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치는 고스톱?
세 명이 고스톱을 치고 있다. 그 중 한 명만 유독 돈을 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계속 잃고 있는 두 명은 즐거워 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쉽게 더 많이 따가게 해줄 수 있을까만 궁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돈 계산법도 이상하다. 돈을 건넬 땐 만 원짜리, 거스름돈은 십 원짜리다. 왜 그럴까? 이들은 처음부터 같은 플레이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우스 주인장의 아들과 월급쟁이 꽁지(고스톱 판에서 선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관계였던 것. 지금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그런 고스톱 판과 비슷한 상황을 두고 검사와 변호인단이 뻔한 게임의 위법성과 정당한 게임이었다는 것을 놓고 첨예한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이들의 공모여부와 하우스 주인장의 자리를 놓고 돈이 헐값으로 아들에게 건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이다. 정말 몰랐을까? 정말 정당했을까?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사건의 지루한 법정공방이 11년째 이어지고 있다. 사건 발생 3년 반 만에 고발이 이뤄졌고 다시 3년 반 만에 기소가 이루어졌으며 사건의 심의 종료까지 10년 반의 기간이 걸렸다. 이 같은 길고 긴 공방전의 중심에는 삼성의 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범국민적인 요구와 삼성의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이 배경에 깔려있다.
삼성은 지난 96년 12월 3일 기존 주식물량의 167%에 해당하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125만4000주가 3자 배정방식으로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과 이부전, 이서형, (고) 이윤형에게 초저가로 발행됐다. 당시 에버랜드 주식은 최소한 40만원이 넘었을 자사주를 주당 7700원에 발행한 것이다.
에버랜드 최대주주 이재용 등극 철퇴 법원서 “땅땅”
특히 이재용은 이 과정에서 삼성에버랜드 자산의 62.5% 지분에 해당하는 96억원의 CB를 인수했으며 인수한 CB를 1996년 12월 26일 주식으로 전환해 (총가액 96억2000만원), 단번에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지분율 31.9%)로 등극했다.
또한 이부전 등은 10.4%의 지분을 확보해 이들은 에버랜드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와 같은 전환사채 발행으로 최소 90억원에서 1000억원 이상의 이득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에버랜드는 삼성그룹의 지주 회사격이라는 점에서 이 회사의 지배지분을 획득했다는 것은 삼성그룹 전체의 경영권 획득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의 이재용 전무는 하룻밤 사이에 우리나라 총 수출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의 황태자로 등극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사회 각계에서는 삼성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연금술을 실행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또 2000년 6월 곽노현 방통대 교수 등 전국 법학교수 43명이 ‘계열사의 의도적 실권행위와 저가발행으로 편법증여가 이뤄졌다’며 삼성 이건희 회장과 주주 33명을 고발했다.
그러나 삼성측은 지금까지도 “CB 저가 발행은 잘못된 주장이며 기업경영활동을 형법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100억원 조달을 위한 120만주의 발행은 손해가 있다하더라도 주주의 손해이므로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배임죄 몸통 실체 밝혀져야”
“고의가 인정된 만큼 왜 그런 범죄를 고의로 저질렀는지 밝히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며 몸통이 누구인지, 실체를 밝혀야 한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편법증여 사건과 관련, 지난달 29일 항소심 판결이 나온 가운데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은 이같이 밝혔다.
검찰 측도 “항소심 공판에서 CB의 저가발행은 경영권 이전을 위한 행위로 삼성그룹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동의 없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을 놓고 소위 ‘몸통론’이 일고 있다.
가장 높고 중심부에 있는 이건희 회장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이번 사건은 이건희 회장의 소환 여부가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치외법권으로 인정되었던 삼성공화국의 황제인 이건희 회장의 소환이 이루어진다면 삼성은 커다란 충격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의 소환은 지
난 1995년 11월 8일 삼성 X파일과 관련, 이후 두 번째인 것으로 글로벌 클린을 외치는 삼성의 이미지에는 치명타가 되기 때문이다.
검찰의 입장은 단호하다. 이건희 회장 소환의 명분이 섰다며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인정될 경우 이 회장뿐만 아니라 관련된 수뇌부들을 모두 소환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항소심 판결이 1심 판결보다 오히려 높을 뿐만 아니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에 대한 법원과 대외적인 교감이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이학수 부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3차례나 조사했으며 이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전무 등 회장의 일가들도 모두 서면조사를
마친 상태다. 이건희 회장의 소환만이 남겨 진 것이다.
