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대방동에 위치한 8층짜리 농심 사옥에는 그룹의 주요 계열사 6개 기업들이 사이좋게 맞물려 있다. 농심그룹의 모기업으로서 라면·스낵·음료 등을 주력 제품으로 생산·판매하는 농심이 사옥의 5~7층을, 포장재 제조업체인 율촌화학과 태경농산이 4층을, 농심기획이 3층을, 농심엔지니어링이 2층을 사용하고 있는 것. 특히 이들 관계사를 지배하는 농심홀딩스가 7층에서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구조를 띠고 있어 시선이 집중된다. 또한 농심 사옥의 큰 특징으로는 ‘사무실마다 문이나 벽이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농심은 겉모습과는 달리 극도로 노출을 꺼리는 기업군 중 하나다. 이는 그룹 오너인 신춘호 회장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신 회장 자신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 이러한 신춘호 회장의 ‘그림자형’ 성격은 형인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최근 신 회장의 바람과는 달리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 신춘호 회장의 이름 석자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어 이목이 집중된다.
농심의 기업 대물림이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주회사 덕을 톡톡히 본 대표기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당초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된 지주회사제가 농심의 경우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데 자연스럽게 활용한 것.
지난 2003년 7월 농심은 그룹의 모회사인 (주)농심에서 투자사업 부문을 떼어내 지주회사인 농심홀딩스를 신설했다. 농심의 ‘전략 본부’로 불리는 농심홀딩스는
(주)농심을 비롯, 율촌화학, 메가마트, 태경농산, 엔디에스, 농심엔지니어링, 농심기획 등 7개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주사를 설립하기 이전 농심의 지분은 신춘호 회장이 9.96%, 장남인 동원(49)씨가 2.78%, 차남인 동윤(49)씨가 0.4%를 보유하고 있었다. 동원씨와 동윤씨는 일란성 쌍둥이로 형인 동원씨가 10분 먼저 태어났다. 삼남 동익(45)씨는 이들 쌍둥이와 4년 터울이다.
농심 2세들 경영 전면
그러나 쌍둥이 형제는 농심홀딩스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한 주식 맞교환을 통해 1·2대 주주로 나란히 올라섰다. 농심홀딩스가 (주)농심의 지분을 30.82% 보유한 최대주주인 만큼 자연스럽게 농심그룹의 지배구조 최정점에 서게 된 것.
반면 신 회장의 농심 지분과 율촌화학 지분(13.50%)은 그동안 거의 변동이 없는 상태다. 이후 신 회장은 또 한 번 주식증여를 통해 농심 지분 2.56%를 삼형제에
게 고루 나눠줬다. 이로써 신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농심 지분은 7.40%로 뚝 떨어졌다. 쉽게 말해 신 회장의 쌍둥이 아들들이 농심그룹의 오너로 떠오른 셈이다.
실제로 농심그룹은 현재 오너 2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선 상태다.
김낙양 여사와의 사이에서 3남 2녀를 둔 신춘호 회장은 현재 막내딸을 제외한 4남매 모두를 그룹의 주요 계열사에 포진시켜 놨다.
큰 딸인 신현주(52)씨를 농심기획 부사장에 배치한 것을 비롯, 장남 동원씨를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에, 차남 동윤씨를 율촌화학 사장에, 삼남 동익씨를 메가마트 및 농심개발 부회장에 앉혔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농심그룹의 ‘포스트 신’은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 소유 규모만 놓고 보더라도 신 부회장은 지주회사인 농심홀딩스의 최대주주로서 36.84%를 보유, 쌍둥이 동생인 동윤씨 보다 16.68%나 많기 때문이다.
‘형제의 난’을 미연에 방지코자한 신춘호 회장의 깊은 뜻은 삼남 동익씨의 지분구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신 회장은 삼남인 동익씨에게 농심홀딩스 대신 메가마트의 최대 지분을 물려줬다. 동익씨가 소유하고 있는 메가마트의 지분율은 45.9%로, 형제들 중 가장 많은 지분율을 자랑한다.
한편, 신춘호 회장은 3세 경영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 뒀다. 신동원 부회장의 장남에게만 농심홀딩스 지분 0.7%를 줬을 뿐, 다른 3세들에겐 균등하게 0.23%씩 보유토록 했다.
#식품업계, 투톱 경영체제 눈길
식품업계를 중심으로 오너-전문경영인 ‘투톱 경영체제’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식품업계 매출 순위 10위권에 오른 CJ·농심·오뚜기·대한제당 등의 기업이 ‘오너-전문경영인’ 투톱 경영체제를 유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식품시장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CJ와 라면업계에서만큼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농심이 부쩍 눈에 띈다.
CJ의 경우 이재현 회장과 김진수 사장간의 ‘찰떡궁합’이 업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히트제조기’로 불리는 김 사장은 CJ의 효자상품인 ‘다시다’와 ‘햇반’을 탄생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CJ의 투톱체제에 대해 “이재현 회장이 크고 작은 기업들을 인수 합병해 기업 전반의 틀을 잡는다면 김진수 사장은 적절한 시기에 히트상품을 뽑아 이에 응답한다”며 “두 사람의 찰떡궁합이 있었기에 CJ가 오래도록 식품업계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장수 기업이 많기로 소문난 식품업계에서도 농심의 ‘신동원-이상윤’체제는 10년 이상 손발을 맞춰 온 ‘장수 콤비’로 유명하다. 신동원 부회장은 지난 97년 대표이사직에 취임했으며, 이상윤 사장은 이보다 5년 앞선 92년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15년 간 농심을 이끌고 있는 영업맨 출신인 이상윤 사장은 농심과 함께 성장한 최고경영자(CEO). 영업본부장 시절 라면시장 1위 등극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농심을 최고 식품업체로 성장시킨 견인차 역할을 했다.
박지영 pjy0925@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