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업계는 숨기고 싶은 사업이 있다. 영국 웨일즈 뉴포트 지역에 현지 공장을 세우는 것을 골자로 한 LG그룹의 ‘뉴포트 프로젝트’라는 사업이다. 1996년 LG그룹은 LG전자 부문과 LG반도체 부문 공장을 웨일즈 뉴포트 지역에 세우겠다는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현지 주민들에게 영웅적인 대접을 받았다.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액을 제시하며 웨일즈 입성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옛 LG반도체는 하이닉스로 합병됐다. 이후 하이닉스와 웨일즈 정부는 4년간 반도체 공장 가동을 시도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보지 못했다. 수천만 파운드의 자금과 보조금이 투입된 공장이 애물단지로 변해버린 셈이다. 국내에서도 옛 LG반도체를 인수한 하이닉스가 자금사정으로 공장 계획을 포기했다는 정도의 보도가 전해졌다.
그러나 최근 해외 언론을 통해 LG 프로젝트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LG 프로젝트의 반도체 부문은 이미 지난 1999년 자금사정으로 공장 건립이 사실상 중단된 후 진척을 보지 못하면서 사장됐다. 10년 전 추진된 프로젝트가 이제 와서 현지에서 다시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 LG반도체 공장 프로젝트의 추진과정을 통해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본다.
1996년 국내외 언론에 LG그룹의 대대적인 유럽투자에 대한 기사가 보도됐다. 영국 웨일즈 뉴포트 지역에 전자부문과 반도체부문 공장을 세우는 프로젝트 내용이었다. 당시 투자액은 웨일즈 지방 민간부문 중 가장 큰 수치였다.
LG그룹의 투자 때문에 웨일즈개발청은 21년 만에 최고의 민간부문 해외투자 실적을 기록했다.
현지 주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웨일즈개발청 회장이 LG반도체 협력회사협의회로부터 기념패를 받을 정도였다.
4년 만에 프로젝트 물거품
하지만 보도가 된 후 LG그룹 프로젝트에 대한 괴담이 돌기 시작했다. 투자에 대해 현지 일부 정치권이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영국 웨일즈 장관은 국내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프로젝트는 일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며 반박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두 부문으로 진행되던 LG 프로젝트는 빛을 보는 듯 했다. 그러나 공사시작 1년 만인 1998년 반도체부문 공장 계획은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LG반도체 웨일즈 공장 투자가 연기됐다는 소식이다. LG반도체가 외환위기와 관련, 유럽 등에 계획한 반도체 전자 등의 대형 투자 프로젝트를 보류한 것이었다.
이후 정부에 의해 추진된 국내 반도체 기업 간 ‘빅딜’ 등을 통해 LG반도체는 하이닉스 반도체로 넘어 갔다. 하이닉스는 합병과 함께 LG반도체 웨일즈 공장 프로젝트를 넘겨받았지만 난항은 계속됐다.
하이닉스가 웨일즈 공장 설립 계획을 4년 만에 포기하고 건설 중인 공장과 토지를 폐쇄한 후 웨일즈개발청에 이전하고 손을 떼버린 것이다.
이후 LG반도체 공장 계획은 언론 등의 관심을 잃으면서 사장됐다. 그러나 최근 다시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논란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영국 언론 웨스턴 메일은 지난달 중순 LG 프로젝트와 관련된 기사를 게재했다. ‘LG 공장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는 LG 프로젝트와 관련된 기밀문서를 입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웨스턴 메일이 밝힌 LG 프로젝트 비밀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웨일즈 정부가 LG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기업의 투자금을 부풀려 유럽위원회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비밀보고서는 웨일즈 정부가 LG프로젝트의 투자액보다 9600만 파운드가 많은 투자액을 담은 정보를 유럽연합위원회에 제출했다는 내용을 시사하고 있다.
웨스턴 메일은 1996년부터 시작된 LG 프로젝트를 놓고 벌어진 현지 논란도 소개했다.
10년 만에 떠오른 프로젝트 비화
LG그룹은 1996년 말까지만해도 유럽위원회의 반응에 대해 민감했다. 이는 웨일즈 정부가 LG그룹의 투자에 대해 유럽위원회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통보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또 웨일즈 정부는 유럽위원회와의 의견 조율 내용을 LG와 공유하라는 요청을 무시하고 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3년 웨일즈개발청은 난관에 봉착한다. LG반도체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지만 짓다만 공장 가동이 사실상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웨일즈개발청은 프로젝트에 따라 지급한 보조금 회수를 위해 법률단을 찾게 되고 이 과정에서 LG 프로젝트 투자금이 부풀려진 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작성됐다고 웨스턴 메일은 밝혔다.
본지 취재결과 LG반도체는 웨일즈 공장 설립 계획 등을 통해 웨일즈 정부로부터 3000만 파운드(약 639억원)의 보조금과 2500만 파운드(532억원)의 부가가치세 면세 해택 등 5500만파운드 상당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웨스턴 메일은 이에 대해 웨일즈 정부의 과장된 이중 투자 보고서 작성으로 시행조차 되지 않은 프로젝트에 공공 보조금이 낭비됐다고 지적했다.
