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부 ‘히트앤드런 방지법’ 전격 분석
미혼부 ‘히트앤드런 방지법’ 전격 분석
  • 강민정 기자
  • 입력 2018-03-30 19:34
  • 승인 2018.03.30 19:34
  • 호수 1248
  • 2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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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나 혼자 만드나?…아빠에게도 책임 묻는다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미혼모들의 육아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히트앤드런(Hit and Run) 방지법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랐다. ‘치고 빠지기’ 방지법 정도로 직역할 수 있겠다. 말 그대로 자식을 낳았지만 양육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비양육자들을 관리, 처벌하기 위한 법안이다. 히트앤드런 방지법 청원은 우리 사회가 미혼모를 위한 사회적 제도가 미비하며 조속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환기했다.

한 달 사이 청원 수 21만 명 돌파한 미혼모 구제 법안
비양육자에게 양육비 강력 징수할 방법 찾자는 취지


지난달 23일 “미혼모를 위한 히트앤드런 방지법을 만들어주세요. #GIRLS_CAN_DO_ANYTHING”이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지난 2월 23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진행된 이 청원에는 총 21만 7054명이 참여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청원수가 20만 명을 돌파할 경우 청와대 측은 이와 관련된 입장을 밝혀야만 한다. 청원이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이루어진 점을 고려한다면 폭발적인 반응이다.

청원 내용도 더욱 구체적이다. 먼저 오른 유사한 내용의 청원이 “미혼모 아이아빠를 꼭 찾아서 같이 책임질 수 있게 해달라”는 정도에 그쳤다면 후자는 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 및 심층 면접의 결과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미혼부가 지급하는 자녀 양육비 부족과 자녀 양육에 대한 무관심은 미혼모를 경제적으로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러한 이유로 덴마크에서 실시하는 ‘히트앤드런 방지법’을 내세우려고 한다”고 청원 취지를 전했다.

 
부정적 인식 벗어나야
여건 된다면 자립 가능해


 
미혼가정을 향한 사회의 눈초리도 그들을 곤란에 빠뜨린다. 특히 미혼모의 경우 선입견으로 인해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의 경우 임신하게 되면 육체적·심리적 변화가 생겨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데 가족들에게 이해 받는 것조차 어려워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미혼모가 갈 수 있는 쉼터는 마땅치 않다.

미혼모 당사자들로 이루어진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김도경 대표는 “2005~6년에 당장 오갈 데가 없어 미혼모 시설을 가면 아이를 입양 보내겠다는 서류에 사인을 해야만 (그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도) 나라에서 운영하는 쉼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서류 접수 등을 거쳐야 해서 당장 들어갈 수도 없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공중 화장실을 전전하는 미혼모도 있다”고 실상을 전했다.

주거 문제와 함께 많은 미혼모들이 경제적 곤란을 어려움으로 꼽는다. 부정적 시선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출산 후에도 양육을 돕는 이가 없어 경력 단절이 될 소지가 크다. 양육비가 필요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오영나 대표는 “(사람들이) 10대 미혼모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정식 통계 자료를 보면 30대 미혼모가 제일 많다. 조금만 지원 해주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분들이 많단 얘기”라고 말했다.

김 대표 역시 “미혼모 중에는 전문직종에 종사하던 여성도 많다”고 의견을 더했다.
이를 종합하면 미혼모들은 자립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이들을 향한 사회적 인식이 그것을 가로막는다는 얘기다.

 
히트앤드런 방지법
사실상 단독법은 아냐

 
청원에서 밝힌 덴마크의 히트앤드런 방지법의 골자는 이렇다. 덴마크에서는 미혼모에게 비양육자가 매달 약 60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를 보내지 않을 경우 미혼모가 시(市)에 보고하면 시에서 미혼모에게 양육비 명목의 돈을 지급한다.

이후 국가가 비양육자의 소득에서 세금으로 그 금액을 원천징수하는 것이다. 비양육자가 외국으로 도피할 경우 귀국 시 바로 환수조치가 이뤄진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청원을 본 뒤 조사해 보니 덴마크에 ‘히트앤드런’이라는 단독법은 없다”고 전했다.

지난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주최한 ‘출범 3년 기념 심포지엄 ‘양육비이행’, 3년 성과와 실효성 제고 방안’에서 배포한 자료집에도 동일한 내용이 담겨있다.

자료집에 따르면 덴마크의 히트앤드런 방지법은 단독법이 아닌 ▲친권법 ▲아동법 ▲아동양육비법 ▲사회서비스에 관한 통합법 ▲소득세 및 기초와 광역지자체의 개인에 대한 부동산평가액세 등에 관한 통합법(원천과세법으로 약칭)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파악된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미혼모 양육비 관련 법안을 묻자 여가부 측은 “여가부에는 한부모가족 지원법과 양육비 이행 합법 및 지원 두 가지 법안이 있다. 그리고 법무부 쪽에 가정소송 등 민법이, 보건복지부에 국민기초생활법 등 양육비와 관련된 여러 법안이 있다”고 밝혔다.

 
대지급-강력 징수
연결 시스템 확보돼야


 
현재 외국의 경우 보통 국가가 직접 양육비를 징수해 양육자에게 이전한다.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이 대표적이다. 앞선 국가들은 비양육자에게 위치추적·재산 등 조사·제재조치 절차 등을 거쳐 양육비를 받아낸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세체납 징수 수준으로 양육비 이행 운영이 이뤄지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아동 양육비 회수 확보를 위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미혼가정 양육비 문제를 보편적 복지로 풀어간다. 아이를 낳을 경우 비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징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미혼가정에 특화된 법안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경우 기초생계급여를 받거나, 일정 소득 이하인 한부모가정에 월 13만 원씩 양육비를 지원해 주는 방식이다.

이처럼 미혼가정 양육비 지급을 위한 제도로는 보편적 복지와 강력 징수라는 두 가지 흐름이 일반적이지만 덴마크의 히트앤드런 방지법은 이와 약간 다른 성질을 띤다. 국가가 먼저 미혼가정에 양육비를 지원하고 후에 비양육자에게 징수하는 시스템인데 이는 대지급과 강력 징수가 연결된 형태다.

히트앤드런 방지법이 우리나라에서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오영나 대표는 “(히트앤드런 방지법은) 대지급과 강력 징수가 연결이 안 되면 시행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대지급은 (양육비를) 일단 주어야 하니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 예산이 지출됐는데 (이를) 거둬들이지 못 하면 적자가 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가부 역시 “(히트앤드런 방지법이) 중장기적으로는 (실현)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내가 낸 세금으로 사회복지서비스를 하겠다는 국민 수용이 필요하다”고 전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양육비 이행 합법 및 지원도 2015년도에 처음 제정됐다. 어떻게 보면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말했다.

강민정 기자 km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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