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2005년 일어났던 ‘형제의 난’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잊을만하면 다시금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계열사의 총수일가 이자대납에 대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두산그룹 측은 2005년에 있었던 일의 연장선상이라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증권시장에서는 두산산업개발의 주가가 연일 떨어지는 등 그 파급효과가 적지않게 나타나고 있다.
공정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두산산업개발은 2000년 1월부터 2005년 6월까지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등 두산그룹 총수일가 28명이 증자 참여를 위해 은행에서 빌린 293억원에 대한 이자 139억 2,900만원을 회사 돈으로 대신 갚아 줬다. 이들 총수 일가는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 등으로 당시 두산산업개발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298억원어치 주식을 인수했다. 박 부회장은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장남이다.
특히 총수일가 28명 중에 14명이 이자대납 기간과 비슷한 시기에 창업투자·컨설팅업체인 네오플럭스와 수입차 딜러인 두산모터스를 설립하는 데 거액의 자금을 투자한 점을 감안할 때 두산산업개발로부터 부당 취득한 경제적 이익이 다른 계열사로 이전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남의 돈을 빌려서 다른 곳에 투자해 이익을 챙기면서도 빌린데 대한 대가는 다른 곳에서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두산산업개발은 지난 2003년 계열사 네오플럭스가 발행한 기업어음 60억원을 정상할인율보다 1.8%포인트 낮은 연 7.7%로 매입, 결과적으로 2,800만원을 부당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산그룹은 지난 2005년 7월 박용호 전명예회장이 박용성,박용만 등 동생들이 위장계열사를 동원한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를 폭로하고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수사를 받는 등 형제의 난을 겪었다. 이번에 공정위에서 벌금을 부과한 이자대납 문제도 당시에 함께 불거져 나온 문제들이다.
신종수법 ‘이자대납’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편법을 사용해 경영권을 승계하면 이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은 큰 부담이 됐다. 따라서 재벌들은 이같은 의혹의 눈초리를 피하면서 부(富 )를 승계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해왔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부당지원행위다.
가장 일반화된 부당지원행위는 총수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사나 관계사에 그룹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밀어주기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밀어주기가 문제가 된다기보다는 오가는 돈의 액수가 일반적 거래액수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두산 계열사의 부당지원행위는 그동안 적발됐던 것들과는 차이가 있다. 계열사 증자시에 은행돈을 이용해 주식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재산을 불려나가면서도 이자는 회사 돈으로 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자대납’이 부당지원행위의 ‘신종수법’으로 떠오른 셈이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시장조사팀의 박도하 팀장은 “이자대납이란 부당지원행위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법”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총수일가 재산늘리기 방법 가지가지
재벌그룹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 집중되자 총수일가가 편법적으로 재산을 늘려가는 방법도 늘어나고 있다. 다음은 유형별로 본 편법행위.
◇ 회사기회의 편취
회사기회의 편취란 계열사의 기존 사업부문을 분할하거나 또는 이와 밀접한 사업연관성(line of business)이 있는 회사(주로 비상장 회사)를 신설한 후, 회사설립 당시 혹은 일정기간 후에 총수일가가 지분을 취득하는 방법이다. 이는 경영진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지배주주가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를 봉쇄하고 이를 자신이 대신 수행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비스가 대표적 사례이며 SK그룹의 SK C&C, 신세계그룹의 광주신세계와 조선호텔베이커리, 효성그룹의 효성건설, STX그룹의 STX건설도 이와 같은 경우다.
◇ 지원성 거래(부당지원행위)
지원성 거래는 회사기회의 편취와는 달리 기존 계열사와 사업연관성이 크게 밀접하지 않은 회사를 설립한 후, 회사의 설립 당시 또는 일정기간 후에 총수일가가 지분을 취득한 후 계열사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는 경우다. 이 회사는 매출의 100%를 거의 관계사거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계열사의 집중적인 지원이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계열사의 지원성 거래로 인하여 지배주주는 안정된 부를 축적하게 된다. 현대차그룹의 엠코, 대한전선의 삼양금속, 그 외 각 그룹이 대부분 계열사로 두고 있는 광고회사, IT회사, 건물관리회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 부당주식거래
부당한 주식거래는 계열사가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지배주주에게 매도하거나 지배주주의 보유 주식을 고가로 매입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한 사업관련성이 없지만 총수일가가 출자하고 있는 회사에 출자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도 여기에 포함된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회사법의 원리로 볼 때 이런 거래는 회사와 지배주주간에 이해상충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사가 부당한 거래를 통해 회사에는 손해를 끼치면서 지배주주에게 이익을 얻도록 한 것이므로 전형적인 충실의무(duty of loyalty) 위반 사례가 된다”고 지적했다. 삼성그룹의 삼성에버랜드ㆍ삼성SDSㆍe삼성, LG그룹의 LG석유화학, 두산그룹의 (주)두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혁진 phj1977@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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