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인수합병)는 기업을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한다. 많은 기업들이 M&A를 통해 몸집을 키우려고 시도하지만 성공한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나 LG카드를 인수한 신한금융지주 등은 일단 건설과 카드업계 1위 업체를 인수하면서 단번에 재계 순위에서도 몇 계단을 뛰어올랐으나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올해도 시장에는 어김없이 대형매물이 나와 있다. 현대건설,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 등 IMF이후 정부나 은행의 자금을 투입한 기업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현대건설은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과 정몽준 회장의 현대중공업이 시숙관계 기업이라는 것과 맞물려 미묘한 양상을 띠고 있다.
재계의 판도를 뒤흔들 대형 M&A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취재했다.
최대 매물 중 하나인 현대건설은 일단 범현대가(家)가 인수후보 1순위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후보로 꼽히고 있는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과 정몽준 회장의 현대중공업이 묘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두 그룹 모두 현대건설이 현대가에서 가지는 상징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현대그룹은 확고한 인수의사를 보이고 있는 반면에 현대중공업은 관심없다는 반응이다. 인수의사와는 상관없이 두 기업 모두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그룹은 현재 현정은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현대건설 부실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신한은행으로부터 소송이 걸린 상태다. 만약 부실책임이 있는 걸로 판결이 내려진다면 인수자격 자체가 박탈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반드시 인수하겠다는 것이 그룹 경영진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매각주관사로 결정되지 않았고 채권단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는 만큼, 매각절차가 나오면 구체적인 대응방향을 결정할 것”이라며 “인수자금 등은 충분히 확보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송문제에 대해서는 “채권단의 입장일 뿐 우리와는 무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인수후보로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추측이라고 못박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인수를 검토한 바가 없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라며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추측성 기사일 뿐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의 이러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재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의 기업구조, 현대건설 임원영입 사례 , 현대상선 경영권을 둘러싼 지분 경쟁에서 이미 현대중공업의 인수의사가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현대그룹의 매출 중 70%를 차지하는 현대상선의 지분을 꾸준히 늘려왔다. 현대건설은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을 인수한다면 ‘현대가’의 적통성을 잇는 것뿐만이 아니라 현대그룹과의 현대상선 지분차도 1% 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게 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언론에서 현대건설 인수설을 시숙간의 갈등으로 몰
아가는 것이 부담스럽다”면서도 “현대건설 매각이 내년으로 넘어가지 않겠냐”며 매각절차를 주시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실제로 이같은 두 기업의 입장차외에도 매각주관사 결정 등을 놓고 산업은행, 신한은행 등 채권단 간의 입장차가 분명해 매각이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재계순위 뒤흔들 가능성
이외에도 자산가치가 6~7조원으로 추정되는 대우조선해양도 매각을 앞두고 있다. 특히 대우조선은 3월 초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김창록 총재가 “빨리 팔려고 한다”고 밝혀 매각작업에 가속이 붙었다.현재까지 대우조선해양 인수 의사를 밝힌 기업은 GS와 포스코 등이며 재계에서는 해외자본도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산규모 15조원의 하이닉스도 어디로 갈 것인지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 이 정도 금액을 선뜻 투입할 부담을 감내할 기업이 많지 않으며 최근 일어난 현대차그룹의 기술유출로 해외매각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외에도 시장에서는 삼성홈플러스를 현대백화점이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홈플러스 측은 인수설을 부인하고 있으나 유통라이벌인 롯데와 신세계가 대형마트를 통해 매출을 늘려가고 있는 반면 현대백화점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어 인수설에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형 M&A효과는?
M&A는 오히려 자금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부채만 늘어날 뿐 기대만큼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무리하게 M&A를 시도하다 모기업마저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휴대폰 제조업체 팬택은 과거 현대걸리버를 인수하면서 성공적으로 휴대폰 시장에 진입했으나 작년 스카이를 인수한 것이 화가 돼 오히려 워크아웃 작업까지 가게됐다. 최근 시장에서는 CN그룹에 대한 우려감도 나오고 있다. 해운업체로
시작해 우방랜드, 한강유람선 등을 인수한 CN그룹은 무리한 M&A로 인해 현재 상당히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유통업체와 같이 규모의 경제를 좇아가는 업체들은 M&A효과가 극대화된다. 작년 월마트를 인수해 단숨에 업계 1위로 뛰어오른 신세계 이마트는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해 그 영향이 주가에도 미치고 있다. M&A를 통해 대기업 반열에 오른 STX그룹도 성공적인 M&A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박혁진 phj1977@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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