유럽법은 투자가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부 보조금의 할당부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뒤처리는 어떻게 됐나
하이닉스는 지난 1999년부터 LG 반도체가 추진한 웨일즈 투자 프로젝트를 떠안게 된다.
그러나 하이닉스는 자금조달 문제 등의 이유로 프로젝트를 보류해 오던 중 지난 2003년 사실상 포기해 버린다.
당장의 해결방안이 없는 하이닉스 입장에서는 공장 건설 포기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웨일즈 개발청과 맺은 보조금 약정은 웨일즈 생산 공장 건설을 2005년까지 완료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개시하지 못하거나 2005년 이전에 공장 건설 활동을 포기하게 되면 동 시점에 보조금을 상환토록 명시하고 있었다.
때문에 하이닉스는 보조금 상환을 독촉하는 웨일즈 개발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골조만 남아있는 공장과 토지를 다국적 기업에 매각을 추진하지만 이 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하이닉스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웨일즈개발청과의 협상을 통해 상환해야 할 보조금을 깎는 방법 뿐이었다.
지난 2001년 이후 작성된 하이닉스 내부 자료는 웨일즈 공장 건설 포기에 따른 보조금 상환 부담이 얼마나 컸는지 확인케 한다.
2001년 하이닉스 감사 보고서를 보면 영국 웨일즈 반도체 공장 건설 활동이 자금 확보 문제로 중단된 상태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이닉스는 자금 압박 부담을 이기지 못해 2003년 5월 웨일즈 공장 건설을 포기하고 웨일즈개발청과 공장 매각 대금으로 보조금을 상환하는 조건의 약정서를 체결한다.
그러나 하이닉스는 1년 동안 공장을 매각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2004년 11월 1300만 파운드의 금액과 현지 공장을 웨일즈 개발청에 이전하는 약정서를 다시
맺는다. 이듬해 5월 웨일즈 공장과 토지가 이전이 완료되면서 LG반도체 프로젝트는 8년 만에 이름만 남게 됐다.
웨일즈 정부와 하이닉스는 프로젝트 재개와 보조금 상환을 놓고 시한부 약정서를 잇따라 체결했을 뿐 이렇다 할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 셈이다.
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상처가 너무 컸다. 당시 하이닉스 내부 자료에 따르면 웨일즈 공장 건립과 제조, 판매를 위해 지난 1996년 설립한 현지 법인의 납입 자본금은 1억1600만 파운드를 상회했다.
특히 지난 2000년에만 웨일즈 공장 건설 중단에 따라 1000억원 상당의 유형 자산 감액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하이닉스는 LG반도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거대한 해외투자사업을 제품 하나 생산하지 못하고 덮어야 했다.
웨일즈 정부도 수천만 파운드의 지원을 퍼붓고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민간 투자 기업과 현지 정부가 모두 손해 보는 장사를 한 셈이다.
이와 관련, 하이닉스 관계자는 “웨일즈 뉴포트 공장 매각과 관련해 알고 있는 것은 지난 2005년 일부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 전부”라며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말했다.
본지는 LG반도체 프로젝트 추진 내막을 묻기 위해 현재 경제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직 LG반도체 임원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해외 출장 중이라는 이유로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한편 LG전자 부문은 지난 2006년 8월 웨일즈 뉴포트 모니터 생산 공장 폐쇄를 발표했다.
#LG반도체 ‘뉴포트 프로젝트’
▲1995년~ : LG그룹 웨일즈개발청과 뉴포트 프로젝트 협상
▲1997년 1월 : 공장 프로젝트 기공식
▲1997년 4월 : 유럽위원회 프로젝트 모니터와 부문별 추진 조건으로 보조금 지급 동의
▲1997년 6월 :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법률적 합의 완료
▲1998년 9월 : 반도체 시장조건 악화에 따른 공장 건설 추진 중단
▲1999년 6월 : 한국 정부에 의한 빅딜 추진, 하이닉스가 LG반도체 합병으로 반도체 부문 프로젝트 인수
▲2000년 3월 : 하이닉스, 프로젝트 추진 난항에 따라 공장 매각을 위한 준비 시작
▲2001년 8월 : 웨일즈 개발청, 하이닉스의 웨일즈 공장 재개와 보조금 회수 작업 시작
▲2002년 6월 : 반도체 부문 프로젝트 차질 유럽위원회 보고, 프로젝트 시한을 2005년 6월까지 연장 요구
▲2003년 5월 : 웨일즈개발청과 하이닉스 공장 매각을 위한 공동작업 시작, 공장부지 웨일즈 개발청에 무상 이전 합의
▲2004년 5월 : 하이닉스, 웨일즈 개발청과 보조금 상환에 따른 현금 지급과 공장 이전 약정서 체결
▲2005년 1월 : 하이닉스, 웨일즈 개발청에 1300만파운드 지급
▲2005년 3월 : 웨일즈 뉴포트 반도체 공장, 웨일즈 개발청으로 이전 완료
현유섭 hys07@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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