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의 개헌…헌법 논의과정 ‘뒷이야기’ ①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청와대가 지난달 26일 개헌안을 발의함에 따라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에서는 지난달 27일부터 개헌 논의가 재개됐다. 이에 앞서 33명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2월 13일부터 지난 13일까지 약 한 달간 총강·기본권 분과, 정부형태 분과, 지방분권·국민주권 분과 등 3개 분과로 나뉘어 개헌 자문안 초안을 만들었다. 신념과 신념이 부딪쳤던 토론 현장을 정태호 정부형태 분과 위원장에게 들어본다.
- 정태호 “총리추천제 위해선 국회해산권부터 부여돼야”
- “한 달은 너무 짧았다, 하루 3~4시간밖에 못 잤다”
헌법·정치·경제학자 등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분과별 회의와 세 차례 전체 회의 끝에 ‘대통령 개헌안’ 초안을 내놨다. 일요서울은 정태호 정부형태분과 위원장과 인터뷰를 통해 특위 구성부터 개헌안 제출까지 치열했던 한 달을 들여다봤다. 다음은 정태호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특위는 어떻게 합류하는 것인가.
▲ 국회특위자문위원회 구성은 지난해부터 여러 경로로 이뤄졌다. 특히 이번에 국회 측에서 예상한 인원보다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에서 지원한 분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국회의원들이 지원자들의 면면을 보고 지명을 하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국회자문특위원을 맡았던 바 있는데 이를 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명했다.
- 개헌안은 한 달 내에 어떻게 만들어졌나.
▲ 먼저 국민개헌인 만큼 시민사회, 국회에서 논의된 내용 등을 전부 취합해 기초자료를 만들었다. 논의 출발점이 된 기초자료를 3개 분과별로 토론에 부쳐 안을 만들었다. 한 달은 너무 짧았다고 생각한다. 논의가 길어진 날은 하루에 3~4시간밖에 못 잤다.
특히 국가조직 쪽은 견해 대립이 많아 관철하기 힘들었다. 대통령 측 입장도 있었고 각자의 신념이나 자신이 속한 시민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체성은 대통령의 자문기관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를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문제를 두고는 대립이 심했다. 3안, 4안 등의 복수 안이 만들어진 이유다.
- 어떤 분야에서 갑론을박이 심했나.
▲ 사법부, 감사원 등 인사권 관련 문제다. 각 기관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대해 충돌이 심했다. 예를 들면 감사원이나 법원, 헌법재판소를 독립시켜야 하지 않느냐. 그렇지만 민주적 통제와 중립성 및 독립성을 균형 있게 실현시키는 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만약 입법자에게 맡기면 단순 다수결에 맡길 가능성이 크다. 다수결은 합리성을 보지 못한다. 특히 여소야대 경우 국회가 정치적 다수파를 쉽게 장악하지 못해 제대로 된 통제를 하기도 어렵다.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다.
일각에선 대통령의 인사권을 약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렇다면 ‘국회에 다 줄 것이냐’가 화두였다. 문제는 국민의 국회 불신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도 분열돼 있어 어떻게 합리적으로 기관 구성 방법을 결정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 18세 참정권이 최근 전국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 원래 자문위 안에서는 없었다. 국회에는 교육감 선거 등 16세 이상의 학생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법안은 이미 제출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도 당초 청와대가 발표한 16~17세 국민의 교육감 선거 선거권 안이 어떻게 될지 의문을 품었다.
청와대 비서관이 “법률로 18세 미만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이 아니다”라고 기자들에게 답변한 바 있는데 이 언급에 대해선 논란이 인 바 있다. 이후 청와대는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그 부분을 수정했다.
청와대가 졸속으로 헌법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워낙 많은 조항에 손을 대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나름대로 발의를 하기 전 3일에 걸쳐 개헌안을 발표했다. 그것이 제한된 기간 내에 검증을 받는 방법이기도 했다.
- 선거권 비례성 원칙이 포함됐다.
▲ 위원들은 선거권 비례성 원칙을 넣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이 있었다. 다만 표현 정도에 대한 의견 대립은 있었다. 지금보다 비례대표 뽑는 인원을 무조건 늘려야 된다는 의미로 읽힐 경우엔 야당 쪽에서 반대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사실 특위 위원들은 국회의원 수를 늘리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국민 대비 국회의원 수가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이익이 굉장히 분화돼 있다.
예를 들면 같은 의료계 쪽에서도 대학근무 레지던트, 동네 병원 전문의 등의 이해관계는 모두 다르다. 얼핏 보기엔 한목소리처럼 들려도 정확히 들여다보면 이익이 분화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회의원 수도 많을수록 분화돼 있는 이익 상황이 입법과정에 정확히 반영될 가능성이 커진다.
심지어 현재 국회 운영은 총회 중심이 아닌 위원회 중심이다. 즉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를 취하고 있는데 국회의원 300여 명을 상임위로 나눠보면 얼마 안 된다. 모든 안건을 심의하고 걸러내는 상임위 규모가 커야 매수 가능성도 떨어지고 균형 있는 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특위 내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헌법에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을 1대 1 또는 2대 1로 명시하라’, ‘지역구 의석을 극소수밖에 줄이지 못한다면 결국 의원 수를 늘릴 수밖에 없다’ 등이다.
하지만 국민의 국회 불신으로 결국 비례성 강화를 안에 부쳤다. 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부정적인 야당이 이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지 않도록 하는 한편 국민 의사가 의석 배분에 정확히 반영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 보자 해서 이런 조문이 나왔다.
