착수에 유효한 단서로 활용되고 있는 것과 달리 ‘근거’가 부족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
1억5,000만원의 자금은 호남출신 ‘마당발’ 사업가인 방 모씨를 통해 이동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돈의 이동 경로에는 강남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방씨 외에도 C 전이사와 친분이 두터운 미국 시민권자 안 모씨가 등장한다.
2005년 말, 일부 업체가 C 전이사에게 로비 목적으로 안씨를 국내로 불러들인 뒤, 강남 메리어트 호텔에 묵게 하고 ‘작업’(?)을 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방씨와 안씨를 거쳐 C 전이사에게 전달된 돈은 다시 되돌아가야만 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돈을 C 전이사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돈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검찰과 관련자들에 따르면, 9,000만원은 안씨가, 6,000만원은 방씨가 각각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시민권자인 안씨의 경우, 9,000만원 중 6,000만원을 W카지노에서 유용하고 남은 돈은 자신의 처남 계좌에 넣었다고 한다.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안씨는 최근 국내에 입국했다가, 검찰의 조사를 받고 출금이 해제됨에 따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안씨는 검찰에다 W카지노에서 쓴 돈의 영수증까지 제출했다.
D사 “자체 재조사 진행 중”
그러나 D사는 이와 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D사 관계자는 “지난 2월에도 언론 보도가 있어서 담당 부장과 차장 등을 통해 내부적으로 파악해 본 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최근에 또, 언론에서 보도가 됨에 따라 다시 자체적으로 재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D사는 자체 검사 결과가 12월 마지막 주에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D사는 최근 카지노 서베일런스 시스템 설치를 담당했던 BI팀을 사실상 해체하고 조직을 재편한 것으로 알려졌다.
GKL은 이와 같은 의혹제기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GKL 김홍래 팀장은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한테 근거를 제시하라고 하라”면서 “심사위원을 매수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또, “당시 관련 시스템에 대해 내가 전권을 쥐고 있었는데, 나를 통하지 않고 로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D사와 S사는 모두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심사위원 명단 공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서베일런스를 비롯, 2005년 하반기에 집중된 카지노 입찰 과정에선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8월 31일 현재 GKL 설립비용은 모두 9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규모가 엄청나다.
이에 따라 D사 뿐만 아나라, S사 등 카지노 입찰에 참여했던 업체들의 로비 의혹도 덩달아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GKL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S사의 경우, 서울 소재 N철학관을 통해 GKL 고위 임원진에 접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대기업 고위 임원 출신인 N철학관 소유자는 GKL 고위 관계자와 대학 동기다. 검찰도 “진술 과정에 무당에 관한 얘기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강남과 강북에서 각각 사무실을 운영하던 N철학관은 현재 일부 전화번호가 변경되는 등 사실상 접촉이 차단된 상태다. 단, 홈페이지는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 <일요서울>은 N철학관과 임원진의 관계에 대해 GKL 홍보팀에 문의를 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대형 사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정치권 유력 실세 연루 의혹도 있다.
카지노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여권 K, J 의원 등이 GKL 일부 임원과 자주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이들은 입찰이 한창 진행되던 2005년 하반기, GKL 본사와 가까운 남산 인근 한 이태리 식당 등에서 자주 접촉했다는 게 내부자의 주장이다.
일부 임원이 정치권 유력 인사와 자주 접촉했다는 의혹에 대해 GKL은 “그건 개인 프라이버시다. 왜 알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이번 사안에 외압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일부 참고인은 “당시 담당 검사가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면서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 사안을 최초 내사하던 박민식 전검사는 지난 9월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검찰, 수사 여부 조만간 결정할 듯
유성렬 검사는 “오래 전에 사안이 접수됐지만, 그동안 큰 사건에 밀려 있었다”면서 “형사적 증거자료가 부족하고 배임중재의 예비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추가 진행 여부를 판단 중에 있다”고 말했다.
GKL은 지난 2월 관련 의혹에 대한 경위 파악 및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팀장은 “모든 일이 100%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GKL 직원들은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미확인 사실을 기사화하기보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C 전이사는 “언론보도 이후 일부 유력 인사가 나를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러나 실명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해 카지노 사업 배후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한층 배가시켰다.
# “로비 의혹 사실 아니다”
GKL 공식 해명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주)는 일부 언론의 ‘카지노 관련 납품업체 선정과정 수십억대 금품로비 의혹, 검찰 그랜드코리아레저 수사’, ‘그랜드코리아레저 수십억대 로비’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보안시스템 납품에 대한 비리 로비 관련 기사는 지난 2월 일부 언론에 최초 보도된 바 있다. 그랜드코리아레저(주)는 당시 뉴스에 대한 경위 파악 및 본사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 검찰에 진위 여부를 파악해 달라고 수사 의뢰를 했다.
그러나 올해 초까지 이사로 근무했던 차모씨 외에 본사 임직원 누구도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 -중략-
본의 아니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죄하는 한편, 일부 언론 보도는 공기업으로서의 이미지 훼손 및 외국인 고객에 대한 신용추락 등 본사에 대해 막대한 피해를 야기시킨 것으로 향후 보도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요청하며 저희 회사 임직원 일동은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끝까지 법적 대응을 할 방침이다. <현>
김대현 suv1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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