또한 이건희 회장의 공모여부에 대해서도 “에버랜드 CB 배정에 사주 측이 개입한 정황증거는 많다”며 “주인이 바뀌는 일인데 머슴이나 마름(지주로부터 소작지의 관리와 감독을 위임받은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느냐. 사전에 보고를 안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며 사실정황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서울중앙지검 김홍일 3차장 검사는 “이 회장의 소환조사 가능성에 대해 신중하게 하돼 적정한 절차대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혀 명확한 입장을 피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이 회장에 대한 소환여부에 대해서 항소심 판결 이후로 미뤄놓은 상태로 소환조사 불가피성을 내세웠다. 이대로라면 이 회장의 소환은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국가의 중차대한 임무가 끝난 오는 7월 4일 이후쯤일 거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항소심의 재판부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를 인정함에 따라 피고발인들의 공소시효가 7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나 이회장의 소환조사는 늦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일고 있다.
삼성측은 이 회장의 소환가능성에 대해 설마하는 기대심을 내보이고 있다. 신필종 변호사는 “법원에서 그룹차원의 공모여부에 대해서 판단을 유보했다”며 “이에따라 이 회장의 조사의 필요성도 소환의 가능성도 사려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상조(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삼성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넘어갈 수 있는 사항을 고용임원 2명이 단독으로 판단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 할 수 없다” 며 “에버랜드 다른 임원들의 공모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한계로 이제라도 이 회장을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로 추가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인터뷰
“지배권 관련 위법성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서.
▲당연하고 사필귀정의 판결로 환영한다. 법 앞의 평등에 따라 당연한 귀결이다. 이번 판결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는 불법행위임이 명백해졌다. 다만 처음 고발이 2000년에 있었음에도 사회적 파장이 희석되도록 무려 7년여나 시간을 끌어 온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법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건희 삼성회장의 소환에 대해.
▲이번 판결에 따라 검찰은 이번 사건(불법적 경영권 승계)과 관련한 사실상 몸통인 이건희 회장을 즉시 소환해서 조사하는 것이 당연한 조치이다. 그룹의 지배권과 관계된 사안을 일개 계열사 사장이 단독으로 결정해서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건희 회장을 한 번도 소환하지 않고 임원들만 소환조사하여 기소한 것이다. 검찰의 직무유기를 비판하며 이제라도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자세를 보여 주길 바란다. 이 회장 소환여부를 주저한다면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삼성의 지배구조 변화 요구에 대해서.
▲이재용씨의 부당이득과 편법적 경영권 승계는 사회적 정당성을 상실했다. 비록 회사를 보호하기 위한 상법상의 규정으로 주식발행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판결에 의하여 무효가 되었고 해당 임원들이 유죄판결을 받은 이상 해당 주식을 당연한 권리 주체였던 계열사 등에 자진 반환하고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한다. 이건희 회장 일가는 전체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계열사의 가공지분을 이용한 순환출자에 의하여 가능하게 만들어져 있다. 이는 상법상 금지되고 있는 상호보유의 편법에 불과하다. 삼성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근본적인 지배구조 개선책을 스스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내우외환 ‘삼성 위기론’ 실체 에버랜드 파장 외 주가하락 영업이익 감소
삼성은 지금 막심한 대외적 이미지 타격으로 인해 충격에 싸여있다. 다른 재벌 회사들은 삼성을 타산지석 삼아 안도하면서 파장이 미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삼성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는 것이 합리적일까? 전문가들은 크게 세 번의 아쉬운 시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첫 번째는 삼성의 황태자인 이 전무에게 경영권의 승계를 목적으로 재산을 물려주기 시작한 1994~1995년이다. 이 시기에 이 전무는 주식을 매입 매도하는 식으로 수백억원의 차익을 벌어들였고 이때 에버랜드의 지분확보에 나서게 된다.
두 번째는 전환사채를 발행한 1996년 12월이다. 이건희 회장의 소환까지 검토 중인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편법증여가 이루어진 시점이다.
세 번째는 1997~1998년 사이로 이 전무는 삼성생명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해 삼성생명의 대주주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이재용으로부터 시작하는 삼성에버랜드,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카드, 삼성에버랜드라는 순환출자의 큰 궤도가 완성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삼성은 이러한 계획을 이미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던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그만큼 당시 삼성과 재계는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고 있었고 11년이 지난 후 재벌기업의 투명경영 목소리가 이처럼 거세질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더군다나 삼성은 현재 위기설에 휩싸였다. 너무나 깊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빠져든 것이다. 안으로는 삼성전자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시가 총액이 80조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주가는 54만원대로 떨어졌다. 코스피 시장에서는 유일하게 신저가 경신 종목으로 등록됐다. 영업이익은 4년 만에 최저이며 회복세를 보일 거라던 반도체 가격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실적이 계속 악화될 경우 임원수와 신규채용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은영 aboutp@dali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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