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건설 전윤수 회장 ‘사회봉사명령’솜방망이 처벌
‘홀리데이’란 영화로 제작된 ‘지강헌 사건’을 기억하는가. 지강헌은 상습절도죄로 붙잡혀 17년형을 복역하던 중 서울 올림픽이 끝난 직후 집단 탈주와 인질극을 감행해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는 끝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절규하며 처절한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지난 1일 사기 대출 등 8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 온 성원그룹 전윤수 회장이 2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는데 그쳐 ‘대기업 총수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을 다시한번 불러 일으켰다. 올 2월에는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 기업인 경제사범 160명이 대거 사면됐다. 이들이 국내 경제에 기여해 온 점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벌인 분식회계와 회사돈 횡령 등은 단순한 생계형이 아닌 국민경제를 멍들게 하는 중대 범죄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돈만 있으면 검은 것도 희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지난 1일 대법원 2부(주심 김용담 대법관)는 사기대출, 분식회계 등 8가지 혐의로 기소된 전윤수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특히 그룹 총수로서 2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것은 전회장이 유일한 사례로 남게 됐다.
성원건설 전윤수 회장 4000억원 유용, 끝내 사회봉사명령만
이번 판결로 전 회장은 하루 8시간씩 25일간 200시간의 봉사활동을 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집행유예가 취소되고 곧바로 수감된다.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 전 회장은 독거노인 목욕봉사나 장애인 도우미 등의 활동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달도 종반을 향해가는 현재 성원건설은 전 회장이 어떠한
사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언제부터 활동하게 될 것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끝내 답변을 회피했다.
법원에서 밝혀진 전윤수 회장의 죄질은 이렇다. 1995~1998년 도급공사 수익을 과다계상하거나 외화수익의 기준 환율을 높게 적용하는 방법 등으로 1315억원을 분식회계해 4467억원을 사기대출 받았다. 그는 1998년 자신이 소유한 성원산업개발 주식을 계열사가 고가 매입토록 해 80억원의 부당 이득도 챙겼다. 1999년 4월 회사가 부도 난 당일에도 계열사 소유 부동산을 매도한 대금 14억3000만원을 빼돌려 자녀 유학비용, 주택부지 매입대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부인이 회사 임직원으로 근무하는 것처럼 꾸며 1억2000만원도 챙겼다.
전 회장은 고문 법무사 명의를 빌려 서울 성북동 땅 530여평을 매입해 호화주택을 신축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판결을 받은 그는 곧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지난해 2월 서울고법은 “전 회장이 법정에서 부인으로 일관해 사회봉사활동 명령을 내린다”고 선고했다. 전 회장은 또 상고했고 이달 대법은 2심의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전 회장은 재판과정 중에도 지난달 총 200억 달러(약 19조원)에 달하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구도심 재개발 사업과 관련 발주처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우리기업들의 컨소시엄 대표 역할을 한 성원건설 의 선봉에 서 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 회장이 결국 징역이라는 실형은 받지 않았지만 사회봉사활동이라도 해야 하는 게 옳다는 견해가 대세다.
지난 2월 기업인 대거 사면 입방아
노무현 대통령은 올 2월 12일자로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김석원 전 쌍용양회 명예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 160명의 기업인을 대거 사면했다.
박용성 전 회장은 280억원의 회사돈을 횡령하고 2800억원에 이르는 분식회계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옥살이도 하지 않았다.
그가 2005년 11월 회장직 사퇴 이후 사면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5개월이었다.
김석원 전 회장은 1998~2000년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계열사 재산 310억여 원 상당을 이득으로 취한혐의로 배임혐의 등을 받아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그가 제기한 항소심이 계류된 상황에서 받은 사면이었다.
장세주 회장은 2004년 12월 부채를 포함한 재산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금융권 부채에 대한 담보로 회사돈을 설정한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으나 그는 기업 활동에 있어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
임창욱 명예회장은 2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그룹 총수로는 최장기간인 1년8개월의 수감생활을 했다. 삼성 이재용 전무의 장인이기도 한 그는 수감생활 중에도 동서, 나드리화장품, 종가집김치를 인수하는 등 옥중경영을 펼쳤다.
미국 엔론사건을 교훈 삼아야
세계 최대 에너지 회사였다가 2001년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 파산한 엔론의 경우 최고경영자에게 징역 24년이 선고된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엔론의 분식회계 규모는 1억5000만달러(한화 약 1500억원)수준이었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중죄를 저질러도 대부분 짧은 형량을 받고는 보석이나 형 집행정지, 병을 이유로 고급 병실로 나와 편안히 ‘수형생활’을 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는 해마다 한두 차례씩 사면이라는 연례행사에 포함돼 특혜를 누리고 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맞선 김성환 일반노조위원장은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3년5개월의 형을 받고 2년 반이 넘도록 수감 중이다. 현재 양심수만 1000명 안팎에 달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사법정의는 일반 서민이든 대재벌 총수든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죄를 지으면 그 죄값 만큼 벌을 받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장익창 sanbada@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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