-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은 중임제였는데 연임제로 선택한 이유는.
▲ 문 대통령이 중임제를 특정해서 공약으로 말한 것 같진 않다. 우리는 4년 연임제까지 포함한 의미로 해석했다. 청와대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긴 정책주기를 고려했다. 큰 프로젝트의 경우 정책을 입안해서 집행하는 데 10~20년 걸릴 수 있다. 민주화될수록 점점 시간은 길어질 것이다. 과거의 정부처럼 압력으로 국민을 누르는 것이 아닌 ‘설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정의 연속성, 정책주기가 길어지고 있는 현실 등을 고려하면 연임제가 더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중임제를 선택할 경우 문 대통령이 다음 선거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다음 선거에서 나오려고 한다는 정치적 오해 소지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 국무총리 선출 권한 관련 내용은 현행대로 유지됐다.
▲ 그렇다. 다만 헌법 제86조 2항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는 조항 중 ‘대통령의 명을 받아’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이는 국무총리의 대통령에 대한 종속성 등을 완화하기 위함이다.
개인적으로 총리제는 대통령제와 잘 어울리지 않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제헌헌법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내각제로 만들어졌다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반발하는 바람에 대통령제와 공무원제가 같이 가는 정부형태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총리에게 국무위원 제청권까지 부여됐다.
실제 내부에서도 총리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꽤 있었다. 현재 총리제도는 우리나라 헌정사회에서 대통령 견제가 아닌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책임질 만한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총리를 교체한다. 대통령에게 날아가는 비난, 책임 추궁도 막아준다. 방탄 총리인 셈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입법부, 사법부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존재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 총리추천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총리추전제는 소수안으로 올라가긴 했다. 일부 위원과 국회 일각에서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채택되긴 어렵다고 본다. 만약 대통령이 국회가 추천한 총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국회와의 관계는 더 긴장 국면으로 빠질 위험성이 높다. 실제 대통령이 거부하지 못하는 추천제는 여소야대 경우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유사내각제로 십중팔구 변질될 수밖에 없다. 총리가 제청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하려면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부여돼야 한다. 그래야 견제가 이뤄진다. 그런데 국회해산권은 안 주면서 총리추천제를 도입하자는 것은 대통령을 완전히 무력화시키자는 말이다.
나는 총리제도를 없애자는 입장이다. 그래야 대통령이 연정 상황에서 직접 자리를 나눌 수 있다. 배분 문제는 대통령이 직접 야당 실권자와 협상을 통해 정할 문제지 총리에게 제청받을 것은 아니다.
우리는 너무 총리제청권에 실질적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이것은 단지 ‘권유’다. 총리는 국민에 의해 뽑히지도 않았는데 실질적으로 정부를 조각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이론 관점이나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에서 연정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양당제인 미국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연정을 한다면 야당이 없어진다.
이 때문에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는 간선방식을 취하지만 질서 있으며 결선투표가 없다는 선거제도 배경이 깔려 있다.
브라질의 경우 총리가 없다. 의원선거에서도 전면적으로 비례대표 선거를 한다. 그래서 정당이 많다. 어차피 어떤 당도 의회에 과반을 점하기 어렵다.
대통령제지만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고 가려면 대통령이 배출한 정당이 다른 당과 연정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에서도 얼마든지 연정이 가능하다.
선거제도와 그 나라의 정당제도가 어떻게 형성돼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다만 연정 협상을 할 때 제청권을 갖고 있는 국무총리는 있게 되면 연정협상에서 방해요소일 뿐이다. 이 같은 이유로 나는 총리 제도를 없애는 것이 낫다라는 주장에 손을 들었다.
하지만 총리 제도를 없애면 대통령 권한을 집중시킨다는 비판을 살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결국 관철은 안 됐다.
- 정치권 혹은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
▲ 우리는 헌법 디자인을 하기 어려운 정치 문화를 갖고 있다. 일단 민주주의 뿌리가 박약한 데다 권위주의적인 정부에게서 후퇴를 경험했다. 이번 개헌안은 대통령 권한을 줄여야 된다는 요구에 정당성을 뒷받침하려 했다는 점을 국민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한편에선 전면적으로 정부 형태를 뜯어고쳐야 된다는 무책임한 주장이 있었다.
우리는 대통령제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왔다. 의원내각제 경험의 역사는 2공화국 때 잠시였고 나머지는 대통령중심제 역사였다.
야당은 의원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로 지칭되는 유사내각제 등을 꿈꾼다. 이는 국민이 원하지 않는 꿈이다.
대통령제를 고쳐 쓰는 수밖에 없다. 국민은 대통령제의 허와 실을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 대통령제에서 발전도 많이 해 왔다.
따라서 함부로 정부형태를 교체하려는 위험한 실험을 해선 안 된다. 오히려 약점을 보완하거나 부분적인 수정이 이뤄지는 개헌이 돼야한다. 실제 정부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꿔서 성공한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인사권 부분을 통제하는 방식은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은 권력기관들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검찰개혁, 검경수사권조정 등에 힘을 써야 한다. 대통령 권한의 합리화에 가장 중요한 일보다.
우리가 대통령제를 포기하고 내각제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제왕적 수상, 즉 인사권을 장악한 세력이 결국 이 기관을 이용해서 총화 권력을 또 만들어 낼 것이다.
정치권은 권력기관 정상화 작업에 동참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헌법 개정 못지않게 중요한 점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권가림 기자 kwonseou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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