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업체의 주가조작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은 연예인 병역비리 이후 가장 큰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진출이 붐을 이루기 시작한 때는 지난 2005년 중반부터다. 이후 증시에서는 연예인들의 주주 참여와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06년 초에는 인기 영화배우가 주가조작 스캔들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은데 이어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영화배우도 회사 설립문제로 코스닥 상장사와 마찰을 빚었다. 하지만 연예인을 앞세운 엔터테인먼트 테마가 ‘증시의 눈’으로 부상하면서 연예사업 진출을 선언하는 엔터테인먼트 업체는 계속 늘어만 갔다. 이때부터 증권가에는 엔터테인먼트 관련 종목에 대해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라는 전망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이에 팬텀엔터테인먼트(이하 팬텀)의 세금포탈 의혹과 연예인 주가조작 파문에 대한 이번 검·경찰의 수사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팬텀이 방송사 PD들에게 주식 로비를 했다는 관계자 진술이 나오면서 대형 연예계 비리 사건이 예고되고 있다.
팬텀의 조세포탈 및 횡령 혐의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정인창)는 지난 3일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팬텀 간부들이 2005년 4월 우회상장을 통한 코스닥 상장 시기를 전후해 방송사 PD들에게 주식을 시가보다 싸게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17일 코스닥 업체인 P사가 연예인을 내세워 주가 조작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팬텀은 2005년 골프공, 골프의류 제조업체의 주식을 70% 가까이 인수하는 방법을 통해 코스닥에 우회상장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사실 팬텀이 구설수에 휘말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05년 “팬텀이 우회상장 비용 마련을 위해 ㈜서울음반의 시세를 조종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당시 팬텀은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이어 지난해에는 조세포탈 및 횡령 혐의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았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방송사 PD들에 대한 주식 로비 정황은 검찰 재수사 과정에서 포착된 것이다.
또 경찰에 따르면 통신장비 전송사업을 하던 P사는 2006년 12월 공시를 통해 중견 연예인 S(63)씨 등 32명의 연예인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연예인 매니지먼트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S씨 등을 포함한 사외이사들에게 29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시행한다고 공시했다.
이에 경찰은 이 유상증자가 실제로는 사채 등에서 모은 자금을 통해 주식대금으로 가장해 납입한 후 행한 허위 공시일 가능성이 크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 중이다.
이 두 사건으로 방송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수많은 인기 스타들이 연루돼 있을 뿐 아니라 검·경의 수사가 계속되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스닥, 연예인 신드롬 확산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은 다양한 수법으로 법망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더 이상 연예인 주가조작 비리를 묵과할 수 없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라고 말해 강도 높은 수사가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증권가에는 이미 “연예인 관련주가 곧 유망주”라는 공식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는 상태다. 인기 연예인들이 주주로 참여하거나 인기연예인이 속한 기획사를 인수 합병 후 상장할 경우 관련 주식은 무조건 상한가를 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또 장외 엔터테인먼트 업체가 인기 연예인을 영입한 뒤 우회상장을 통해 코스닥에 진입할 경우에도 주가는 순식간에 치솟는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엔터테인먼트 관련주들은 평균 주가 상승률이 35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려는 업체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텐트 제조업체인 반포텍은 지난 2005년 말 스타엠엔터테인먼트와 주식 교환 후 영화배우 장동건씨를 지분참여 시켜 관심을 모았다.
또 지물 수출업체인 호신섬유 역시 인기 가수 이효리씨의 소속사 디에스피엔터테인먼트와 합병한데 이어 2006년에는 뮤투엔터테인먼트가 알루미늄 기물업체인 남선홈웨어를 통해 우회상장을 한 뒤 지난 1분기 47억원의 매출과 9억원의 영업이익 및 순이익을 달성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하려는 업체들 사이에선 인기 스타를 영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이들 업체들은 스
타를 끌어들이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다”며 “때문에 최근에는 배용준처럼 재벌 부럽지 않은 연예인 주식부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상장 엔터테인먼트사 대부분이 ‘쭉정이’
그러나 유명 연예인이 유상증자에 참여한다고 밝힌 엔터테인먼트 업체들 가운데 내실이 있는 업체는 드물다는 게 증권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예인들의 청약이나 주금 납입이 사실상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주가 띄우기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P사의 경우 지난해 12월 소속 연예인이 참여하는 27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고 다음날 주가는 12% 급등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실제 청약에는 단 한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인 팬텀도 지난해 6월에는 임창정, 김제동, 유승범 등 5명이 참여하는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지만 역시 단 한명의 연예인
도 청약을 신청하지 않았다.
팬텀은 아이비, 신동엽, 유재석, 김용만, 이혁재, 노홍철, 박경림 등 유명 연예인을 속속 영입한데 이어 최근에는 김성주 전 MBC 아나운서와 강수정 전 KBS 아나운서도 영입, 현재 소속 연예인 수만 80여명에 달하는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이에 증권가 관계자들은 연예인들의 유명세만 보고 이들 업체에 투자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고 조언하고 있다. 신규 상장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의 경우 우회 상장한 업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업체 내부 구조 등 신뢰성을 검증할 수 없고 영업 실적에 기복이 심해 업체의 가치를 제대로 산출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전문가들에 따르면 엔터테인먼트 테마주들이 점점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평균 30% 수준의 낙폭을 보이고 있다는 것.
주가상승을 노리고 연예인 등 유명인을 앞세워 유상증자를 하는 경우가 유행병처럼 퍼지고 있지만 여기에 현혹되지 말고 실제 수익을 낼 수 있는 종목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윤지환 jjh@daily.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