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페이스오프’ 사건
범행을 저지르고 성형수술을 통해 얼굴을 바꾼 한국판 ‘페이스오프’ 사건이 발생했다. 더구나 사건의 주인공이 뜻밖에도 30대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더하고 있다. 이 여성은 3억원대 사기 행각을 벌인 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성형수술까지 했으나 범행 7개월만에 결국 경찰에 붙잡혔다.
이 여성이 이런 기상천외한 범행을 계획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기사건은 용의자가 우연히 생부를 만나게 되어 호적이 두 개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계획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여성은 얼굴을 속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코 속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문. 그것은 결코 눈에 띄진 않지만 천형처럼 그녀를 휘감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범인은 문모(34·여)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 번의 사별과 한 번의 이혼을 겪은 문씨는 이혼으로 받은 유산으로 대형마트를 운영, 부유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그러나 문씨가 운영하던 대형마트는 2004년부터 상황이 조금씩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마트의 운영이 점점 어려워졌던 2005년 말, 문씨는 존재조차 희미했던 생부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문씨는 생부를 통해 자신에게 호적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문씨의 대형마트는 부도의 위기에 이를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문씨가 사건을 계획하게 된 것은 생부를 만나서 자신의 이중호적에 대해 알게 된 시점”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문씨는 출생신고 전에 부모가 이혼을 하는 아픔을 겪었다. 결국 문씨는 생모가 키우게 되었다. 생모는 자연스레 문씨를 자기 앞으로 호적신고를 했다.
또 문씨의 생부도 마찬가지로 이혼한 부인이 호적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 문씨를 자신의 호적에 넣는다. 문씨는 생부를 비롯한 자신의 이중호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어머니와 계부의 밑에서 자란 것이다.
2006년 2월 문씨의 대형마트는 최종부도처리되었다. 빚에 시달리던 문씨는 두 개의 호적을 이용한 사기를 계획했다. 문씨의 계획은 치밀했고 주도면밀했다.
문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이모씨의 넓은 인맥을 이용해서 법무사 박모(50·남)씨를 알게 되었다. 지난 해 10월 경, 박씨가 돈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문씨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경찰 관계자는 “문씨는 박씨에게 문중 땅을 사려고 하는데 통장 잔고 증명서가 필요하다며 3억원을 자신의 계좌로 입금시켜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하루 뒤 원금과 함께 100만원의 이자까지 주겠다는 미끼성 발언도 잊지 않았다”며 문씨의 화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별한 수고도 없이 100만원을 만질 수 있다는 문씨의 말을 믿은 박씨는 곧바로 문씨가 가르쳐준 은행 계좌로 3억 원을 송금했다.
과거의 얼굴을 버려라
문씨는 당일 계좌를 확인하고 지난해 10월 말 상경해서 압구정동의 모 성형외과를 찾았다. 눈, 코, 턱 등 안면의 대부분을 성형수술해서 원래의 성을 버리고 생부의 호적에 올려진 다른 성으로 새 삶을 살고자 했던 문씨. 3,000만원을 들여 수술한 새로운 얼굴을 가진 문씨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포항이었다.
경찰은 “문씨가 부도난 마트의 직원과 연인 관계에 있었다. 그 직원은 포항토박이는 아니지만 가족들이 모두 포항에 살고 있었다” 며 문씨가 포항으로 간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포항으로 내려와 생부의 성으로 1억 9,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계약한 문씨는 전직원과 동거를 하면서 고가의 수입가구와 가전제품 등을 사들이는 등 사치스런 생활을 한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지문은 성형불가
이와 함께 전남청광역수사대는 피해자 박씨의 신고를 받고 문씨를 추적했다.
그러나 주거지가 불분명한 문씨를 쫓는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던 지난 1월 6일 용의자 문씨가 포항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경찰은 문씨가 전세계약을 한 포항의 D 아파트를 찾아내 문씨 검거작전에 나섰다. 경찰은 문씨의 실물 몽타주를 들고 아파트단지 일대를 오전부터 탐문했지만 문씨를 찾아내는데 실패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에 따르면 “문씨의 얼굴이 사진과 완연히 달라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며 당시의 황당한 상황을 전했다. 1차 검거에 실패한 경찰은 결국 아파트 주민카드의 지문을 조회하던 중 문씨가 사는 동, 호수를 파악하게 되었다. 얼굴은 속여도 지문은 속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문씨는 16일 오후 6시경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검거되었다. 경찰에 따르면 검거당시 성형 수술의 부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나온 문씨는 “피해자 박씨를 소개해 준 사람의 이름을 대서 그를 아느냐고 물어보자 문씨의 눈빛이 흔들렸다. 표정변화에 범인이라는 느낌이 와서 죄를 추궁하자 이내 고개를 수그리며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밖에 경찰은 “조금만 늦었다면 호적도 바꾸고 얼굴마저 바꾼 후 제 2의 삶을 시작한 문씨를 붙잡기가 어려워졌을 것”이라며 자칫 잘못했으면 문씨를 놓칠 뻔 했던 당시상황을 전했다.
한국판 페이스오프사건으로 주목받은 이번 문씨 사건을 담당한 한 경찰은 “얼굴은 고쳐도 지문은 절대 고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배수호 4477b@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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