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 김중웅 회장 선임 노사갈등
현대증권이 연초부터 노사갈등으로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연말 단행된 인사에서 현대그룹 측이 김중웅(67) 현대경제연구원 회장을 현대증권 회장으로 선임한 것에 대해 현대증권 노조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 노조는 이번 인사가 “낙하산 인사이고 대선을 앞둔 정치적 포석”이라며 인사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자본시장 통합법에 따른 사전조치일 뿐 별다른 의도는 없다며 노조 측의 넘겨짚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중웅 신임 현대증권 회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한국신용정보 사장, 청와대 비상경제대책자문위원회 위원, 대한상공회의소 조세금융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지난 2004년부터 현대그룹 계열의 현대경제연구원 회장을 지내는 등 말 그대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김 회장은 ‘세계화와 인본주의’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최근에는 앨빈 토플러의 ‘부(富)의 미래’를 번역 출간해 역자로서도 성가를 높였다.
그러나 현대증권 노조는 김회장의 경력이나 나이 그리고 현대증권 내부체제 붕괴 등의 이유를 들어 이번 인사를 반대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현대증권의 회장 자리가 생긴 것이 지난 2000년 3월 퇴임한 이익치 전회장 이후 7년만이라는 것. 현대증권은 이번 인사가 ‘회장’선임이 아닌 ‘직위위촉’임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증권노조 김은정 수석부위원장은 “현재 현대증권 체제에서는 회장직이 별 필요가 없다”면서 “이번 인사는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고 주장했다. 그는 “7년 동안이나 회장 없이 현대증권이 운영돼왔다”며 “회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 이유는 그룹 측에서 계열사의 경영권에 간섭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번 인사를 실시했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올해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라 현대증권이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 입장에서 현대그룹 측과 증권사 간에 마찰이 생기자 현대그룹이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해 김회장을 회장으로 밀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노조 측은 또한 “김회장의 올해 나이가 67살인데다 증권업무와 관련해 별다른 전문성이 없다”며 “회장을 선임해야 한다면 내부에서 승진시키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통합법과도 관련한 별다른 전문성도 없다는 것이 노조 측 설명.
이에 대해 현대증권 관계자는 “회장으로 김중웅 회장이 직위위촉된 것은 급변하는 증권시장 외부 변화에 대응해야 할 상황이 많기 때문에 김 회장의 경륜이나 네트워크가 필요했기 때문이지 절대 다른 의도는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직함만 회장일 뿐 김회장이 현대증권 내부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일은 전혀 없을 것”이라며 “대외적 역량강화가 주요 이유”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현대그룹 측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신년하례회 때문에 현대증권에 들렀으나 노조 측의 반발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
노조는 이번 주부터 김중웅 회장의 사무실이 차려질 부국증권 앞에서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대선위한 정치적 인사 주장도
그러나 현대증권 관계자의 해명과는 달리 현대증권 사측도 이번 인사를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설도 있다. 증권사 자체의 필요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룹 측의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 때문에 앞으로 현대증권 경영진이 그룹과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밖에 김중웅 회장 선임 이유가 올해 있을 대선과 관련이 있다는 설도 있다. 노조 측이나 증권가에서는 “김중웅 회장의 경력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정당이나 후보와 인연이 닿는 점이 눈에 띈다”며 “대선을 의식한 인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중웅 신임 회장은 증권가에서도 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현대관계자들도 넓은 인맥을 이용하기 위한 것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다만 무엇을 위한 인맥활용인지가 베일에 싸여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현대증권 관계자는 극구 부인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대선 전에 각 기업들이 빠르게 대선대비를 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밖에도 현대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부사장을 기존 1명에서 2명(신임 부사장 노치용)으로 늘려 지배구조를 강화했다.
#자본시장 통합법이란?
이르면 올해부터 시행될 자본시장통합법(가칭 ‘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은 자본시장 규제를 합리적으로 바꿔 증권사 등 금융회사의 대형화·전문화를 촉진하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금융투자상품에 포괄주의가 도입돼 다양한 금융상품이 등장하고 금융회사의 잘못에 따른 투자자들의 손해 배상도 한층 강화된다. 투자자들은 금융투자회사 한 곳에서 결제·송금·수시 입출금 등 은행 업무를 비롯해 증권,보험 등 다양한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박혁진 phj19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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