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2020년까지 차례로 폐쇄

통합판매대, 65세 이상 수급자‧독립유공자 가족 등만 사업권 있어
“앞뒤 안 맞는 행정” vs “이젠 없어져도 된다” vs “시민 안전 중요”
지난 29일 오후 3시경 서울의 한 지하철 승강장 매점. 승강장에는 시민들로 붐볐지만 매점을 찾는 이는 거의 없다. 매점 내에 앉아 있는 노인은 멍하니 승강장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노인은 매점 계약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운영 대리인(이하 운영자) A씨. 그에게 하루 평균 매출을 물었다. A씨는 “10만 원 정도다. 잘되는 날은 20만 원 정도. 과자, 신문 등 여기(매점 상품) 보면 대부분이 1000원짜리들인데 100명이 왔다 가야(구매해야) 하루 매출이 10만 원 정도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겼다. 매점이 하나 더 보였다. 승강장 입‧출구 쪽에 위치해 있어 유동인구는 많았지만 매점을 이용하는 시민은 없었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B씨는 상품을 정리하고 먼지만 털어낼 뿐이었다. B씨는 “예전에야 신문 팔아 돈 벌었다는 말이 나왔지…다른 품목도 안 팔리는 건 마찬가지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물건 판매뿐 아니라 승강장 안내소 역할까지 맡아온 매점들이 하나둘 모습을 감출 예정이다. 서울교통공사는 2020년까지 지하철 승강장 내 매점과 자판기를 없애기로 하는 내용의 ‘승객 공간과 동선 확보를 위한 승강장 비움과 통합’ 계획을 지난달 서울시의회에 보고했다고 지난 29일 밝혔다.
매점으로 불리는 ‘통합판매대’는 3평 남짓(10㎡) 공간이다. 현재 서울 지하철 1~8호선에 설치된 통합판매대는 151대다. 공사는 올해 계약이 만료되거나 비어 있는 30대 중 25대를 연말까지 폐쇄하고 추가 사업자를 모집하지 않는 방식으로 줄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내년 2월 5대, 9월 76대, 2020년 8월 40대가 차례로 사라진다.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통합판매대를) 철거뿐만 아니라 대합실에 있는 여유 공간으로 이전한다는 내용이다. (추가 사업자 모집은)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통합판매대가 일반 노점상과 달리 사회적 소외 계층에게 사업권이 있는 ‘조례대상시설물’이라는 점이다. ‘서울시 공공시설 내의 매점 및 식음료용 자동판매기 설치 계약에 관한 조례’에 따라 장애인, 65세 이상 수급자, 한부모 가족, 독립유공자 가족 등이 임차해 설치할 수 있다.
안 그래도 매출이 줄어 허덕이는 가운데 공사 측의 통합판매대 정리 조치가 언급돼 일부 종사자들은 강한 우려를 표하는 상황. 일부 종사자들 입에서는 “앞뒤가 안 맞는 행정 조치”라는 말까지 나왔다.
일당 6만 원을 받으며 하루 9시간씩 교대로 통합판매대를 관리하고 있다는 C씨는 “(사업자가) 경증 장애인이 아니라 중증 장애인인 경우가 많다”면서 “집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일당을 줘가며 겨우 연명해 나가는데 이것마저 없으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는 얘기냐”고 반문했다.
이어 “내일모레면 70(세)인 우리 같은 사람을 써주는 데가 어디 있느냐”면서 “당뇨 때문에 약을 먹고 있는데 이 일이 없어지면 당장 우리도 살기 힘들어진다”고 호소했다. 그나마 올린 수입을 전부 가져가는 경우도 많지 않다고 한다.
C씨의 말대로 장애 등급이 1~2등급이면 공사 승인을 받아 대리인에게 운영을 위탁할 수 있다. 상당수가 사업권을 따내고 운영은 다른 사람에게 일당을 주면서 맡기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1~2등급 중증장애인은 직접 운영하는 게 불가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운영자들이 따로 있고 판매 직원을 고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공사 측이 밝힌 통합판매대 정리 조치 이유로는 ‘비상시 승객 대피 동선 확보’와 ‘통행 불편 해소’ 등이다. 하지만 생계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많은 통합판매대 종사자들의 의견이다.
운영자 D씨는 “아무 대책도 없이 없애버린다고 하니까 기가 막히는 일”이라며 “30만 원이 아니라도 어느 정도 수입이 생겨야 장애인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공사 측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공사 관계자는 “기본 원칙은 (종사자와의) 협의 하에 (승강장에서) 대합실로 이전한다는 것이다. 이전하는 것도 공사에서 부담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합실 쪽에 머무르는 승객이 적어 매출이 줄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는 “매출 부분은 (공사가) 특별하게 예상을 해봤다든지 계산을 해봤다든지 그런 부분은 아직 없다”면서 “(다만)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사안은 절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매출이 저조해 폐점하려는 게 아닌지 물었더니 공사 관계자는 “그건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 밖에 사업자들의 생계가 어렵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운영자에게 임대료를 받는 사업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운영이) 잘되는 곳은 사업자가 200~300만 원씩 운영자에게 임대료를 받기도 한다. 못 받는 곳은 50만 원 정도”라면서 “예전에는 임대료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했다.
B씨도 “(사업자가) 150만 원의 임대료를 받는다. A씨 쪽은 100만 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르바이트가 2교대인데 사장(운영자)이 가져가는 돈은 얼마 안 될 것이다. 사업자는 많이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들은 공사 측의 조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A씨와 B씨는 “승객들이 불편해 하니까 이제는 없애도 된다”고 입을 모았다.
B씨는 “직장을 잃는 점에서는 (이번 조치가) 별로지만 가끔 벌어지는 위험한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된다”면서 “한 번은 껌 판매대를 통합판매대 앞쪽에 뒀었는데 출근길에 인파가 몰려서 옷이 찢기고 판매대가 넘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른 운영자 E씨는 “통합판매대는 입‧출구 쪽이나 중앙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입‧출구 쪽이라면 화재 발생 시 많은 인파가 몰려 병목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또 중앙에 위치해도 양방향을 가로막고 있는 판매대도 있다”면서 “공사 측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밝혔다.
여러 엇갈린 의견이 나오는 만큼 공사와 종사자 간의 적절한 협의‧조율을 통한 결과가 나와야할 형국이다.
한편 공사는 통합판매대 151대 외에 마찬가지로 조례대상시설물인 음료수자판기 404대, 5~8호선 스낵자판기 28대(1~4호선 184대는 민간업체 소유) 등도 없애 나갈 방침이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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